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에선 이겼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한국의 단기외채에 대한 뉴욕협상 타결 결과를 보는 전문가들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비록 2백40억달러의 단기외채를 예상보다 낮은금리로 만기를 연장했지만 이는 당장의 국가부도를 피한 것일 뿐외채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건 아니라는 견해다.실제로 이번 협상에 따른 이자율 상승으로 연간 외채 이자부담만 1백억달러(16조원)를 넘어섰다. 외채의 원리금 상환부담은 물론 그대로 이다. 지난 1월말 현재 국내 외환보유고는 1백20억달러 수준.따라서 자칫하다가는 빚을 얻어 이자를 갚아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이번 외채협상이 당초 걱정했던 것보다는 우리측에 유리하게 타결된 것은 사실이다. 한국 정부가 내건 단기채의 중·장기채 전환조건이 비교적 큰 수정없이 수용됐다.◆ 상환여건 호전, 경제회생 기회특히 JP모건이 내세운 국제입찰 방식의 금리 결정방식이나 외채의국채 전환 등이 배제된 것은 협상단의 커다란 성과중 하나다. 현재의 신용등급에 비춰 볼 때 리보에 붙는 가산금리가 5%를 넘을 수있는데도 가산금리를 1~3년의 만기별로 2.25∼2.75%의 낮은 수준으로 타결한 것도 평가 받을 대목이다. 더구나 2~3년후로 만기가 연기된 외채의 경우 중도상환(콜옵션)조건을 관철시킴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외채부담을 줄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은 것도 환영할만하다.이에 따라 한국은 일단 단기 유동성 부족에 따른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 선언 등 극단적인 상황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올 연말안에 만기 도래하는 2백40억달러의 단기채가 모두 중·장기채로 전환되면 외환위기의 주범인 1년 미만의 단기채 비중이작년말의 52.4%에서 30%대로 대폭 낮아져 당장 빚을 갚는데 한 숨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한국에 대한 대외신인도가 회복돼 차입금리가 낮아지는 등 외환공급 측면에서 선순환의 고리도 마련된 셈이다.우선 한국의 신용도를 투자 부적격의 정크본드 수준으로 격하시켰던 S&P나 무디스 등 국제적인 신용평가기관들이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할 것으로 보인다. 임창렬 경제부총리도 외채 만기연장 협상의타결로 신용평가기관들이 멀지 않아 우리의 신용등급을 회복시킬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되면 어처구니없이 치솟았던 가산금리가 하반기 이후부터는 1%대로 낮아지면서 신규 외화차입의 물꼬도 대폭 트일 것이 확실시 된다. 저금리의 신규차입이 이뤄지면 고금리의 잔여 단기채 5백억달러를 만기도래 때즉시 상환할 수 있게 돼 외채구조는 더욱 장기채 중심으로 튼튼해질 수 있게 된다.◆ 경상 흑자·외자 유입이 살 길또 G7 등 선진 13개국이 조기 지원키로 한 80억달러도 협상타결 이후 개별국과의 실무적인 협의를 거쳐 제공될 예정이어서 단기 외화부족 사태는 극복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뉴욕 낭보」로 인해설연휴 직후 환율과 금리는 떨어지고 주가는 폭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급속도로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작년 11월외환위기 이후 1천6백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원화에 대한 달러 환율이 1천3백원대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또 기업의 연쇄도산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는 고금리도 상당히 하락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렇게 되면 환율폭등에 따른 국제원자재가의 급등 여파로 초래된 물가불안도 진정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더 중요한 건 환율불안으로 주춤하던 외국자본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국내에 유입되면서 폭락한 주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는 등금융시장의 안정세 회복이 뚜렷해질 것이란 점이다. 개별 채권·채무 금융기관과의 외화채무 연장 계약이 향후 2개월간에 걸쳐 진행되면서 이같은 금융시장 안정 속도는 더욱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때문에 IMF 긴급자금 지원 이후에도 종식되지 않았던 외환 및국내 금융위기는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될 것으로 점쳐진다.그러나 이번 협상타결이 우리의 외채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해준것은 절대 아니다. 올해 갚아야 할 2백40억달러를 내년 3월 이후로미뤄놓았을 뿐이다. 한국은 여전히 1천5백억달러의 외채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따라서 내년 이후 한국 경제가 경상수지 적자를보이거나 경제개혁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거시지표가불안해지면 또 다시 외채 상환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특히 가산금리가 2.5% 안팎인 뉴욕협상의 금리조건이 획기적인 신용등급의 개선이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우리 금융기관이 해외에서차입하는 금리의 최저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준 상태에서 적용된 가산금리인만큼 향후 정부보증이없는 국내 금융기관의 신규 차입시는 가산금리가 좀체 그 이하로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결국 한국의 총외채 1천5백억달러에 대한 연간 이자 부담만도 약 1백억달러를 넘어 외국인의 국내 순투자에다 무역수지 등의 흑자분이 이에 미치지 못하면 신규외채를 끌어다 이자를 갚아야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또 원금 상환을 요청받을 때는 상환분에 해당하는만큼 다시 빚을 내야하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만성적인 외채국이라는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다.어쨌든 분명한 건 뉴욕 외채협상 타결로 코앞의 외환위기는 모면했지만 1~3년의 시간을 벌었을 뿐 외채난을 극복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정부와 기업등 각 경제주체가 외환위기를 초래한 폐쇄적인 정책결정 및 경영구조를 개혁하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등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는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경상수지 흑자와 외국자본의 국내유입으로 조성된여유 외환만이 외채 원리금을 꾸준히 갚아 나가면서 외채 총액을줄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외채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려면 아직도 가야할 길은 험하고도 멀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