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국내 대기업회장들의 화두는 단연 수출확대이다. 수출총력체제를 갖추지 않고는 현재의 난국을 풀수 없다는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수출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상수지를 흑자기조로 돌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출환경이 어렵다고 수출을 포기한게 어쩌면 현재의 경제난국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국내 굴지의 대기업총수는 『선진국 시장에서 수출을 포기하면서IMF시대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깨진 쪽박을 쓰고 소나기를 피해가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출확대방안을 마련토록 하고 있다. 대기업회장들이 IMF해법으로 수출을 들고 나온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전반적인 경영환경은 급격히 악화되는데 대응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다. 구조조정이나 체질개선은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혹 어떠한 희생을 참아가면서 구조조정이나 체질개선에 나선다고 해도 금세 효과를 볼수있는 것도 아니다. 내수시장의 위축을 수출로 돌파하게 되면 달러도 벌고 구조조정을 위한 시간도 벌게 되는 이점이 있다.대기업의 수출확대전략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먼저 지난 연말인사에서 수출을 늘리려는 기업들의 몸짓을 살펴볼 수 있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지난 12월 8일 윤영석 그룹총괄회장을 미국지역 본사사장으로 발령하는 등 비즈니스 감각이뛰어난 회장및 사장들 24명을 해외본사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동안세계경영차원에서 잇따라 세워온 해외생산기지 등을 활용해 외화수입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그룹비서실 관계자는 대우그룹내에서 최고의 마케팅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자들이 해외에 파견되는 만큼 그룹의 수출확대에 도움을 줄것이라고 기대했다.삼성그룹이 최근 단행한 사장단 인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도 글로벌 경영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이승웅 유무성 서동균 대표이사를미래 전략시장인 중남미 인도 동구시장에 파견키로 했다. 해외시장의 승부처를 설정, 기존의 사장단을 해외전략거점에 전진배치한 셈이다. 삼성은 95년 일본 동남아 유럽 미주 중국 등 5대 해외본사체제에 이어 올해 도입한 컨트리마케팅을 조기에 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인사배경을 설명했다.◆ 업계간 출혈수출 자제해야구체적 수출목표를 제시하며 계열사들의 수출을 독려하는 경우도있다. 현대그룹은 98년 외화가득목표를 올해보다 21% 늘어난2백81억달러로 확정했다. 내년 내수 매출증가가 4%에 그치는 대신해외 매출을 올해보다 28% 높여 총 매출을 올해보다 14%가량 증가한 92조원으로 높여 달성키로 했다. 이같은 목표가 달성될 경우 현대그룹은 외화수지흑자를 지난해보다 40%가량 늘어난 1백80억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를 위해 현대는 매달 정몽구 회장이 그룹사별 수출실적을 챙기고분기별로 23개사 사장단이 참석하는 「수출전략회의」를 갖기로 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12월 열린 「IMF대책 및 수출전략회의」에서 사장들에게 솔선수범해 직접 뛰어다니며 수출증대에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대우그룹의 수출창구인 (주)대우도 98년 수출목표를 지난해보다10%가량 증가한 1백70억달러로 잡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마련했다. 이밖에 LG상사 SK상사 (주)쌍용 등 대부분의 종합상사들은전년보다 10∼15%가량 수출목표를 높여잡고 수출총력전에 돌입한다는 각오를 다졌다.또 98년 조강생산목표를 전년보다 1백만t 가량 늘려잡은 포항제철은 내수위축에 따른 철강수요감소로 추가생산물량의 상당부분을 수출로 돌리기로 하고 해외영업을 강화하기로 했다. 대우전자는 지난해말 최고경영진의 지시에 따라 수출품목을 다시 조정하는 작업에들어가 세탁기 냉장고 등은 당초 잡았던 수출증가율보다 20%포인트, TV 등 AV제품은 10%포인트씩 각각 높였다. 한국타이어 등도 그동안 내수 중심의 영업에서 벗어나 해외시장을 중점적으로 공략,수출의 비중을 60%가량으로 높이기로 했다. 한국타이어는 해외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지역과 미국에서대대적인 광고 및 홍보활동을 펼치기로 하고 앞으로 3년동안 매년수출액의 4∼5%를 투입키로 했다.무역전문가들은 대기업의 수출강화 전략은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무역협회 신원식이사는 『대기업들이 경제상황이 어려울 때 수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 것은 상당히 희망적』이라며 대기업들이 지난해말 세운 수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기업의 역량을 집중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계획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내년 무역환경은 달러대비 원화환율이 올랐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좋을게 없다. 그동안 국내기업들이 가장 편안하게 공략했던 동남아및 중국시장의 수출전망이 밝지 못하다. LG상사에서 화학제품을 동남아에 수출해온 모부장은 일부 바이어들이 1년짜리 유전스를 요구하고 국내업체간 제살깎기식 출혈수출도 적지 않아 올 수출전망이힘들 것으로 우려했다. 수출은 어떻게든 늘리겠지만 채산성악화가빚어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수출을 늘리려면 수익측면에서 어느정도 양보가 따라야 하는 건 무역업계의 상식이다. 국내 7대 종합상사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어떻게 하면 수출물량도 늘리고 이익도챙길수 있을까 고민해왔다.그렇다고 미국 일본 선진국시장에서 「선전」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바이어들은 벌써부터 달러값이 오른만큼 수입가격을 깎겠다고나서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수입선을 제3국으로 바꾸겠다는 으름장도 따른다. 선진국시장은 뚜렷한 기술과 색깔이 있어야 공략할수 있다. 그래야 유통망을 공략할 수 있다.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미국시장을 공략하기 보다 초기투자비용부담을 이유로 철수하기 바빴다. 미국시장에서 우리나라 제품의 점유율이 지난해 2.7%수준으로 떨어진데에는 충분한이유가 있다. 이같은 현상은 중국제품의 미국시장점유율이 7%대로높아진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수출확대정책’ 새대통령에 요구기업들의 고민은 또 있다. 최근 국내 금융시스템이 와해되면서 무역금융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에따라 수출을 해도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연 20%의 금리로 원화를 조달해 쓰기도 어렵다. 종합상사 외환담당자들은 이른바 네고와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은행들이 추심후에야 자금을 내주는 바람에 수출회사들은 연쇄적인 자금난을 겪어야 했다. 국내의 불안한 금융환경이 무역의 발목을 잡은 꼴이 됐다. 무역업계는 환율상승의 호기를 수출확대로연결하지 못하고 쓸데없는데 정력을 소비했다고 푸념하곤 한다. 심지어 지난해말 국내 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이 제시한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로컬 LC를 열어주지 않아 한때 수출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같은 현상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대기업의 수출확대전략이 빛을 보긴 어렵다.무역업계가 새 대통령에게 수출확대를 정책의 최우선과제로 삼아줄것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무협은 대통령 선거직후 새대통령에게 정부부처 경제단체 및 업계 대표가 참여하는 가칭 「통상진흥회의」를 주재하여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밖에 △외환수수료 인하 등 무역금융활성화 △자본재 수입대체를 위한 지원 △남북경제협력강화 등을 통해 무역수지적자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들은 당장은 수출확대에 초점을 맞추는 경영전략을 쓸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인 수출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계획도 치밀하게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영이 선행되지 않고는 수출을 늘릴수 없기 때문이다.특히 완제품위주의 수출관행에서 벗어나 원부자재 및 기술 등을 수출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