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산업 대개편의 막이 오르면서 국내 금융기관간 짝짓기도 설왕설래가 많다.물론 금융개편의 구도는 아직 유동적이다. 금융위기 자체가 일촉즉발이어서 금융기관들이 어떻게 될지조차 점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그렇지만 정부가 그리고 있는 금융산업재편 지도는 어느정도 윤곽을 드러냈다. 은행 보험 증권 종금 신용금고 할부금융사 등으로 다기화돼 있는 금융산업을 단순화한다는 것이다. 그 중심은 은행 투자은행 보험 여신전문기관 등 4가지다.이에따라 종금사 증권사 등과 이른바 제3금융기관은 「헤쳐모여」가 불가피해졌다. 또 IMF의 요구를 보면 은행산업내에서도 재편의소용돌이는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마디로 「적자생존」이라는 정글의 법칙이 금융산업을 지배하면서 살아남지 못하는 금융기관은 도태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 도래하게 됐다.금융산업재편의 핵심은 단연 은행이다. 은행과 은행이 합쳐서 대형은행이 될 수도 있다. 또 종금사와 증권사를 흡수, 일부 업무를 겸업하는 은행이 탄생할 수도 있다.특히 내년 상반기중에는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금융기관인수도 허용돼 판도변화는 예측을 불허하고 있다. 더욱이 IMF가 끈질기게 부실은행의 폐쇄를 요구하고 있는데다 정부가 모든 은행에 현물출자를 실시, 사실상 은행의 운명을 좌우할 예정이어서 금융산업재편은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은행+은행=은행정부는 무려 35개에 달하는 은행을 크게 3가지 유형으로 통폐합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우량기업과 외국유수기업을 상대하는 「선도은행」이 첫번째 유형이다. 또 대기업및 중견기업과 거래하는 「일반은행」, 지방중소기업을 주고객으로 삼는 「지역은행」이 정부가상정하는 유형이다.그렇지만 구체적으로 그 대상이 어디고, 언제까지 통합한다는 일정은 나와있지 않다. 다만 내년3월까지 모든 은행에 대해 자산부채실사를 실시, 그 결과에 따라 A, B, C등 세등급으로 분류해 6월까지합병 등의 조치를 취한다는 스케줄만 확정돼 있을 뿐이다.금융계에서는 이와관련,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가장그럴듯한 시나리오가 부실은행의 우선적 인수합병(M&A). 지난9월말 현재 25개 일반은행의 6개월이상 이자를 한푼도 받지 못하는부실여신(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은 총21조4천6백10억원으로총여신의 6. 8%에 달한다.특히 시중은행중에선 제일과 서울, 지방은행에선 제주 충청 전북대구은행 등의 부실이 심각하다. 이를 근거로 부실은행들이 우선적인 정리대상으로 금융계에선 거론돼왔다. IMF에서도 실제 이들중 2개 은행에 대해서는 폐쇄를 요구해왔고 정부는 6개월의 유보기간을확보하는 선에서 협상을 마무리지었다.그러나 변수가 생겼다. 정부에서는 부실채권정리기금을 통해 이들부실여신을 모두 사들이기로 결정했다. 서울 제일은행은 이미 부실여신의 절반을 팔았다. 정부는 또 서울 제일은행에 각각 1조2천억원의 현물출자를 하는 방법으로 자기자본을 늘려준데 이어 다른 은행에도 현물출자 형태의 증자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따라서 현재로선 정리대상 부실은행 「0순위」를 꼽는 건 무의미하다. 다만 IMF가 내년 3월까지 대손충당금과 유가증권평가충당금을1백% 쌓도록 하고 있어 정리대상 은행은 내년 3월께나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이와는 관계없이 떠도는 시나리오는 많다. 한국기업평가는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은행으로 조흥 신한 국민 등 3개 은행을 꼽았다. 이들 은행이 합병주체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실제 이들 은행은 올해도 영업실적이 괜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부실은행이나 후발은행, 또는 지방은행을 흡수합병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이밖에 재무구조가 건실한 한일 외환 주택은행과 장기신용 하나 기업 산업은행 등이 합병의 주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력한 선도은행을 탄생시킨다는 의미에서 외환업무에 노하우가 있는 외환은행과 소매금융이 탁월한 국민은행의 합병설은 그동안 꾸준히 나돌았던 시나리오다.또 도매금융에 우월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산업은행이나 장기신용은행이 후발은행과 부실은행을 흡수할 것이란 얘기도 그럴듯하다.아울러 중소기업 전담은행을 합친다는 의미에서 「중소기업+대동+동남」설이, 지역적 연고가 겹치는 은행을 정리한다는 취지에서「동남+부산+경남」설과 「대구+대동」의 결합모델이 거론되고있다.그러나 당장 가시화될 은행합병은 우량은행이 부실은행을 흡수하는시나리오다. 이는 IMF의 강력한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사실상 모든 은행의 주인으로 등장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따라 은행지도는 확연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은행+종금=은행종금사는 이미 해체 단계에 들어섰다. 9개 종금사의 외환업무를 은행이 떠맡기로 한데 이어 14개 종금사가 업무정지 조치를 당했다.업무정지를 당한 14개 종금사는 사실상 부도처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들 종금사가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기업 은행 증권사 등과 합병을 활발히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이중 상당수는 은행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게 금융계의 대체적인시각이다. 이와 관련, 주목을 끌고 있는게 외환업무를 매개로 짝짓기한 은행과 종금사다.재경원은 이미 △삼양종금과 외환은행 △경남종금과 산업은행 △고려종금과 기업은행 △한길종금과 주택은행 △삼삼종금과 서울은행△영남및 경일종금과 한일은행 △나라종금과 조흥은행을 반강제적으로 맺어줬다. 현재의 구도상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한 해당 종금사를 이들 은행이 떠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경원은 특히 종금사를 떠안는 은행에 융통어음의 발행 할인 매매중개등 어음관련 업무를 허가해준다는 방침을 발표, 이같은 의도를분명히 하고 있다.이밖에 업무정지를 당한 청솔 한솔 신세계 쌍용 항도 대한 신한 한화 중앙종금 등도 모기업에 편입되지 않는한 은행권에 흡수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은행+증권=은행증권회사도 금융산업재편의 소용돌이에 이미 말려 들었다. 고려증권은 이달초 최종 부도처리됐다. 다른 몇개의 증권사들도 단기자금조달에 애로를 겪으며 부도위기에 내몰리고 있다.현재 증권업계에서는 재무상태가 나쁜 3~4개 증권사가 우선 정리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2년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소형증권사인S사를 비롯, K증권, 또다른 S증권이 1순위로 거론된다. 심지어 대형D증권과 모그룹의 자금악화설이 끊이지 않는 대형S증권도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도 공공연하다.그러나 이들 증권사중 은행들이 탐내고 있는 증권사는 드물다. 증권사 설립이 사실상 자유로워진데다 자기 코가 석자인 은행들이 그만한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흥증권 한일증권 일은증권산업증권 등 은행 자회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은행권에 흡수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