1995년 가을, 한솔텔레컴의 소진화사장은 60m높이의 번지점프용 철탑에 올라갔다. 『죽어도 이의없다』는 각서를 쓰고 몸에 로프를묶고 뛰어내렸다. 함께 동행한 조동만부사장도 뒤이어 뛰어내렸다.비록 대표이사의 나이가 50대후반이지만 몸과 마음은 20대 젊은이못지 않음을 보여준 사례다.한솔텔레컴의 직원들은 업무보고를 하기 위해 사장실에 가지 않는다. 대신 사장이 직접 직원들을 찾아간다. 사장 부사장 부서장 가릴 것 없이 지위가 높을수록 많이 뛰는게 이 회사의 문화다. 그만큼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지난 5월에 인가받은 회선임대사업은 한솔텔레컴의 기민함을 보여주는 한 예다. 회선임대사업은 해저광케이블망을 구축하는 사업으로 1조원가량 소요되는 거대한 사업일뿐 아니라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빠르게 사업을 추진하기 쉽지 않다. 북태평양에서 홋카이도를 거쳐 동해로 들어오는 케이블이라 여러나라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소진화사장과 조동만 부사장이 직접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남들은사업성을 검토하고 사업에 착수하는데 1년이상 걸리는 것을 4개월만에 마무리지었다. 컨설팅회사나 법률회사와의 가격조건 등의 협상을 사장이 직접 주도해 보고단계가 없었기 때문이다.각 사업부장도 마찬가지다. 개인대상 인터넷서비스인 「한큐」를준비하기 위해 가입자용 소프트웨어 키트를 만들때 용산상가에 나가 가격과 거래조건을 협상한 것은 다름아닌 사업부장이다.한솔텔레컴의 기업연령은 28세다. 1995년 11월 통신기기 제조업체인 광림전자를 인수해 한솔텔레컴으로 회사이름을 바꿨다. 광림전자는 한솔그룹이 인수하기 전까지 매출이 줄면서 적자가 지속되는등 자본잠식상태로 대단히 노쇠한 기업이었다. 한솔그룹이 인수하고 나서 모든게 바뀌었다. 인터넷서비스 SI(시스템통합)등의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우선 매출규모가 26억원에서 1백62억원으로늘었다. 올해 매출목표는 6백억원이다. 수지도 흑자로 전환,1995년 2만8천9백36%나 되던 부채비율이 1년만인 1996년엔 39%로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