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따부리 강변에서 일박하고 장비를 재검한 후 구게왕국을 향해 출발했다. 평원에는 야생동물들이 경주나 하듯이 질주하고 짙푸른 하늘의 흰구름은 산뜻함을 준다. 양떼가 경사면에서 한가로이 풀을뜯고 있다. 나아갈수록 길이 사라져 구릉을 헤매야만 했다. 계곡의강변에는 하얗게 앙금이 덮여 있다. 이것은 오래전에 티벳이 바다였음을 입증해 준다. 모두 염분이어서 이곳에서는 가축조차 방목할수 없다. 몇개의 산과 계곡을 거쳐 대협곡으로 접어들었다.고개를 넘어서는 순간 대장관이 펼쳐졌다. 사암이 풍화되어 이루어진 조각들은 갖가지 형태를 이루며 예술가의 조각품을 연상케 했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이 무색했다. 시간이 촉박해 두루 감상하지못하고 일행은 계속 전진했다. 계곡을 빠져 나가자 시야가 탁 트이며 평원이 펼쳐진다. 강물이 흐르며 강건너편에 처음으로 숲과 마을이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 잔다 마을에 도착했다. 데모방지 헬멧과 방패를 든 군인들이 많고 경계가 삼엄하다. 티벳의 서쪽 끝 변방이어선지 치안이 불안하고 반정부 시위가 자주 있는 듯했다.이튿날 아침 구게왕국으로 향했다. 20Km 지점에 사파란 마을이 나오고 물이 없는 강바닥을 따라 왼쪽으로 선회하자 멀리 높은 산에구게왕국이 보인다. 9세기 중앙티벳에서 불교를 탄압했던 란다르마왕이 암살되자 군웅할거시대에 돌입했고 그의 아들인 우슨이 이곳서부티벳에 구게왕국을 세웠다.10세기 구게왕인 예세우는 불교를 부흥시켰고 승려를 인도에 파견해 인도의 학자와 고승을 초빙, 불교국으로서의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인도 북부의 라닥왕국의 침공을 받은데다 가장 중요한 식수와농업용수가 중요한 지하수면의 변화로 고갈돼 왕국의 기능은 마비됐다.천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 유적이 건재한 이유는 거의 비가 오지않고 건축물들이 사암으로 축조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많이 파괴되었다. 이 유적은 주거군, 승원, 궁전 등 3층의지구로 구분된다. 겨울 왕궁은 지하에, 여름 왕궁은 산 정상에 웅거하는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지하의 터널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