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2조5천8백억원) 진로(4천6천60억원) 대농(4천7백70억원).종금사가 기업어음(CP)할인 등 대출금과 지급보증으로 제공한 액수다. 모두 3조5천2백억원의 이 천문학적 액수는 국내 종금사의 경영난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다. 종금사는 이들 그룹들이 부도유예협약의 적용을 받게 되면서 이자는 물론 원금 회수마저도 위태롭게됐다. 절체절명의 「유동성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화종금의 한관계자는 지난 9월부터 한푼의 이자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종금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설상가상으로 쌍방울과 태일정밀 등 중견그룹이 넘어지면서 종금사들은 또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 쌍방울그룹이 안고 있는 8천3백억원의 여신중에서 종금업계가 4천4백60억원을 차지하고 있다.(은행연합회자료) 이번에는 부실여파에서 한발짝 벗어나 있던 아세아한국 한불 새한 등 선발종금사들도 1천5백30억원의 여신을 제공한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어음의 매출비중이 적고 여신심사기능이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선발종금사들도 쌍방울의 난파가능성을 예측하는데는 실패한 것이다. 1백20억원의 여신을 제공한 한국종금의한 관계자는 『의류업체인 쌍방울을 보고 대출을 해 줬으며 이 업체는 재무구조가 양호한 걸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태일정밀에도2천억원 가까운 여신을 제공하고 있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대그룹에 발목을 잡히면서 그 후유증이 외화차입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외화를 들여와 기업의 운영자금이나 설비자금을 조달하는 종금사 본연의 설립목적을 위협할 정도다.◆ M&A 등으로 자구책 강구조달금리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한보 기아사태를 겪으면서 조달금리가 「Libor+0.73%」로 상승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0.05%포인트가 상승한 것.외화자금 조달의 어려움은 한국의 대외신인도 하락에도 기인하나근본적으로는 종금사의 자체 신인도가 낮기 때문이란게 전문가들의분석이다. 유동성위기와 자기자본의 부족이 주범이다. 자기자본은종금사의 영업규모를 결정하고 부실여신의 충격을 완화해 주는 장치로 작용한다. 8월말 현재 30개 종금사의 자기자본은 4조4백70억원으로 업체당 1천3백억원에 불과하다.「종금사위기론」이 확산되면서 CMA(어음관리계좌)나 표지어음 등「순수신」의 격감도 두드러진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3/4분기종금사 수신은 은행권의 MMDA(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 예금) 취급과종금사 위기론으로 수신고가 1조 2천억원이나 빠졌다. 여신도 마찬가지다.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1조5천1백억원 정도 줄어들었다.이같은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1조원을 한은특융으로 지원했다. 부도유예협약 관련 여신이 자기자본의 50%를 차지하고 경영권포기각서 등을 포함한 자구노력계획서를 제출한 업체들이 그대상이다. 한은특융으로 5백억원의 수지개선효과가 기대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게 종금업계의 자체진단이다.80%∼90%에 달하는 기업어음 매출 의존도를 줄이고 자기자본을 늘리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M&A(기업인수합병)와 증권회사, 중소기업전용은행 진출 불가피론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사정에서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