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간 미국과 한국의 경제성적표를 비교해 보면 하늘과 땅,바로 그 차이다.미국 경제는 호황의 날개를 달고 욱일승천했지만 한국 경제는 지리한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오기는 커녕 아예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특히 미국 경제는 7년간의 장기호황이 지속되면서도 이례적으로 물가안정 속의 견고한 성장을 달성해 「뉴 이코노미(New Economy)」라는 칭송을 한몸에 받고 있다. 한마디로 A학점이다.반면 한국경제는 5년전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 기치와 함께 요란한출발을 했지만 결국엔 대기업 연쇄부도, 증시폭락, 외환불안, 금융위기 등 총체적 난국에 빠져 헤매고 있다. 낙제점인 F학점이란 얘기다. 물론 미국과 한국의 경제 규모상 똑같은 스타트 라인에서 출발한 것으로 볼 순 없지만 두나라 경제가 걸어온 길 자체가 상반된것은 분명하다.우선 승승장구하는 미국경제를 보자. 지난 90년대 초까지만 해도미국경제는 국력쇠퇴와 경쟁력 약화로 완전히 가라앉는게 아니냐는비관적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90년대 초의 단기적 불황에서 벗어나 지금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또 다른 황금시대를 맞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91년 3월이후 성장세를유지하고 있는 미국 경제는 성장 고용 물가라는 세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성공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기도 하다.◆ 미국, 구조조정으로 실업문제 해소성장의 경우 미국경제는 지난해 2.4%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기록한데 이어 금년 1/4분기엔 분기별 성장률로는 10년만의 최고치인 5.9%를 달성했다. 이에 따라 올 전체로는 3.5%의 고성장을 이룰전망이다. 지난 92년부터 96년까지 미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도 2.6%를 기록해 같은기간중 유럽의 연평균 1.5%와 일본의 연평균 1.3%에 비해 크게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미국의 성장은 특히 물가안정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더욱 돋보인다.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92년 이후 3.0% 선을 밑돌면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과 근로자들의 임금인상자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전통적으로 고성장은 임금상승을 불러 인플레를 유발한다는게 정설이지만 최근의 미국경제는이런 경제이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미국경제의 고성장은 선진국 경제의 고질병인 실업문제도 단번에해소했다. 지난해 미국의 실업률은 5.4%. 이것이 올들어선(지난 5월중) 4.8%로 떨어져 지난 73년 이후 최저 수준을 보였다. 이는 산업구조조정과 경기 활황으로 그만큼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80년대 이후 미국 근로자중 4천3백만명이 기업들의 다운사이징 등에 따라 일자리를 잃었지만 리스트럭처링으로 7천1백만명을 흡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됐다. 2천8백만명의 순고용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금년 들어서만 월평균 21만3천명이 새 일자리를 얻고 있다는게 전문기관들의 조사결과이기도 하다.이같은 미국경제의 우수한 성적을 가장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 주가다. 해마다 급등하고 있는 미국의 주가는 날개 단 미국경제를 상징하고 있다. 미국 증시는 95년 초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불안한 장세를 연출하기도 했지만 기업들의 수익 향상으로 지난 94년이후 수직 상승선을 그리고 있다. 94년말 3천8백선이었던 다우존스 지수는 95년말 5천1백선을 넘었고 작년 10월엔 6천 포인트도 가볍게 돌파했다. 금년 들어선 지난 6월10일 7천5백 포인트, 10월21일 8천 포인트를 각각 뛰어 넘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했던 지난 92년말(다우존스지수 3천3백포인트)과 비교하면 주가가 2.5배나상승한 것이다.이에 반해 한국경제의 실상은 참담하다. 미국경제가 7년 가까이 흔들림없이 탄탄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냄비경제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채 지금은 혹독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한국주가 5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지난 5년간 한국경제의 실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92년과 93년 경제성장률이 각각 5.1%와 5.8%로 침체기에 있던 한국경제는 94년 엔고와 반도체 호황 등으로 8.6%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95년에도 8.9% 성장이라는 높은 성적을 나타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는 경기가 다시 급락해 최근엔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져있다. 올해의 경우 경제성장률이 6%는 넘어 그나마 지표상으론비관적이지 않다는 견해도 있지만 기업이나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위기 그 자체이다.실제로 연일 터져나오는 대기업 부도사태와 신용공황으로 인한 금융시장 붕괴 위기감은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다. 특히 이런 불안심리로 한국경제에 대한 대외 신인도가 추락해 주가는 폭락하고 달러환율은 급등하고 있어 한국경제의 내일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경제의 종합성적표인 주가의 경우 지난 10월20일 5백65까지 떨어져지난 92년 10월(5백57.86)이후 5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 94년11월 1천1백38포인트까지 치솟았던 주가가 3년만에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국경제의 위기를 반영, 미국 달러화에대한 원화환율도 지난 10월22일엔 사상 처음으로 9백20원을 넘어서불안감을 더해줬다.이밖에도 수출증가율은 지난해 3.7%에 그친데 이어 올해도 한자리수 증가에 머물 전망이며 대기업들의 명퇴 등 감량 경영으로 실업률은 작년의 2.0%에서 2.8%로 크게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의경우 실업률은 3%를 넘어서 한국경제에도 이젠 실업문제가 고민거리로 등장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물론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인 미국과 이제 막 개도국을 벗어난 한국경제를 경제실적만으로 단순 비교하는 것은 대학생과 초등학생을맞비교하는 것과 같을지 모른다.그럼에도 두나라가 비슷한 시기인 92년말과 93년초에 정권이 바뀌어 새로운 경제정책을 동시적으로 구사했다는 점에서 미국과 한국의 경제 성적표는 심심치 않게 비교의 도마 위에 오르는 게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경제가 고실업 저성장이라는 과거의 골칫거리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시대를 열어가고 있는데 반해 한국경제는 고비용 저효율이란 과거 문제를 풀기는 커녕 금융위기라는 새로운 숙제까지 떠안게 된 현실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