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0년대초 미국의 경제학자 3인이 집필한 논문 내용중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실업률이 1% 올라갈 때마다 9백20명의 사람들이 자살하고 6백50여명이살인을 저지른다. 또한 5백명이 심장마비와 각종 질병으로 사망한다. 그리고 4천명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3천3백명이 교도소에 들어간다」.실업이 미국인과 미국사회 전체에 드리우는 암운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바다건너 미국의 과거지사만은 아니다. 2000년을 불과 2년앞둔 한국이 당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실직의 고통을못이기고 자살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실업에 대한 「집단 히스테리증후군」이 나타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처럼실업이 주는 악영향은 국경을 초월한다. 실업은 한 가계의 생존에치명적 타격을 가한다. 「고개숙인 가장」을 양산한다. 한 가족의평화를 파괴한다.게다가 인적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사회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힌다. 실업자가 됨으로써 생산하지 못한 재화와 서비스가 바로 실업의 경제적 비용이다. 일반적으로 실업률과 GDP(국내총생산)성장률간에는 일정한 연관성이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 오컨은 「완전고용상태에서 실업률이 1% 상승하면 총생산은 2.5%정도 떨어진다」는 법칙을 발견했다. 이것을 「오컨의 법칙」이라고 부른다.이 법칙은 미국경제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업의 증가가 노동생산성의 감소와 소비,투자를 위축시켜 경제전체의 총생산능력을 대폭 떨어트리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경제운영주체가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현안이 실업과 인플레이션(물가)이라고 하는 이유도 이같은 맥락에서이다. 이중에서도실업이 한 가족의 생계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직접적이다. 인플레이션이 물가상승에 따른 돈가치의 하락으로 경제주체의 구매력을감소시키는 반면, 실업은 특정가계의 생존수단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이같은 실업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경제예측기관마다 다소 차이가있지만 내년도 실업률이 적어도 4%는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올해의 2.5%보다 무려 60%나 급증한 수치다.대그룹의 잇단 구조조정과 금융산업의 빅뱅이 임박하면서 대규모실업이 예고되고 있다. 여기다 IMF의 경제운영간섭으로 이같은 「저성장→고실업」이 구조화될 전망이다. 당분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정·통화정책을 탄력적으로 집행하기가 쉽지 않아서이다.설상가상으로 한국경제가 과거처럼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 힘들어미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경제개발을 시작한후 기업들의 주된관심사는 우수한 인력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있었다.그러나 성장률이 낮아지면서 고용흡수력이 점차 떨어지는 경향을나타냈다. 즉 고용흡수력이 큰 경공업이 퇴조하고 흡수력이 적은정보통신업이 주력산업으로 부상하면서 경제성장에 비례한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자동화 기계화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지금까지 일자리보다 사람구하기가 힘들었던 한국경제. 이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의포기」를 강요하는 실업이란 어두운 터널의 입구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