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한국 경제는 어떤 기업도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간 한국에서 활동하시면서 많은 것을 느끼셨을텐데 한국 기업을 위기로 몰고온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강점들이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힘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기업은 사업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매우 적극적이고 공격적입니다. 그러나 때론 리더십이라는 관점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그래왔기 때문에 사업의 범위를 늘리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사업의 크기에 너무 연연한다든가 제조업에서부터 서비스업까지 사업의 범위를 너무나 넓게 잡는다든지 하는 문제점 말입니다.사업을 확장하는데 주력하다보니 자산(Asset)과 자본(Capital) 사람(People) 등 생산요소의 효율성에는 소홀했던 감이 있습니다. 생산성에는 이차적인 중요성밖에 두지 않았다는 말이죠. 전통적이고경직된 한국의 조직에도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외에 높은 자본비용(Capital Cost)이라든가 높은 물류비, 외부 기술에 대한 높은 의존성 등 구조적인 문제들도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이 위기를 맞게 된데는 과다한 차입경영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입니다.경제가 급성장하는 시기에는 부채비율이 좀 높아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 속도가 떨어지는 기간에는 부채에대한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게 되죠. 현재 한국 기업은 이런 상황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자를 갚기 위해 다시 돈을빌리고 그러다 보니 이자 부담은 더욱 증가하는 식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차입경영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구조가 변해야 합니다.▶ 현재의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 기업이 가장 역점을 둬야하는 사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우선 경영에 대한 시각이 변해야 합니다. 경영의 포커스를 성장에서 가치창조로, 다양한 사업 전개에서 중점사업 육성으로 옮기는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또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해 좀더관심을 쏟고 조직을 유연하고 역동적으로 재구성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하고요.▶ 한국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경쟁력있는 사업을 선택, 그곳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높습니다만.사업을 확장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업영역이 다양하면, 즉 복잡성이 높아지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집니다. 문제는 복잡성이 커지면 위험도 함께 증대한다는 것이죠. 다시말하자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은 큰 기회인 동시에 위기입니다. 미국의 GE 같은 경우 다양한 사업영역을 가지고 있으나 전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대신 GE의 잭 웰치회장은 분명한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시장에서 1등이나2등이 아닌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국 기업에 있어서 현재 문제점이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확고한 원칙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업을 늘리기는 하지만 많은 경영자들이 자신의 여러 가지사업분야와 계열사 중에서 어떤 부문이 자본비용 이상으로 벌어들이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사업을 늘리는게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업에 투자를 해도 언제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지조차명확히 인식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고치지 못한다면 한국은 현재 겪는 경제적인 위기를 당장은 극복한다해도 멀지 않아 다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고치기 위해서는 어떤 실천들이필요합니까.첫째는 사업의 포트폴리오를 구체적으로 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실제로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은 무엇이고 세계적인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사업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 그 사업에 전력하기위해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익이 남지 않는 사업은 정리, 사업 분야를 좁혀 힘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이 때 세계적인 시각에서조직과 핵심 사업을 재구축해야 합니다. 둘째는 불필요한 비용을줄이고 자산과 자본 인력의 생산성을 향상시킴으로써 위기로 인한피해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셋째는 항상 비상사태에 대비, 현금 흐름(캐시 플로)을 중시하면서 어느 정도의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합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부동산을 처분하고 한계사업을 정리하는 등 나름대로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만.제가 한국 기업의 자구노력을 보면서 우려하는 것은 이런 구조조정노력이 부동산을 팔고 인원을 줄이고 하는 단기적인 비용절감 차원에서 그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사업을 처분하고 사람을 줄이는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어떤 조직으로 가야 효율성이높아지고 이익률이 높아질 것인가를 고민하고 여기에 맞춰 구조를변화시키는게 중요합니다.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고 절약하는 것도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사업 영역을 검토, 세계적으로 성공할 부분을 가려내고 영업과 유통 관리 등 경영 전프로세스에서 생산성을높이는 것이야말로 리스트럭처링의 핵심입니다.▶ 현재 한국 기업은 환차손으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입고 있습니다.환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과감한 수출 드라이브에 나서야 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수출을 늘려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수출 대상 국가별로서로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어떤 나라에 어떤 상품을, 어떤가격으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수출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한데 우선 경영진이 수출에 대해 세세한 부분, 예를 들어 상품의 이익률까지도 알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무조건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는 더 이상 세계 시장에서 버티기 힘들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입니다. 그 기업이 어떤 국가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지 분석하는 냉철함과 그에 따른 조심스런 계획이 필요합니다.▶ 한국은 이제 IMF 체제로 들어섰습니다. 외국 투자가들이 한국에 곧진출할 것으로 보십니까.외국 투자가들은 한국에 대해 기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한국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이 세계적인 수준의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다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고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당장은 선거 후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IMF의 가이드라인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 변수가 많아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한국 경제에 대해 상당히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금융 위기를 겪은 스페인이나 멕시코 스웨덴 영국 등의 경우 경제가 회복되기까지 1∼3년정도 걸렸는데 한국은 18∼24개월 정도 걸리지 않을까 전망합니다.▶ IMF의 요구 조건이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아직 구체적으로 이뤄진 것이 없고 상황이 불명확해서 지금 무엇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단지 현재 상황을 두가지로 정리할수는 있다고 봅니다. 한국 스스로도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과 변하기 위해서는 고통, 특히 금융분야에서의 어려움이 따른다는 점입니다. IMF의 요구조건이 현재 한국에 큰 부담이고 압력이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올바르고 긍정적인 방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결국 한국 정부와 기업, 금융 부문이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달라지겠지요.▶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현재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BCG에도 컨설팅 의뢰가 많이 들어올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한국 기업은 스스로를 강하다고 생각하는경향이 큽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물론 한국 기업은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기는 어렵고 스스로를 진단하기는 더욱어렵습니다.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듯 기업도 문제가 생기면 컨설턴트를 찾아 상담을 받으면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기업은 컨설팅에 쓰는 돈을 불필요한 곳에 쓰는 비용이라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컨설팅회사들은 세계적인 기업을대상으로 구조조정 작업을 해왔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의 구조조정사례를 통해 한국 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단은빠를수록 좋습니다. 근시안적으로 비용을 줄이고 절약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업이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한다면세계적인 사례와 조언을 참조하는게 한국 기업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