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여신 담당자들의 어깨가 무겁다. 「금융기관 불사」의 신화가사라지면서 여신을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체에 제공한 자금이나 지급보증이 부실로 이어지면 은행의 파산을 가져올 수 있어서이다. 더이상 부실여신을「관치금융」 「정치권외압」 탓으로 돌리기도 힘들어진다. 급변한금융환경은 보다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여신심사능력을 요구한다.시장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금융기관은 시장에서 사라질 위험에노출돼 있다.부실여신비율과 은행의 성쇠는 밀접한 연관을 보인다. 서울과 제일은행의 경우 무수익여신비율이 6대시중은행중에서 제일 높다. 은행감독원의 2월말 발표에 따르면 각각 11.4%(제일)와 10.3%(서울)를기록했다. 우성 한보 진로 기아 등 대기업에 제공한 천문학적 액수의 자금이 물리면서 원금은 물론 이자 회수도 어렵게 됐다. 방만한여신운용의 대가로 수천명의 직원을 감원하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이들 은행들은 부실여신의 증가를 「외압」과 「관치금융」으로 돌리지만 과학적인 여신심사기법의 도입은 막대한 부실여신을 방지할수 있음을 한일은행은 보여주고 있다. 한일은행은 「외압」과 「관치금융」이란 동일한 환경에서도 부실여신을 줄였다. 6대시중은행중에서 제일 낮은 3.6%를 기록한 것. 부실여신을 대폭 줄일 수 있었던 비결은 자체 개발한 신용평가시스템(GSL시스템)이다. GSL시스템은 여신을 제공할 때 소속그룹의 재무구조도 동시에 고려하는 평가체계다. 즉 개별회사가 아무리 재무구조가 건전하더라도 지급보증을 선 다른 계열사가 부도를 내면 그 충격으로 쓰러지는 현실을반영한 것이다.GSL 덕택에 한일은행은 진로 기아 뉴코아 한신 등의 부도후유증을겪지 않았다. 정기감사를 나온 은행감독원 직원이 탄성을 지를 정도로 정확한 예측력을 보였다고 방용환 한일은행 여신기획부 차장은 설명했다. 방차장은 『실질적으로 96년말부터 이들 그룹에 대한여신을 중단했다』고 밝혔다.그러나 시중은행의 여신심사시스템은 아직 초보단계에 불과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외국은행에 비해 심사기법과운용능력면에서 크게 뒤떨어졌다는게 중론이다. 지난해 6월 은행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부실여신(회수의문+추정손실)은 전체여신의 0.08%. 16조9천억원중 부실여신은 1백40억원이었다. 같은기간 국내시중은행의 부실여신은 0.8%에 달했다. 2백89조6천억원중에서 2조4천4백억원이 부실여신이었다.은행감독원 국제금융과 이화선씨는 『외국은행 국내지점은 한단계높은 선진심사기법과 90년대초 논노에 여신이 물린 이후 재무구조가 양호한 업체만 거래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네덜란드계 은행인 ABN AMRO은행 심사부의 안경숙씨도 『주로 5대그룹 위주로 여신을 제공하며 이들 그룹 이외의 업체중에는 재무구조가 건실하고수익성과 현금흐름이 양호한 기업하고만 거래한다』고 밝혔다. 또『신규거래업체는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등 재무제표를 요구하며 반드시 본점의 승인을 받고 여신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내은행과 달리 영업부서 근무자도 여신심사에 참여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업체를 평가한후 여신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시중은행 여신심사시스템 초보단계이에 반해 국내시중은행이 기업에 대한 여신심사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구축한 것은 1년이 채 안된다. 그전에는 한국은행이나 은행연합회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평가표를 사용했다. 한마디로 초보상태다.보람은행 심사부의 최성보 차장은 『한보사태에서 나타났듯이 정치권의 전화 한통으로 수천억원이 대출되는 상황에서 여신심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무의미했다』면서 『정부가 더 이상 개입할 여지도 줄어들었고 시장논리에 의해 은행의 경쟁력이 좌우되는만큼 이제부터 여신심사능력이 은행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예측했다.최차장은 『은행은 예금이 줄어서라기 보다는 돈이나 지급보증을잘못 서준후 망한다』면서 『은행 자체의 생존을 위해서 효율적으로 여신을 심사하거나 운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라도 고도의 여신심사능력이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국내기업의 은행을 통한 자본조달비중이 점차 줄어드는추세여서 과학적인 여신심사와 사후관리능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그러나 대출기업이 제출한 재무제표의 낮은 신뢰도는 여신심사담당자들을 괴롭힌다. 최차장은 『재무제표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 이를 토대로 여신제공을 결정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인정했다. 그는또한 은행을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으로 보지 않는 사회풍토도 부담으로 와 닿는다고 언급했다. 『부실여신을 줄이기 위해 심사를강화하면 「기업들을 다 죽이려고 하느냐」는 비난여론이 비등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원칙대로 여신심사기준을 운용하기 힘들다.』이같은 한계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여신심사능력은 더욱요구되고 있다. 은행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불가피하다. 차입자의상환능력과 자금용도의 경제성을 엄격히 분석하는 기법이 요구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여신심사시스템을 토대로 여신을결정하는 분위기 조성이 아쉽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