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층 높이의 빌딩을 건설하는 것은 마음만 가지고는 안된다. 최첨단의 건설기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초고층빌딩은 보통의 빌딩과는 차원이 다른 건설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설업체가 63빌딩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크고작은 빌딩을 수도 없이지었다지만 1백층 안팎의 거대한 초고층 빌딩을 짓는다고 할 때 문제는 또 달라진다. 그렇다면 국내 건설업체의 초고층빌딩 건설능력수준은 어느 정도일까.건설기술분야는 크게 설계, 시공, 유지관리의 세가지 측면으로 나누어진다. 이 세가지 분야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만 훌륭한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내의 기술수준은 이들 세분야에서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여러가지 자료를 토대로 이를 수치로 나타내보면 선진국의 건설기술을 1백으로 본다고 할 때 우리의 수준은 70 정도라는 것이 정설이다.물론 특정분야의 기술수준을 점수로 환산하여 평가하기는 곤란한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건설기술연구원에서 조사한 전문가 설문통계 등에서도 분야별로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70%의 만족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이를 좀더 세분화해 살펴보면 먼저 설계는 건설기술 가운데서도 가장 취약한 분야로 지목받고 있다. 설계능력은 충분히 확보되어 있으나 경험부족 등으로 선진국에 비해 수준이 상당히 뒤떨어진다는것. 초대형 건물을 지을 때 미국이나 일본의 설계 업체에 의존하는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의 자랑인 63빌딩이나 무역센터도 일본의 설계 전문업체와 제휴해 설계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와 관련, 국내의 건축전문가들은 설계를 외국업체에 전적으로 맡기기보다는 공동작업 형태로 일을 진행해 설계에 대한 실전능력을키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큰 건물 지을 기회 적어 미숙시공능력은 세계수준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트윈타워, 싱가포르의 래플즈시티 등 동남아의초고층건물을 성공적으로 시공한데서 알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시공능력만큼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 다만 기계화가 아직 미흡한데다 노하우가 부족해 시공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이 한층을 건설하는데 보통 15일 걸리고 일본이 17일 걸리는데 비해 우리는 25일 정도가 소요된다는것. 예를 들어 1백층 빌딩의 공사를 한다면 국내 업체가 미국업체보다 1천일쯤 더 걸리는 셈이다.마지막으로 유지관리는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분야다. 초고층빌딩의 경우 거기서 생활하는 인구가 줄잡아 2만명은 족히 되므로 빌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이들에게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초고층빌딩 프로젝트의 성공여부가 빌딩의 경제성과 운영관리시스템에 달려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이밖에 에너지와 전력 문제도 유지관리에 직결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유지관리기술은 아직 초보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국내에 초고층 빌딩이 별로 없는 까닭에 그동안 기술을 축적할만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지적할 수 있는 것이 첨단설비 기술의 보완이다. 초고층 건물은 건물자체 무게와 실내 장비 등의 무게로 미세한 수축현상이 일어난다는것.◆ 유지관리기술은 아직 초보단계따라서 미리 수축량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과 쾌적 공조시스템, 수평수직 이동이 가능한 엘리베이터 시설 등 첨단 설비기술을 충분히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전체적으로 국내의 건설기술은 선진국에 밀릴 뿐만 아니라 국내의토목기술에 비해서도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쉽게말해 빌딩을 건설하는 것이 고속도로나 댐을 만드는 능력보다 뛰떨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건설기술이 이렇듯 안팎으로부터 밀리는 이유는 뭘까.이에 대한 이유로는 몇가지가 거론되고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거대프로젝트의 경험 유무를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70~80년대를 거치면서 정부 주도의 고속도로나 댐, 항만시설 공사가 많았고 국내 건설업체들이 여기에 참여하면서 토목기술을 쌓을 기회가 많았다는것.반면 상대적으로 큰 건물을 지을 기회는 적어 건설기술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70년대의 삼일빌딩과 80년대의 63빌딩 정도가 그나마 건설 당시의 시대상에 비춰볼 때 높은 빌딩에 속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국내 건설기술의 미래는 밝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주변 여건으로 볼 때 200년대 초반에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수준에 다다를 것으로 전망된다는 것. 이미 현대,삼성, 대우, 쌍용그룹 계열 건설업체들이 해외건설 현장에서 시공능력을 충분히 인정받은데 이어 최근에는 사내에 초고층빌딩 추진팀을 별도조직으로 두고 건설기술의 혁신에 힘을 쏟고 있다.◆ 높이 극복보다 경제적 가치 따져야이밖에 대형 건설업체들을 중심으로 초고층빌딩 건설에 필수적인고압압송장비나 대형크레인 등 첨단장비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초고층 빌딩의 건설기술은 단순히 높이를 극복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과 경제적 가치를따져야 한다.전문가들은 우리 실정에서 초고층빌딩 건설이 사업성과 경제성 측면에서 반드시 우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총체적인 기술 수준을한단계 높인다는 차원에서 필요한 분야라고 말한다.★ 건축법 시행령 개정 서둘러야「1백층짜리 빌딩은 현실적으로 지을 수가 없다」. 국내 건설업체들의 기술수준이 시원치 않아 나오는 말이 아니다. 바로 현행 건축법 시행령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 1백층짜리빌딩을 지으려면 상당 부분 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건축학계 등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초고층건축물에 대한 요구가증가하고 실제로 건설을 준비하는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으나법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적잖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는 것.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건축 관련 법령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세분화되어 있지 않은데다 운영도 탄력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자연 초고층건물이 갖는 경제적 효율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앞으로 국내에 들어설 초고층빌딩에 적용될법을 새로 만들거나 대폭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관련 법령 가운데 전문가들이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대표적인조항은 크게 5가지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승용승강기의 산정대수, 건축면적의 산정, 헬리포트 설치에 대한 문제, 피난층의인정, 배연설비에 대한 기준 등이다.이 가운데 승용승강기의 산정대수를 예로 들어 살펴보자. 현행 건축법을 보면 6층 이상 3천㎡ 이하 건축물에는 엘리베이터를 1~2대,3천㎡ 초과시에는 증가면적 2천~3천㎡ 이내마다 1대의 비율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게 돼 있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초고층건물을 지으면서 만약 이 법을 따를 경우건물 전체에 온통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헬리포트 설치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행 건축법상으로는 층수가 11층 이상인 건축물로서 11층 이상 각층의 바닥면적 합계가 1만㎡이상인 건축물의 옥상에는 반드시 헬리포트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다. 1백층은 고사하고 70층 이상만 되어도 옥상에 강한 바람이 불어 실질적으로 헬리콥터가 이착륙하기에 많은 위험이 따르는 까닭에 헬리포트가 필요없다는 것.반면 일본과 미국은 이미 오래전에 관련 법령을 정비, 우리와 대조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난 63년 건축법의 개정에 따라 용적제 도입과 높이제한 철폐를 계기로 초고층 건축이 가능하게 되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이때 초고층건축물의 경우 일반 건축법규와다른 「특정가구」, 「종합설계제도」, 「고도이용지구」 등의 예외적 적용을 받게 했다. 미국 역시 지난 60년에 건축 관련 각종 법령을 일제히 정비, 초고층 건물을 마음놓고 지을 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