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국제통화기금)의 신탁통치」.정부가 IMF로부터 최소 2백억달러 이상의 구제금융을 요청키로 결정하자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는 첫마디다. 구제금융을 받으면 통화 재정 외환정책 등 거시경제운영에서 IMF와 상의를 해야 하는 상황을 빗대는 말이다. 경제운영의 주권을 상당부분 침해받는다는 얘기다. 동시에 광복 직후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놓고의견이 분분했던 것처럼 찬반에 대해 딱부러지게 입장을 밝히기 어려운 곤혹감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경제주권을 상당부분 제약받지만 금융개혁법안 하나도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하는 경제주체들의능력을 볼 때 차라리 외부힘을 빌려서라도 금융개혁을 이루자는 절박함이 뒤엉켜 있다.그러면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 복합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IMF구제금융은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환율 주가 물가 금리 수출 등 주요거시경제지표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가.금융전문가들은 IMF의 구제금융이 △금융산업을 포함한 산업구조개편의 가속화 △자본시장 개방확대 △저성장·긴축재정·통화정책·경상수지적자 축소 등 거시운영정책 변경 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IMF의 요구대로 진행된다면 긴축적인 통화정책과 재정정책그리고 기업들의 투자위축에 따른 저성장 등이 예상된다. M&A의 활성화는 물론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 실업도 불가피하다.이중에서도 IMF는 한국경제 특히 낙후된 금융시스템이 전세계의 경제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며 금융산업의 재편을 강력히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11위의 무역대국인 한국이 금융공황으로 파산하면일본 중국을 거쳐 미국에까지 그 여파가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이같은 시각은 『한국 금융위기 때문에 북구 스웨덴의 주가와 통화까지 급락하고 있다』라는 <월 스트리트 저널 designtimesp=7414>의 보도에 잘 나타나있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산업은 구조조정과 부실채권정리를 강력히 요청받을 전망이다.◆ 금융기관 대량해고 불가피IMF의 금융산업개편 요구는 국내금융산업을 근본에서 뒤흔들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지난 19일에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에담고 있는 내용보다 훨씬 강력한 요구다. 이미 IMF로부터 자금을지원받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는 대대적인 부실금융기관의 정리와선진국 수준의 자산건전성 규제 등을 실행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수하르토 대통령의 인척이 경영하는 은행을 포함한 16개 부실은행을 폐쇄했다. 대부분 영세한 은행이지만 국내금융기관에 시사하는바가 크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인도네시아와 태국의 선례에서 알 수 있듯이 IMF는 대규모 부실채권을 안고 있는 국내 종금사나 은행들의 자구노력을 강력히 요구할것으로 보인다.자구노력의 핵심이 군살빼기에 있다고 한다면 금융기관의 대량해고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은행등 금융기관은 부실채권을 줄이기 위해 여신심사기능을 강화하거나 자기자본을 늘리는방향으로 나갈 전망이다. 과거처럼 청탁이나 외부압력에 밀려서 대출을 해주지는 않겠다는 각오다. 기업이나 가계입장에서는 은행돈을 사용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물론 신용이 좋다면지금보다 더욱 개선된 서비스를 금융권에서 제공받을 수 있다.금융환경의 급변은 기업에게도 적잖은 부담으로 와 닿는다. 과거처럼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차입경영에 의존해서는 생존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결국자기신용에 따른 직접금융이나 간접금융으로 투자자금을 마련해야한다. 자기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는만큼 기업간 실력차이가 더욱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정부가 금리와 세율을 인상하는것도 기업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세금부과는 가계의 소득감소와 이에 따른 구매력 축소, 기업의 투자감소로 연결되기 때문이다.결국 기업들의 투자위축은 경제성장률 둔화로 이어진다. 최근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5∼6%대로 잡았던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수치를 대폭 수정하고 있다. 해외금융기관들은 3∼4%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예상한다. 물가는 오르고 경제성장률은 둔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지난 94년 금융위기로 IMF의 자금지원을 받았던 멕시코의 경우 이듬해 경제성장률이마이너스6%대로 떨어졌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나 볼수 있다던 현상이 국내에서도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수출은 더욱 증가할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다.환율상승은 국산제품의 가격경쟁력을 강화시켜 수출경쟁력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1백30억 달러로 예상되는 국제수지적자폭은 내년에는 더욱 줄어들 전망이다.◆ 과대평가 일침 가하는 약이 될수도김상노 한국산업은행 조사부 경제조사팀장은 IMF의 금융개혁 요구에 대해 『그동안 실력에 비해 과대평가됐던 한국경제를 다시 한번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으면서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었던 금융개혁을성공적으로 추진하는 계기로 삼으면 「보약」이 될수 있다』고 말한다.자본시장에 대한 개방요구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IMF는 태국(49%)과 인도네시아(49%)에 비해서도 한국의 자본시장 개방(26%)이 낮다며 더욱 확대하라고 요구해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채권시장에대한 문호를 대폭 확대하라고 요구할 전망이다. 채권시장의 개방은금리차를 노린 국제여유자금의 유입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달러화의 유입은 결국 원화가치를 상승시켜 환율상승추세를 멈추게 할전망이다.최규완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IMF의 자금이 본격적으로들어오면 단기 외화자금난은 해소될 것이며 외환부족에 따른 환율상승추세가 한풀 꺾일 것』이라고 얘기한다. 한일은행 김유종 해외자금팀장도 『단기적으로 달러화 공급이 늘면서 달러가치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환율이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팀장은 종금사나 은행등 외환부족에 시달리던 금융기관의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정부도 IMF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힘들다. 물가상승을억제하기 위한 긴축재정이 불가피하다.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고또한 달러화 공급에 따른 통화량증발 → 물가상승압력을 차단하기위해 세금을 가급적 많이 거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공부문의 비대한 조직팽창도 IMF의 지적대상이 될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상노팀장은 『1백조에 이르는 연·기금 등이 IMF의 지적대상이 될 공산이 높다』며 『금융개혁이 실패한 것도 따지고 보면 공무원들의 밥그릇 싸움이 주원인중 하나이기 때문에 공공분야의 대대적인 개혁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멕시코나 태국 등과는 달리 긴축재정에 대한 요구는 상대적으로 약할 것으로 보인다.한국정부의 재정이 비교적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이다.10년만에 다시 신청한 IMF구제금융. 금융개혁을 비롯한 한국경제의시급한 현안을 개혁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인지가 관심사로 떠오른다.스스로의 구조조정능력을 상실한 외부로부터의 수혈은 자발적인 개혁보다는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더욱 고통스럽고힘든 시련을 제공할 것은 틀림없다.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