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금융업계에 구조조정의 기운이 움트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종금사에 대한 1조원의 한은특융이 집행되면서 구조조정의 발판은 마련됐다. 대한 한화종금 등 16개 종금사가 한은특융을 신청하면서제출한 경영권포기각서가 종금사 구조조정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게금융계의 관측이다.한은특융을 받은 종금사들은 『고문 변호사가 경영권포기각서의 문구가 법적효력이 없다는 얘기를 들려줬다』(S종금사 기획팀장)며포기각서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려 한다. 하지만 정부가 종금사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쥐게 됐다는데 대해서는 이견을 달지 않는다.지방종금사의 한 임원은 『태국의 종금사라 할 수 있는 파이낸스컴퍼니 58개사가 부실이 누적돼 영업정지 당할 때도 태국정부로부터특별융자를 받은 곳이 우선 선정 됐었다』고 말했다. 이번 한은특융이 종금사에 대한 단순 구제금융이라기 보다는 구조조정 금융이될수 있다는 얘기다.◆ 삼양종금 등 조직축소·영업구조조정나서재정경제원은 때마침 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기준과 유사한 자기자본관리 제도를 내년부터 종금사에 적용, 부실종금사의 인수합병(M&A)을 유도한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이다. 종금사의 경영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위험단계별로 경영개선이나 시정을 요구할수 있는 조기경보장치를 도입,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특히 재경원은 이미 부실여신이 자기자본의 절반을 넘는 종금사들로부터 자구계획을 받아 챙김으로써 정부 주도의 종금사 구조조정이 임박했다는 금융계의 관측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있다.그러나 외부에 의해 구조조정이 강요되기에 앞서 일부 종금사는 자구계획이라는 이름하에 스스로 구조조정에 나섰다.삼양종금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부분의 종금사가 『은행과는 달리대형종금사라고 해봐야 인력이 2백여명이 채 안되고 지점도 고작2~3개밖에 없어 자구노력 할게 없다』고 탄식하고 있는 상황에서삼양종금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중이다.삼양은 지난 9월 85명의 전임직원 가운데 32명을 명예퇴직시켰다.『단순한 인력감축은 아닙니다. 전문가를 대상으로 신규인력을 채용할 계획입니다.』 김국주 삼양종금 부사장은 대폭적인 인력 물갈이로 인력 정예화를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명퇴를 통한 인력정예화는 삼양종금에서 한외 제일종금등 타종금사로 확산되고 있다.삼양종금은 또 지난 10월 6일 재경원으로부터 익산지점 폐쇄 승인을 받았다. 이에따라 올해말까지만 익산지점을 운영키로 했다. 군산지점도 내년상반기중 폐쇄키로 했다. 인력뿐 아니라 조직축소에도 나선 것이다.부실의 주범인 단기대출업무의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치는 영업구조조정도 종금사의 구조조정의 한 패턴으로 차츰 자리잡아가고 있다.대한종금이 3백여개의 신규 어음거래 적격업체를 발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것은 대기업 위주로 돈을 퍼주다시피 한 기존 여신구조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다.은행과 투신사 등에 기업어음(CP)을 무담보로 팔면서 이면으로보증해주는 종금사의 영업구조도 기아사태를 계기로 점차 조정국면에 들어섰다. 기아발행 무담보CP를 은행등에 매출할 때 대거 이면보증한 종금사들이 은행들의 대지급 요청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리면서 이면보증 자제에 나서고 있다.아예 단기대출 업무 비중을 줄이는 쪽으로의 영업구조 조정도 추진되고 있다. 중앙종금은 전체 영업에서 70%를 차지하고 있는 단기금융 비중을 50%로 끌어내릴 계획이다. 대신 국제금융과 인수합병 등비어음부문 영업을 강화한다는 복안이다.종금사는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전문화와 대형화라는 두갈래 길을놓고 선택의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버텨내기 힘든 종금사는 인수합병의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화의 길을 택한 종금사는 이미 등장했다. 삼양종금은 국제금융을 특화시켜 나갈 방침이다.◆ 종금사 변신, 기업 구조조정과 맞물려야대형화는 부실이 많지 않은 대형종금사를 중심으로 증자나 M&A 등을 통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종금등 재무구조가 탄탄한 대기업을 대주주로 두고 있는 종금사들은 증자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그러나 상당수 부실종금사들은 자체 구조조정이 한계에 부닥칠 경우 M&A의 회오리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종금업계에 불어닥칠 재편시나리오는 크게 5가지. 우선 종금사간M&A. 한국종금 김인주 사장은 『부실이 많은 종금사는 주가하락으로 M&A비용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시간은 걸리겠지만 부실이적은 대형종금사와 부실종금사간 선별적인 M&A가 이뤄질 여지가 있다』고 전망했다. 한불종금 유경찬이사는 『자산과 부채만을 인수하는 형태로 종금사간 M&A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금업계에 외형경쟁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이시나리오의 성사 가능성에 부정적 의견도 많은 편이다.둘째 시나리오는 은행으로 인수합병되는 것. 과거의 부실종금사 처리방향은 주로 이런식으로 이뤄졌다. 지난 83년 영동개발진흥 금융사고로 경영위기에 처했던 태평양투자금융(현 조흥증권)은 조흥은행이 대주주가 되면서 구제됐고 같은 해에 광명투금(현경일종금)은 대주주인 광명그룹의 부도로 부도위기에 몰렸으나 제일은행이 인수, 위기를 넘겼다. 이 시나리오는 은행이 부실에 짓눌려 신음소리를 내는 지금 상황에서는 가능성이 떨어진다.세번째 시나리오는 신용관리기금이 인수, 일정기간 관리한뒤 대기업에 매각하는 것이다. 충북투금의 후신인 청솔종금이 이같은 케이스다. 대주주인 덕산그룹 부도로지난 95년 4월부터 신용관리기금의관리를 받은 청솔종금은 올해초 대아건설에 매각됐었다. 하지만 최근 대아건설이 지분을 반납하는등 다시 기금측의 관리를 받게 돼이 시나리오 역시 실패작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종금사 프리미엄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네번째 가능한 시나리오로거론되는 대기업의 종금사 인수 역시 불투명하다고 볼수 있다.네번째 시나리오로는 업종전환및 확대를 들수 있다. 대한종금의 대주주인 성원그룹이 최근 동방페레그린증권의 인수를 추진하면서 내놓은 장기비전은 금융개방 시대에서 종금사가 나름대로 살아남기위한 길목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종금의 여수신업무를 기반으로은행으로 전환하고 M&A와 같은 증권업무는 증권사로 넘긴다』는게성원그룹의 구상이다. 특히 금융시장 개방으로 금융권간 벽이 허물어지면서 이 시나리오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마지막으로 시장에서의 퇴출을 예상할 수 있다. 종금사가 파산처리된 것은 4반세기 역사상 한번도 없었지만 종금업계 전체의 부실이문제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시나리오가 조금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예금자보호와 국제영업을 해온 금융기관의 부도가자칫 한국 전체의 신용도 추락으로 이어질수 있다는 점에서 쉽지않을 것으로 보인다. 평균 7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종금사의 부도가금융시장에 몰고올 파장도 간과할수만은 없다.어쨌든 한국경제의 총체적인 위기앞에서 종금사의 구조조정은 필연과제이다. 금융시장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종금사의 변신이 차입경영에 의존해 온 기업의 강도높은 구조조정과 맞물릴 때 한국경제회생의 실마리가 서서히 잡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