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금융대란 와중에 이달초 고려증권이 최종부도 처리됐다. 이어 채 열흘도 안돼 증권업계 4위인 동서증권도 쓰러졌다. 이에 앞서 대한 쌍용 중앙종금 등 14개 종금사는 극심한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영업정지 조치를 당했다. 금융기관에 대한 영업정지는사실상 부도와 마찬가지다. 대기업들의 연쇄부도로 20조원을 넘는부실여신을 떠안고 있는 은행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언제 누가먼저 좌초하느냐가 시중의 관심사일 뿐이다. 한국경제 자체가 국가부도라는 살얼음 판을 기고 있는 마당에 금융기관의 부도는 당연한귀결인지도 모른다.어쨌든 금융기관의 부도 사태는 금융빅뱅의 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다. 대폭발로 경쟁력 없는 금융기관들이 폭사하고 그후 살아 남은 금융사들을 중심으로 금융산업 자체가 판을 다시 짜는, 바로 그런 빅뱅이 터졌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지루하게「예고편」만 반복했던 금융 산업개편이란 「드라마」가 드디어 상영되기시작했다는 얘기다.다만 IMF시대의 금융빅뱅은 우리가 상상했던 구조조정과는 차원이다르다. 그동안 금융빅뱅은 국내 금융기관간 통폐합 정도의 수준에서 인식돼 왔다. 하지만 IMF가 총감독을 맡은 「한국금융 빅뱅」은 국내 금융기관 외에도 주인공이 하나 더 있다. 외국 금융기관들이다. 이들은 빅뱅으로 쓰러진 부실 금융회사는 물론 건실한 금융기관들도 M&A의 타깃으로 삼아 한국 금융업계를 휘젓고 다니는 역할을 맡았다. 이미 정부는 IMF의 요구에 따라 외국 금융기관의 국내 금융기관 인수를 허용키로 했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에서의 금융빅뱅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한가지 확실한 건 한국금융의 빅뱅 과정에서 외국 금융기관이 주요핵심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점. 엄청난 자본력과 합리적인 경영전략, 갈고 닦은 영업 노하우를 무기로 한국 금융시장에 본격 뛰어들이들 외국 금융기관들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한국 금융산업의 재편 구도는 뒤바뀔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각에선 한국 금융산업 구조조정이 외국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도 있다는 성급한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다.또 하나 분명한 게 있다. IMF식 금융빅뱅은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않건 「필름」이 돌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피하고 싶다고회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국경제의 형편이 그렇지 못하다. 빅뱅은 이미 시작됐고 이젠 좋든 싫든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따라가야 한다. 중요한 건 우리의 자세다. 아무리 IMF가 연출한다고 하더라도 이번 빅뱅을 한국 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다.특히 은행 종금 증권사 등 모든 금융기관들이 환골탈태해 뼈를 깎는 자구와 생사를 건 변신노력을 단행할 때 빅뱅은 우리에게 재탄생의 산고(産苦)로서 의미가 있다. 막이 오른 금융빅뱅이 어떤 작품으로 끝을 맺을지, 온 국민이 기대반 걱정반으로 시선을 던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