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잘라야 하는가』 『그토록 무자비하게 쫓아내도 되는가』 『다른 방법은 없는가』.최근 기업들이 대규모 감원계획을 발표하자 근로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기업인들이 경제위기를 빌미로 「샐러리맨 대학살」에 나섰다고 비난하는 이도 있다. 물론 경영계의 답변은 명확하다. 대량감원을 포함한 수량적 고용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마당에 무슨 수단인들 못쓰겠느냐는 얘기다.이에 대해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부실경영의 책임을 근로자에게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강제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저지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노동전문가들은 갈등의 해답을 찾기 위해 미국 일본 등으로 눈을 돌린다. 위기상황에서 선진국기업들이 어떻게 구조조정을 단행하여 재기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미국식 구조조정은 한마디로 과감한 감원이다. 지난 92년부터 95년사이 미국 15개 대기업이 잘라낸 해고근로자는 66만2천9백명. AT&T는 전체 근로자의 30%에 달하는 12만3천명을 잘랐고 IBM은 35%인12만2천명, GM은 29%인 9만9천4백명을 감원했다. 필름업체 코닥은수량적 고용조정과 기능적 고용조정을 병행함으로써 재기에 성공했다.90년대 들어 근로자 13%(1만6천8백명)를 줄였지만 감원은 최대한 자제했다. 해고보다는 배치전환, 비주력사업 처분, 부서별 독립채산제 등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렸다. 그렇다고 코닥이 택한 점진적 고용조정이 최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컴퓨터업체 IBM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80년대 후반감원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채용억제 조기퇴직 등 소극적 조치만 취했다. 그 사이 회사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고 회장까지 갈렸다. 93년이후 대대적으로 고용조정을 단행하고서야 위기를 벗어났다. 미국은 과감한 구조조정에 힘입어 세계 정상의 명예를 되찾았다. 기업의 경쟁력이 되살아났고 80년대초 10%선에 달했던 실업률은 5%안팎으로 떨어졌다. 일본 기업들은 코닥보다도 더 온건한 고용조정방식을 택했다. 해고 대신 채용억제 잔업단축 배치전환 일시휴업조기퇴직 명예퇴직 등 소극적 수단만 썼다.◆ 소극적 수단, 경제회생 도움안돼이런 식의 고용조정은 근로자들의 고통을 일시적으로 덜어주긴 했지만 경제회생에는 기여하지 못했다. 91년 시작된 헤이세이 불황은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80년대말 2%에서 맴돌던 실업률이 지금 3%대로 올랐다. 일본 기업들은 이제서야 미국식 고용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화이트칼라를 고용조정 대상에 포함시키기 시작했고 특정인을 잘라내는 「지명해고」를 단행하기도 한다.물론 미국식 구조조정에도 문제는 있다. 무엇보다 근로자들의 애사심과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 적자생존 원리에 따른 대량해고로 빈부격차와 학력간 임금격차가 커진 것도 문제다. 구조조정후 사회적약자는 더욱 비참해졌다. 하지만 미국 일본의 구조조정이 남긴 결론은 자명하다. 이들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에서 구조조정에 나서는우리로서는 「비상수단」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한국노동연구원 최강식 연구위원은 『감원을 포함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다만 『사업장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강도와 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근로자들이 공감해야구조조정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고 출혈을 줄일 수 있다』고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