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2가에서 현대해상화재보험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백종호씨(40)는 한때 잘나가던 회사원이었다. 국내 굴지의 재벌그룹에근무하며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샐러리맨 생활에 점점 회의가 들었다. 뭔가 비전이 없어 보였다. 주변의 친구들 가운데도 하나 둘씩 독립을 하는 경우가 늘어갔다. 결국지난 92년 자신의 일을 해보겠다며 독립을 선언하고 회사에 사표를던졌다.홀로서기에 나선 백씨는 곧바로 서인상사라는 오퍼상을 차리고 국산 가방을 일본에 수출하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꽤 괜찮았다. 그러나 국내의 인건비가 오르면서 가방의 값이 올라 무역을 하는데애로가 많았다. 급기야 인건비가 싼 베트남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함께 사업을 하던 후배가 돈을 갖고 줄행랑을 치는 바람에 적잖은 손해를 입고 가방무역을 포기했다. 이어 섬유 등 다른 일에서도잇달아 고배를 마셨다.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무역환경 역시최악의 상황을 연출했다. 결국 백씨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투자했던돈을 완전히 까먹고 두손을 들고 말았다.빈털터리로 물러난 백씨에게 보험대리점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주변의 추천을 받고 직접 발로 뛰며 알아본 결과 승부를 걸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창업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데다 본사에서 사무실등은 지원해주었다. 보증금 2백만원은 직접 내지 않고 보증보험회사를 통해 해결했다. 보험대리점 창업의 필수코스인 본사 기본교육을 마치고 보험감독원에서 실시하는 시험에도 합격했다. 이렇듯 전과정을 무사히 마친 백씨는 지난해 11월 서울 명동 2가에 서인상사라는 보험대리점을 냈다. 지난날을 못잊어 오퍼상을 할 때 쓰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보험영업은 역시 쉽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 설득하는 일이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보험에 대한 불신감이 의외로 컸다. 그렇다고 그냥 주저앉을 수도 없었다. 죽어도현장에서 쓰러진다는 각오로 고객들을 찾아나서 성실성을 무기로최대한의 믿음을 주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특히 그동안 쌓아온인맥을 최대한 활용해 일주일 단위로 방문 스케줄을 만들어 활용한결과 효과가 좋았다. 또 영업에 나설 때는 자신이 만날 사람을 생각해 추천할 상품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하루하루 노하우가 쌓이고 활동범위도 넓어졌다. 시간이 나는 틈틈이 동대문시장 등 사람들이 많이 활동하는 공간을 찾아나서기도 했다.보험대리점을 시작한지 몇달 안됐지만 백씨는 요즘 큰 보람을 느낀다. 사업실패의 후유증도 완전히 극복했다. 부인 등 주변사람들도일단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내린다. 수입도 월 3백만원에 육박하고있다. 지금과 같은 페이스로 나갈 경우 오는 연말쯤에는 6백만원이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비록 혼자 뛰지만 백씨는 곧전화도 추가로 설치하고 자신을 도와줄 직원도 한두명 정도 채용할계획을 세워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