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판매업체들이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 최근 들어 다단계판매를 가장한 피라미드업체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면서 바짝긴장하고 있다. 특히 국내 최대의 다단계판매업체 가운데 하나로꼽히던 SMK에 대해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자 앞으로의 수사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등 숨을 죽인채 주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고 다단계판매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미지가더욱 나빠질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한편에서는 전반적인 위축에도 불구하고 건전한 업체들을중심으로 재기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극심한 불황을 극복하고 땅에떨어진 위신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타오르고 있다. 특히 다단계판매업체들이 소속돼 있는 한국방문판매업협회(KDSA)는 지난해 12월부터 전국을 돌며 판매원교육에 열을 올리는 등 자구책 마련에 힘을쏟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교육이 더욱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대대적인 행사를 기획했다. 지난 2월26일에는 협회장에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한성태 뉴스킨코리아 사장이 취임, 다단계판매의 재도약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밖에 협회는 지난해말 「다단계판매를 올바르게 압시다」란 주제로 다단계법 설명회를 주최, 건전 다단계판매를 위장한 불법피라미드의 판매유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했다. 협회 배기정 전무는 『한마리 물고기가 물을 흐리듯몇몇 불법업체들이 지난 3년여 동안 쌓아온 업계 전체의 명예를 추락시켰다』며 앞으로도 협회는 건전한 업체를 육성하는데 최선을다하겠다고 다짐했다.사실 국내에 다단계판매업체가 본격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등록 1호로 기록돼 있는 한국암웨이가 지난 95년 7월에 등록했으니 이제 불과 2년8개월여가 지난 셈이다. 그후 물꼬가 트이면서 많은 업체들이 줄을 이어 등록을 했다. 95년 한해 동안에만 전국적으로 무려 60여개의 업체가 등록을 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늘어현재는 등록업체만 1백50여개사에 이른다. 이는 업종의 특성상 회사를 세우는데 따른 창업비용이 그다지 많이 들지않는데다 관할 시도에 등록만 하면 곧바로 영업을 할수 있는 등 자격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특징적인 점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업체수가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월평균 5개 안팎의회사가 줄줄이 문을 열었으나 하반기 들어서면서 뚝 끊겼다. 한국암웨이와 세제협동조합 사이에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IMF 한파로 소비가 뚝 떨어지면서 다단계판매업계도 된서리를 맞았던 셈이다.물론 등록업체 가운데 실제로 영업을 하지 않는 곳도 있다. 지난해협회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전체 업체 가운데 약 70%선인 1백여개의 업체만이 정상적인 영업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영업부진으로 문을 닫는 업체가 생겨나는데다 회사 운영을 둘러싸고 오너와 회원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기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반면 나머지 업체들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기울이고 있다. 특히 국내외 업체들 사이의 경쟁이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면서 열기를 뿜어가고 있다.현재 국내에서 다단계판매업을 하고 있는 업체 가운데 선두주자는한국암웨이다. 지난 한해만도 2천6백82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했다. 암웨이는 올해 들어 토종격인 SMK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SMK가 불법적인 영업을 했다는 혐의로검찰조사를 받으면서 주춤하는 사이 재도약의 날개짓을 힘차게 하고 있다. 주요 취급품목은 세제 등 생활용품으로 미국에서 파견된브라이언 찰머스가 대표로 있다. 등록회원수만도 거의 1백만명에이르고 이 가운데 실제 활동하는 회원은 약 14만8천명쯤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에서 뉴스킨코리아를 밀어내고 2위를 차지했던 SMK는 최근 발생한 사태로 한때 주춤했으나 열성 회원들을 중심으로 다시 뛰고 있다. 회원들은 외부에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며 반드시 정직한 회사라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뉴스킨코리아는 그동안 업계에서 한국암웨이의 라이벌로 꼽혀왔다.지난 95년말 한국암웨이에 비해 약 5개월 늦게 영업을 시작한 이회사는 특유의 강력한 영업력으로 높은 성장세를 계속 유지했다.특히 한국인의 피부에 가장 잘 맞는 화장품을 판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 많은 효과를 보기도 했다. 지난해 약 9백51억원의 매출실적을 기록했고 화장품이 주력상품으로 꼽힌다. 또 사업을 시작하면서 회원들에게 좋은 조건을 내걸어 우수한 영업사원들을 많이 확보, 실적을 올리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한국암웨이 회원 가운데는 뉴스킨코리아의 회원으로 뛰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양쪽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성아무개씨는 두 회사의 성격이 약간 달라 일을 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며 주변에는 자신처럼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국내 업체 가운데 눈에 띄는 곳으로는 앞서 말한 SMK 외에 (주)앨트웰과 (주)세모를 들수 있다. SMK와 함께 흔히 다단계판매업계의국내파 3인방으로 불려온 이들 업체는 한국적인 상품과 영업방식으로 주목을 끌어왔다. 지난해 8백70억원의 매출실적을 올려 전체 4위, 국내업체 2위를 차지한 앨트웰은 97년 7월 삼왕인터내셔날에서지금의 상호로 이름을 바꾸는 등 변신을 거듭해왔다. 특히 이 회사는 다단계 판매업체의 맏형격으로 생활용품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또 건강식품으로 유명한 세모는 그동안 탄탄한 영업망을무기로 성장을 거듭했다. 데뷔 첫해 매출액 면에서 5걸 안에 들 정도로 약진했고 지난해에도 4백80억원의 실적을 올렸다.이밖에 연간 매출액이 1백억원대를 넘는 메이저 업체로는 썬라이더코리아, S.T.C인터내셔날, 하이리빙코리아, NHB인터내셔날, 실크리아, 한국허벌라이트사 등이 있다. 또 초대미스코리아 강귀희씨가운영하고 있는 노이폼하우스도 성장이 빠른 업체로 주목을 받고 있고 미국계 네이쳐스 선샤인코리아는 이례적으로 한국 고유의 건강식품을 발굴해 파는 등 판매상품의 현지화에 성공, 관심을 모으고있다.이 가운데 건강식품을 간판상품으로 내놓고 있는 썬라이더코리아는한국암웨이와 함께 다단계판매업이 허용된 초창기부터 영업을 시작해 꾸준한 실적을 쌓아왔고, 하이리빙코리아는 원래는 진로계열이었으나 그룹이 부도가 나면서 지난해 오너가 바뀌었다. 그러나 이들 주요 업체들과 함께 선두대열을 형성해온 일영인터내셔날은 지난 1월초 폐업신고를 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지난 96년 9월부터영업을 시작한 일영은 그동안 다단계업체 가운데 최초로 컴퓨터를팔아 큰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3백30억원의 실적을 올려 업계 7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무리한확장욕과 엉성한 마케팅시스템, 그리고 서비스부재 등이 겹치면서일시에 무너졌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들은 경험이나 노하우가없는 오너의 욕심과 한건을 해보려는 회원들의 마인드가 맞아 떨어져 일어난 예견된 사고로 보고 있다.다단계업체들이 취급하는 품목도 아주 다양해졌다. 물론 아직도 주류는 건강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등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욕구가 다양해지고 기존의 품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취급품목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것. 예를 들어 이전에는 가격이너무 비싸다는 이유로 기피품목으로 분류되던 컴퓨터 정수기 의류식품잡화 통신상품 농수산물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상품이거래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전쥬리아화장품 사장을 지낸노성호씨가 보석류 다단계판매회사인 (주)은하월드를 설립, 본격적인 영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 회사는 귀금속 전문제조업체와 제휴해 반지, 목걸이, 팔찌 등 보석류 50여종을 취급하고 있다.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주의할 점은 다단계판매의 경우 판매할 수있는 상품에 제한이 있다는 점이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부가가치세가 포함된 가격이 1백만원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다.따라서 1백만원이 넘는 고가품은 기본적으로 판매할 수 없는 셈이다. 컴퓨터가 최근에서야 판매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다단계판매회사들이 파는 상품이 전체적으로 생활용품 위주로 되어있는 것 역시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최근 다단계판매 업계에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미국다단계판매회사들의 부진과 국내업체들의 약진이다. 물론 경기가 워낙 나쁘다보니 시장 전체가 얼어붙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명암이 갈리고 있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96년만해도 업계 상위는 거의미국에서 들어온 업체들이 독식하다시피 했다.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한국암웨이와 뉴스킨코리아가 부동의 1, 2위를 지키는 등 놀라운 속도로 성장을 했고 후발업체들도 한국시장을 공략,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업체들이 급부상하고미국과 통상마찰이 빚어지면서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특히 암웨이가 국내 소비자들과 세제분쟁을 일으킨 것이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반면 국내 업체들은 나름의 특성을 잘 살려 선전했다. 앨트웰, 세모, STC인터내셔날, NHB인터내셔날 등을 중심으로 LG, 대우 등 국내 대기업들과 적극적인 제휴를 통해 취급상품을 다양화했다. 특히이 과정에서 국내업체들은 대기업의 믿을 수 있는 상품을 판매,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 것으로 분석된다.다단계판매업체들은 지금의 불황이 하반기에는 어느 정도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업체들은 예고되는 실업사태에 대해서만큼은오히려 즐기는(?) 입장이다. 고급인력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게 되면 이들 가운데 일부가 다단계판매업체에 합류해 업계 전체를 활성화시키는데 일조를 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불황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얼어붙은소비심리가 장기화되면 타격이 예상 외로 클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