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청은 외국기업 괴롭히는 곳"『올 들어 이런 모임이 벌써 몇번째입니까. 실질적인 개선이 있어야지요. 겉치레 행사만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기업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전국경제인연합회 손병두 상근부회장은 이달들어 새벽에 땀을 흘리는 일이 많았다. 그것도 외국 기업인들 앞에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본과 미국, 유럽연합(EU) 경제인들을 대상으로 세차례한국경제설명회를 겸한 조찬모임을 가지면서 손부회장은 쏟아지는외국인들의 질문에 무척 곤혹스러워했다.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확대를 위한 설명회가 마치 한국의 열악한 기업환경을 성토하는 자리로 변한 듯했다.세차례 설명회에서 확인된 외국인들의 평가는 한마디로 『한국에서기업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외국인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점은 외국인과 외국기업에 대한우리 국민들의 배타적 감정. GHR코리아의 로스 디어터씨는 『주유소에서 외제 차를 푸대접하고 초등학교에서 외제품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루슨트 테크놀러지의 유지일씨는 『외국기업에 대한 한국인들의 적대적 감정이 외제상품에 대한 배격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개혁의지 의심스럽다독일계 은행의 한국지점장인 히링거씨는 『한국은 유럽에 연간 27만대의 자동차를 수출하고 겨우 6천대만 수입하고 있다』며 『외제상품에 대한 인식제고를 위해 한국정부가 모종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한독일대사관의 부크홀츠부영사는 『한국의 언론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 IMF 위기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며『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는 IMF를 어떻게 위기 제공자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했다.한국정부와 기업의 구조개혁 의지를 못믿어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기무라 신이치(木村伸一)재팬클럽이사장(미쓰이물산 한국지점장)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원스톱서비스(one-stop-service)체제를 구축한다던데 정말 되고 있는거냐』고물었다. 제조업체의 엔지니어라고 신분을 밝힌 한 일본 기업인은『새정부의 1백대 과제에 기업의 기술제고방안이 들어있지 않다』며 『기술을 빼고 어떻게 국제경쟁력 제고를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주한EU상의의 한 관계자는 『한국에선 부도난 기업이 차입도 하고수출도 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고 꼬집었다. 그는 퇴출해야할 기업을 그대로 두고 구조조정이 과연 가능한 것이냐고 되물었다. EU상의의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조치를요구하고 있지만 기업은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추진하고 있다』며경제전반의 구조조정 의지를 의심했다.과다한 행정규제에 대한 지적은 단골메뉴였다. 미국 앤더슨컨설팅의 민명기 이사는 『외국인의 직접투자유치를 위해서는 경제적인여건 뿐만 아니라 법률 등 전반적인 규제에 대한 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전제하고 특히 출입국 관련 사항과 세제 등에서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 1명을 고용하려할 때 한칸이 바뀐 서류양식 때문에 출입국관리소에 다시 가야할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외국기업인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번거롭게 하는 것이 한국의 관청이라는 고언이었다.기업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수년전부터 상호지급보증을 해소하라고 했는데 미적대다가 마감시한에 몰리자 정부탓으로 돌리고 있다』(모 한일합작사의 일본인 임원)는 평가가대표적 예다. 심지어 한 일본기업인은 『버스는 마음대로 차선을바꾸며 과속하고 대부분 차량이 신호를 위반한다』며 『어떻게 이런 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회원국이 됐는지 의아해진다』는 말까지 했다.이같은 투자환경에서는 고금리 역시 투자유인책이 되지 못한다는지적도 있었다. 캐나다 ABC텔레콤의 투아르스키 이사는 『입출금할 때마다 수수료를 물고 이자에서도 소득세를 떼인다』며 『여기에다 환리스크까지 투자자가 책임져야 한다면 아무리 금리가 높더라도 달러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통질서 안지키는 OECD국다행한 것이라면 외국인들이 아직은 한국을 「기회의 땅」이라고보고 있다는 점이다. 열악한 기업환경만 개선되면 충분히 사업을할 수 있는 곳이라는 평가였다. 한 독일 기업인은 『한국의 과잉설비가 M&A 또는 직접투자 등을 통해 외국기업들에 상당한 기회를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기업에 인센티브를 준다면상당히 빠른 속도로 외국자본이 유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전경련은 외국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수집한 애로들을 모아 조만간백서를 내기로 했다. 정부에 강도 높은 개선건의도 할 예정이다. 옛시각으로 보면 「경쟁자」를 돕는 일을 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런건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 경쟁자들이 없으면 한국경제의 위기극복은 물론 경제회생 자체가 불투명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