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발전'.......외길 밟는 전문인『요즘에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옛날에 군대 훈련소에서는 몸에다 옷을 맞추는게 아니라 옷에 몸을 맞췄습니다. 사람마다 체격이다른데도 훈련복 치수는 몇 개 없었죠. 상식적으로 보면 당연히 불합리하다고 하겠지만, 포장학에서는 사실 이게 원칙입니다. 그래야만 표준화와 단순화가 이뤄져 원가절감 등 물류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훈련병의 옷을 전부 맞춰준다면 군 유지 비용이 지금보다 얼마나 더 많이 들겠습니까. 상품은다품종소량 시대에 있으나 포장에서는 가급적 표준화를 시켜야 한다는게 포장물류학의 수칙 제1조입니다.』◆ 대기업만 1백50억원 원가절감한국포장시스템연구소의 이명훈 소장(43)은 역사가 일천하기 그지없는 국내 포장분야(포장 디자인이 아니라 포장 그 자체 및 그에수반되는 제반 물류활동)에서 손꼽히는 전문가로 통한다. 실무와이론을 겸비한 1세대 「준비된 포장인」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한국기업들이 포장에 대해 무지하거나 또는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사실에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IMF를 맞는 이 시점에서는 기업들이 정말 발상을 달리해야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업체에 포장 컨설팅을 나갈 때마다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군복을 예로 든 포장 표준화의 중요성」이다.포장은 생산의 종점이자 물류의 시작이라고들 한다. 만일 포장재의강도가 적정하지 못할 경우 △과대포장이면 낭비 △불량포장이면상품 파손 등에 따른 클레임의 소지가 있게 된다. 또 포장의 종류가 천차만별이면 팰릿 공간을 이용하는데 있어 남거나 모자라는 비효율이 필연적으로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포장학에서는 아예 상품기획단계부터 표준 팰릿의 폭을 감안해 어느 정도 크기의 포장으로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다음에 상품의 크기를 맞춰야 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국내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상품을 먼저 기획하고그에 맞춰 포장의 크기를 정한 뒤 이를 팰릿에 옮겨담는 수순을 밟아온 것이 현실이다. 물류활동에 있어 이러한 각종 낭비요소와 비효율 등을 올바로 잡아주는게 바로 포장 컨설턴트들의 역할이다.『국내 기업의 경우 물류비가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17%인데 반해 외국은 11%정도입니다. 국내 기업들은 포장물류에서부터 6% 포인트의 가격경쟁력을 잃고 들어가는 겁니다. 물류의표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특히 포장을 잘못하게 되면 물류 전체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이 소장은 디자인포장센터(KIDP·현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 시절부터 포함해 지금까지 2백60여개 기업에 포장 컨설팅을 한 것으로기억한다. 그의 진단과 지도를 받고 포장분야를 개선한 대기업만해도 제일제당, 미원, 코오롱, LG실트론, 한국통신, 동원산업, 효성T&C, 한국전기초자, 대우전자, 삼성전관 등 10여개 업체에 이르며그외 중소기업은 이루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특히 이들 대기업들이포장 표준화를 통해 얻어낸 원가 절감 효과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1백5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까지 합하면 그 액수는 가히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기업 원가 절감액만 1백50억 상회그의 작업이 갖는 더 큰 의의는 극히 단시간에 경영수지상의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른 경영 컨설팅은 그 효과를 보기까지 상당한 기간을 필요로 하지만 포장 및 물류부문의 개선은 당장 그 순간부터 결실을 맺는다. 이 소장은 기업진단을 나가면 우선 △해당업체가 포장으로 인해 손실되고 있는 부분이 얼마나 되는지 △생산하고 있는 제품과 관련, 물류 표준화를 할 경우 어디까지 가능한지등을 파악한 뒤 △실제 컨설팅에 들어가 포장 설계 등을 개선한다.이 과정에서 이소장은 원가절감비용 및 기업 이미지 개선 등 기대효과를 제시하게 되는데 대기업의 경우 통상 10∼50억원의 포장재료비 원가절감 효과를 보게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이는 당해연도에만 나타나는 경영수지 효과이기 때문에 기간을 5~6년 연장시켜 계산하거나, 또는 개선되지 않은 상태로 계속 생산활동을 했을 경우의 기회비용 손실까지 감안하면 수지개선효과는 실로 엄청나다고볼수 있다.이소장이 포장 컨설팅을 일생의 업으로 삼게 된 것은 학교(연세대화공과) 졸업후 79년 KIDP에 입사, 포장 전문인력으로 활동하면서부터다. 그는 입사 이듬해 UNDP(유엔개발계획)의 지원을 받아 영국 와트포드대학에 유학한 것을 비롯, 독일 일본 미국(미시간주립대)등지에서 포장을 전문으로 공부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귀국길. 이소장은 기내에서 깊은 상념에 잠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80년대 말 당시만해도 국내 포장분야는 거의 황무지나다름없는 상태였다. 「선진문물」을 접한 이소장의 눈에 국내 포장분야의 개발이 시급하다는 현실과 함께 무궁한 발전 가능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그는 『이게 내가 갈 길이다』고 마음을 굳힌다.전문인력이 전무하다시피한 포장계 현실에서 이소장의 존재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KIDP에서 부지런히 기업 컨설팅에 나서는 한편 인력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포장이 발전하려면 포장을 천직(天職)으로 아는 전문가들이 많이 배출되어야하고 그러려면 대학에 관련학과가 있어야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소장에 따르면 국내 기업체 수를 감안할 때 최소한 4천여명의 전문인력이 필요하지만 국내에서는 포장설계·관리·감독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은 불과 천명에도 못미친다고 한다.그래서 그는 우선 포장학회를 설립하는 일에 몰두하는 한편 후진양성을 위해 고려대 경기대 등에 강사로 나갔다. 또 전문대 포장학과개설 때에는 교과과정을 주도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그의 이같은노력이 빛을 봤는지 내년에는 국내 최초로 4년제 대학에 포장학과가 설립될 전망이다.『기업이 단기간내에 경쟁력을 확보하는 가장 좋은 방안중의 하나가 포장표준화입니다. 기업들이 이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한국 포장산업은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한 단계이므로 이 방면에투신을 해도 충분한 전망이 있습니다.』 좀더 많은 후배들이 포장분야에 뛰어들 것을 당부하는 이소장은 그동안 일해오면서 보람을느꼈던 한 순간을 「참고」로 하라는듯 들려줬다.『지난 96년 한 섬유계통 대기업의 물류부문을 개선한 뒤 최우수협력업체로 선정됐을 때입니다. 당시 사장이 「화섬업체중 유일하게당사만이 적자를 모면했다」며 「이건 순전히 포장 컨설팅을 통한원가절감 덕택」이라고 감사해하더군요. 그러면서 마지막 얘기가재미있었습니다. 「이소장이 한가지 잘못을 한게 있는데 그건 컨설팅비를 적게 책정한 것」이랍니다. 「앞으로는 컨설팅비를 받을 때원가절감 액수의 10%를 받으라」고 덧붙이면서요. 당해연도에 50억원의 원가를 절감했는데 10%라면 5억원아닙니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