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는 지난해말 한국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재벌개혁을요구했다. 그러면 IMF가 미국 유럽 일본에서는 시행하고 있지 않은낯선 회계방식인 결합재무제표 작성을 요구한 의도는 무엇인가.안건회계법인의 배기룡 회계사는 『외국인들이 국내재벌의 전체매출이나 부채 그리고 상호지급보증 규모 등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한후 적대적 M&A시도나 증권시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외국인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현행 기업회계기준으로는 국내재벌의진정한 투자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얘기다.IMF의 요구 이전에도 정부는 재벌개혁차원에서 결합재무재표 작성을 검토해 왔다. 증권감독원 유재규 과장은 6공때부터 결합재무제표 작성에 대한 실무적 검토작업에 들어갔다고 들려준다.『6공말기에 재벌그룹들의 비자금과 내부거래를 차단하는 방안의 하나로 결합재무제표작성을 연구해 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1년 가까이 검토하다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보류됐다. 현정권 아래서도 96년초이에 대한 검토를 지시받았지만 결국 「경제난」을 이유로 유보됐다. 구체적인 시행방침까지 결정됐다가 최종순간 경제장관회의에서보류됐다고 들었다.』차기 정부도 현재의 재벌구조로는 더이상 경제발전을 추진할 수 없다는 판단아래 내년부터 도입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경제난」을 이유로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는게 김대중 차기대통령의 확고한 결심이다.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도입될 결합재무제표에 대해 재계는 내심 긴장하고 있다. 물론 겉으로는 회계와 경영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이 시대적 대세라며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결합재무제표가 그룹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냄으로써 현 지배구조에 일대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그러면 재계가 결합재무제표 작성 요구에 애를 태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삼일회계법인의 최권수 회계사는 그동안 개별재무제표나 연결재무제표작성에서 제외됐던 계열사들이 포함되면서 실질적인 그룹의 총매출, 상호지급보증액 등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결합재무제표작성으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계열사간 거래와 상호출자관계가 밝혀짐으로써 그룹의 정확한 실체가 알려지게 된다. 이것은 매출을 담보로 금융을 조달하던 관행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즉 외형위주의 성장전략에서 수익성 위주의 경영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나아가 어떤식으로든지 기업지배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자금난 시달리는 기업에 또다른 부담최 회계사의 설명대로 결합재무제표의 도입은 「현대」「삼성」「대우」 등 재벌의 진정한 실체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룹간 옥석이 구분된다는 말이다. 회계전문가들은 결합재무제표가 도입되면지금까지 알려진 주요그룹매출액중 30∼50%가 줄어들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종합무역상사 자동차판매회사 등을 거느린 그룹들의 외형감소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있다. 종합상사는 철강 선박 반도체 등 이미 계열사 매출에 잡힌 상품을 수출하기 때문이다. 자동차판매회사도 자동차제조업체에서 매출에 잡힌 제품을 판매한다.이같은 추론은 지난해 5월 증권거래소 발표로 뒷받침되고 있다. 증권거래소는 주요 그룹 상장사의 내부거래 현황을 발표했다. 상장계열사들의 내부거래현황을 분석한 이 자료에 따르면 국내 주요그룹의 내부거래비율은 26%에 달한다. 그룹계열사에서 구입한 금액과이들이 계열사에 판매한 액수가 전체 매출·입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얘기다.고합그룹은 3조5천억원의 매출·입중에서 계열사간 거래가 2조원에달한다. 이같은 수치는 고합그룹이 외부업체와 거래한 액수가 1조5천억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한다.반면 대림(2.6%) 동부(2.67) 코오롱(3.97%) 등은 내부거래비율이매우 낮다. 결합재무제표를 작성하더라도 이들 그룹의 매출·입총액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내부거래비율이 높은 회사로는 한진그룹의 한국공항을 들 수 있다.이 회사는 지난해 1천31억원의 매출액중 계열사간 거래가 1천7억원을 차지했다. 내부거래비율이 무려 98%에 달한다. 한솔그룹의 한솔텔레콤도 96%의 내부거래비율을 보이고 있다. 즉 1백62억원의 매출액중 1백56억원을 계열사에 판매하면서 올렸다.이같은 거품이 빠지면 계열사간 구조조정도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화경제연구원 이현정 주임연구원은 『그룹전체의 매출비율을높이거나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그룹매출에 대한 기여도가 큰 계열사나 종목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금까지의 선단식 경영에 근본적인 변화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또한 그룹실상이 공개됨으로써 금융기관과의 관계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가령 금융기관은 거래그룹의 매출이 감소하면 대출한도를 줄이거나 대출금리를 조정할 수도 있다.이같은 가시적 변화 이외에도 책임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질적 발전도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동부그룹 경영조정본부이상돈 차장은 『단기적으로는 외형의 감소로 금융기관에서 자금을조달하거나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할 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숨겨진 실체가 공개되고 상호지급보증이 해소됨으로써 오너 중심의 1인지배체제에 커다란 변화가 올것』이라고 분석했다.◆ 30대그룹 내부거래비율 26%결합재무제표의 도입을 환영하는 것이 대세지만 이를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가뜩이나 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들에 또다른 부담으로 와 닿는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전경련 이병욱 재정금융실장은 조기 도입에 따른 부작용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결합재무제표 도입을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적지 않은 부작용이우려된다. 무엇보다 금융기관이나 일반(기관)투자자들에게 유용한정보를 제공하는데 한계를 갖고 있다. 즉 계열사간의 자산이나 매출총액은 알려주지만 단순 합산에 따른 정확성 결여라는 문제점을안고 있다. 또한 이를 작성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고 제때에 회계정보 이용자에게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이같은 우려는 경영과 회계의 투명성강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힘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대량실업과 두자리수 물가에 시달리는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재벌에대한 가시적인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을 국정운영철학으로 제시한 김대중 차기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확고해서이다. 무엇보다 재계도 IMF구제금융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경영의 투명성제고와 한계기업 정리가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재계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도입이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은 지난 7일 그룹사장단 모임에서 『계열사간 지급보증 해소, 결합재무제표 작성 등을통해 그룹전체의 재무위험을 줄이고 국제신인도를 높이는데 주력하겠다』고 발표했다.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도입될 결합재무제표는 국내재벌들로 하여금외형위주에서 수익성 중시로, 차입경영에서 자기자본으로 사업을하게끔 변신을 강요하는 장치로 기능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