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판에서 일당 근로자로 일하는 이모씨(31). 비록 중소기업이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어엿한 직장을 갖고 있었던 이씨는 요즘카드빚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직장도 사실은 지난 봄 카드빚때문에 쫓겨나다시피 했다. 이제 와서 한순간의 방탕한 생활이 이렇게 자신을 구속할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후회해보지만 남은 것은2천만원대에 이르는 빚과 한숨 뿐이다.◆ 불법대출, 수법도 다양이씨가 카드를 처음 만지기 시작한 것은 4년전인 지난 93년. 공고를 졸업한 후 군에 갔다와서 구로공단내 한 전자회사에 다니다가거래 은행의 권유로 손에 넣었다. 그러나 처음 두달 동안은 전혀사용하지 않았다. 수수료가 비싸다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지갑 깊숙이 처박아 두었다.그러던 어느날 친구와 가볍게 맥주 한잔 하려고 카페에 들어갔다가친구가 부추기는 바람에 카드로 대신 계산을 했다. 그후 이씨는 한달에 한두번씩 주로 술값을 계산할 때 카드를 이용했다. 한달 결제액도 10만원대를 넘지 않았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겁이 없어지고 돈을 쓴다는 느낌이 별로들지 않았다. 자연 이용횟수가 늘어만 갔다. 그 사이 카드가 4개로늘었고 이용범위도 다양해졌다. 전자제품이나 옷을 사면서도 카드를 긁었다. 한달 결제액수가 순식간에 1백만원대를 훌쩍 넘었다.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후부터는 한 카드에서 현금서비스를 받아 다른 카드를 메우는 식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자가 이자를 낳는 형국이었다. 결국 이씨는월급을 압류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카드빚을 독촉하는 카드회사직원을 피해 회사를 그만두어야 했다.이씨의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사례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남녀의 차이도 없다. 20대의 신세대 여성들 가운데서도 고가의 옷을 사는데 카드를 멋대로 쓰는 등 무분별한 카드사용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후문이다.회사원인 신모씨(21.여)의 경우 지난 2년 동안 카드로만 무려 4천여만원 어치의 물건을 구입했다가 부모를 크게 놀라게 한 케이스다. 평소 씀씀이가 헤펐던 신씨의 경우 한벌에 수십만원씩 하는 옷을 겁없이 카드로 마구 구입했다는 것. 결국 신씨는 이를 갚지 못하고 애를 태우다가 아버지의 은행계좌에서 몰래 돈을 빼기까지 해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이밖에 대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과외아르바이트 등으로 수입이 늘면서 돈을 무서워하지 않는 풍조가 생기면서 나타난 결과다. 심지어 일부 학생들은 카드빚 때문에 등록을 미루거나 아예 못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카드중독증의 폐해가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카드는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는 것만큼이나 여기저기서 두루 활용된다. 특히 신용을 전제로 하는 까닭에 때로는 돈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현금서비스나 카드대출이 그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카드대출의 경우 대부분 불법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카드대출을 함부로 받았다가는 자칫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에 빠질 수도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회사원 박모씨(29)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지난해 봄 돈이 궁했던 박씨는 지하철역을 나오다가 한 아주머니가 나눠주는 명함 크기만한 쪽지를 받아들었다. 아주 싼 이자에 돈을 빌려준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특히 구미를 당긴 것은 담보나 보증이 필요없다는 사실. 신용카드만 있으면 즉시 대출해준다는 말이 눈에 쏙 들어왔다. 즉시 쪽지에적힌 전화번호를 돌리자 한 남자가 사무실 위치를 알려주었다. 박씨는 앞 뒤 가릴 것이 없었다. 곧바로 사무실을 찾아가 카드로 선이자 40만원을 떼고 2백만원을 빌렸다. 그리고 자신이 내민 카드에는 2백40만원짜리 전표가 붙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박씨에게는 2백40만원이 찍힌 카드결제통지서가 돌아왔다. 결국 그는 또 다시 카드대출을 해주는 곳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2백40만원을 빌리기 위해 2백88만원짜리 전표를 끊었고 이를 몇차례 반복하자 빚이 1천만원을 넘어섰다. 결국 빚 2백만원이 1년도 안돼 1천만원이 넘는 상황으로 발전했다.박씨의 사례는 불법 카드대출의 폭발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속칭 와리깡으로 불리는 이런 불법 대출은 심할 경우 한달 빌리는데 선이자로 30%를 떼기도 한다. 1백만원을 빌려주면서 이자로 30만원을 챙기는 셈이다. 그럼에도 대단히 성업중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비공식적이지만 전국적으로 약 3천여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는 것.또 불법대출 규모도 해마다 크게 늘어 지난해의 경우 전체 카드매출액 30조원 가운데 20%인 6조원 가량이 불법대출 자금일 것으로파악되고 있다.여기서 한가지 걱정되는 점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런 불법 카드대출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카드빚 많아 이혼 하는 가정도있다게다가 최근에는 수법도 아주 다양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고가의 전자제품이나 스포츠용품, 또는 상품권을 사오는 조건으로 한불법대출이 새로 생겨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임모씨(28.여)가 겪은 피해사례가 이런 경우를 잘 대변해준다. 임씨가 2백50만원이 필요해 카드대출을 해주는 A기획사를 찾은 것은지난 5월. 대출업자가 시키는대로 임씨는 시내 백화점에 가서 자신의 카드로 오디오 등 가전제품 3백50만원 어치를 구입해 A기획사로배달을 부탁했다. 물건을 받아든 대출업자는 즉석에서 돈 2백50만원을 선뜻 내주었다. 이때 대출업자는 전자제품을 다른 도매상에3백만원쯤 받고 넘긴 후 여기서 생기는 50만원을 수수료 명목으로챙긴다.이 방법의 특징은 직접 물건을 사고 카드전표를 끊는다는 점. 유령의 점포를 동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뒤늦게 밝혀진 사실이지만 지난 봄 쓰러진 부산 태화백화점의경우 카드대출업자들이 백화점카드를 이용해 이런 식으로 중간에서장난을 치는 바람에 나중에 카드대금이 회수가 안돼 부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카드는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굴리면 독이 된다. 카드중독자나불법적인 카드대출 상습 이용자는 분명 잘못 쓴 경우에 해당한다.특히 이런 것들이 누적이 되면 개인이나 가정에 치명적인 상처를안겨준다.최근 나리양 유괴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전현주씨도카드 때문에 패가망신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만 잦은 카드 사용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도 범행을 결심하는데 한몫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평소 소비욕구가 강했던 탓에카드를 많이 썼고 얼마전에는 1천여만원이나 되는 카드빚을 친정어머니가 대신 갚아준 일도 있었던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지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카드로 인해 이혼하는 일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올초이혼한 김모-박모 커플. 결혼 3년째인 이 부부는 매달 남편이 자신의 월급을 훨신 웃도는 카드비 때문에 부부싸움을 자주 하다 마침내 갈라섰다. 남편의 연봉이 3천만원이 채안되는데도 한달 평균1백50~2백만원대의 카드대금이 날아왔다는 것. 그것도 대부분 술값명목으로. 참다못한 부인이 친정으로 갔고 결국 양가 합의 아래 이혼을 했다.또 올해 초에는 아주 비극적인 일도 있었다. 20대 청년이 1천여만원의 카드빚을 갚지 못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현금서비스를 주로 이용했던 이 청년은 불과 1년 사이에 카드빚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이를 고민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