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얼음이 참 귀했다. 선조들은 서빙고와 동빙고에 곳간을 만들어 한겨울에 채취한 얼음을 보관, 여름에 사용하기도 했다. 냉장고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60년대엔 동네마다 얼음가게가 있어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특히 삼복더위때 얼음값은 그야말로 금값이었다.얼음은 먹기도 하지만 생선이나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는등 다양한기능을 갖고 있다. 요즘엔 냉방에 이용하기도 한다. 빙축열시스템이바로 그 장치다. 한밤중 전력을 이용, 얼음을 얼렸다가 낮에 냉방에사용하는 것이다. 심야전력은 주간전력에 비해 값이 4분의 1에 불과하다. 낮에 전기소모를 줄이고 밤에 쓰는 것은 나라 전체로 봐서도 에너지비용절감에 큰 도움을 준다.부천에 있는 서일전기는 이같은 빙축열시스템을 비롯, 축열식온풍기 온수기등을 만드는 업체. 에너지절약기기 전문업체이다.이 회사는 요즘 신바람이 났다. IMF사태로 에너지절약운동이 확산되면서 제품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서이다. 기름 한방울 안나는 나라에서 에너지는 곧 달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때 에너지절약형기기 수요가 크게 느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서일전기는 올들어 직원 월급을 10% 올려줬다. 또 사원 8명을 새로 뽑았다. 감원과 구조조정이 한창인 타기업들과 대조를 이룬다.또 연내 10명을 추가 채용, 직원을 7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매출도작년 70억원에서 올핸 9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성백룡사장(48)이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은 80년대 중반부터. 서울하월곡동에서 서일기업을 창업, 스테인리스 주방기기를 만들다 86년 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상호도 서일전기로 바꿨다. 이때부터 축열식온수기 생산을 시작했다. 그는 두차례에 걸친 석유파동때 에너지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석유가 없는 우리로서는 절약하는 길밖에 없음을 절감했다. 이를 사업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당시만해도 에너지 절약기기의 생산은 흔치 않은 상태였다.◆ 매출액 20% 연구개발비로 투자때마침 한전이 심야전력요금제를 도입, 타이밍도 맞아 떨어졌다. 어느날 한전 관계자가 성사장을 찾아와 에너지절약기기를 양산할 경우 적극적인 홍보와 지원을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신바람이 난 그는 공장에서 축열식온수기를 만들어 적극적인 보급에 나섰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궂은 일도 있게 마련.가격이 비싸다보니 제품 보급에 어려움이 생겼다. 축열식 온수기는자동절전장치와 안전성을 갖춘 반면 가격은 일반 온수기보다 비쌌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망설였다. 그는 한전과 공동으로 홍보를 하며 투자비를 3년내 뽑는다고 외치고 다녔다. 건설업체를 찾거나 가가호호 방문하며 축열식온수기의 장점을 설파했다.차츰 보급이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애프터서비스가 문제였다. 새로선보이는 제품이라 잔고장이 자주 생겼다. 고장연락을 받으면 새벽1시에라도 뛰어나갔다. 애프터서비스를 위해 영등포 천호동 왕십리등 서울 각지를 누볐다. 이같은 애프터서비스 경험은 서일전기의품질을 급상승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몇년동안 제품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보완하면서 점차 이 분야 전문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성사장은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개발력으로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것은 어렵다고 보고 산학연 협동을 적극 활용했다. 대학의 공대교수 중소기업 지원연구기관과 공동으로 에너지절약형 기기를 만들고성능을 개선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매출액의 20%를 연구개발비로 투자하기도 했다.이같은 노력 덕분에 잇따라 신제품을 선보일수 있었다. 전기온풍기전기온돌 전기온수기 등 축열식 제품과 빙축열시스템 등을 줄지어내놨다.이중 축열식 전기온풍기는 거실 침실 및 공부방의 보조난방이나 기숙사 오피스텔 콘도등 침대식 거실의 주난방기기로 쓰이는 제품으로 주력생산품이다. 심야전기를 이용, 유지비가 저렴한게 특징이다.전기온돌은 유해가스와 동파 화재위험이 없고 연기 냄새 재 소음이없는 특징을 갖고 있다.전기온수기는 물의 온도가 섭씨 85도가 되면 자동으로 절전되고 70도이하로 내려가면 켜지는 제품으로 학교나 병원 기숙사등에 공급하고 있다.이밖에 빙축열시스템은 심야에 얼음을 얼렸다가 낮에 녹여 냉방을시키는 시스템으로 대형 건물에 이용된다. 그동안 서일전기는 이제품을 한전의 사원아파트등 20여곳에 설치했다. 난방시스템은 약 3백곳에 시공했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국내시장을 지배하던 외산제품의 상당수를 몰아냈다. 그동안 생산한 제품의 90%는 국산수입대체품이다.◆ 부천 ‘데이타임’ 이끌며 해외시장 개척또 6월부터는 태양열을 이용한 난방사업에 뛰어들기로 하고 제품개발을 완료한 상태다. 각종 기관의 테스트가 끝나면 단독주택 등을대상으로 태양열 온수시스템등을 시판할 계획이다. 서일전기는 제품의 해외시장개척에도 적극 나서 지난해 1백60만달러를 수출했고 올핸 2백만달러를 내보낼 계획이다.성사장은 이같은 에너지절약기기 개발에 앞장설 뿐 아니라 각종 사회활동에도 활발히 나서고 있다. 한국심야전력기기협회장과 한국상업용조리기계조합이사장도 맡고 있다. 또 부천시가 관내 전기전자업체의 시장개척을 위해 만든 공동브랜드업체 「데이타임」의 초대대표이사를 맡아 해외시장개척에 앞장설 작정이다. 데이타임은 서일전기를 비롯, 인버터업체인 삼광조명, 홈오토메이션업체인 상일전자, 무선조명스위치업체인 선우전자 등 8개업체가 공동으로 만든업체다. 이 회사는 무역협회 무역투자진흥공사 중소기업청 등의 지원을 토대로 해외전시회에 참가하고 수출에 나설 계획이다.『IMF시대의 해결책은 수출밖엔 없습니다. 물건을 못팔면 사람이라도 내보내야 합니다』그는 3공화국때 광원과 간호사들을 해외로 내보내 달러를 벌고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차관을 얻은 가슴아픈 경험이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체면을 접어두고 달러획득에 모든 사람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서일전기와 데이타임은 한마음으로 뛸작정이라고 밝힌다.성사장은 수출업무차 또는 부인과 자녀가 캐나다에 있는 관계로 해외출장이 잦은 편이다. 그는 해외에 나가면 꼭 슈퍼마켓에 들러 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 미국 캐나다나 유럽의 소도시 슈퍼에 김치가 있을리 없다.그런 사정을 그도 잘안다. 하지만 한명 두명이 아니라 수백명의 한국인이 김치를 찾으면 언젠가는 해당 슈퍼주인이 김치를 갖다놓게될 것이고 그게 바로 수출확대로 이어진다는 신념에서다. 마찬가지로 해외에 출장가는 한국인들이 한국제품을 찾으면 결국 한국상품의 수출확대로 연결될 것이며 IMF극복에 도움을 줄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