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지하 정부」에 비유되는 정부산하 단체들이 개혁의 수술대에 놓였다. 기획예산위는 올 상반기안에 5백52개에 달하는 정부산하 단체 경영혁신계획을 마련한다. 이달말까지는 1백1개의 정부출연기관 경영혁신계획이 나온다. 여기에는 공기업을 포함한 모든정부산하 기관에 대한 통폐합과 매각 등 개혁 밑그림이 담길 예정이다.기획예산위가 추진하는 산하단체 개혁은 크게 두가지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나는 독점적 지위에 따른 비경쟁성을 없애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방만한 운영에 따른 비효율성을 제거하는데 있다. 이계식 기획예산위 정부개혁실장이 공공부문 개혁의 키워드로 △경쟁성△자율성 △책임성 △투명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정부산하기관 개혁은 일단 기능에 대한 분류에서부터 시작된다. 즉「반드시 공공기관이 수행해야할 업무인가」에 대한 평가가 출발점이다. 또 서로간 업무가 겹치는지도 살핀다. 마지막으로 민간부문과경쟁력 비교다.정부는 일단 민간에 맡길 수 있는 업무는 과감히 포기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83개에 달하는 국가사무 위탁기관은 더이상 재정지원없이 통폐합하거나 민간기업화할 계획이다. 주택공사나 토지공사,한국개발연구원(KDI)이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한국조세연구원 등 유사한 업무를 다루는 기관도 구조조정한다. 단순히 물리적인 통폐합이 아니라 기능적으로 통합하거나 아예 폐쇄한다는 것이다. 또 설립목적과 무관한 산하기관 자회사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이미 기능을 다한 대한석탄공사 같은 곳은 폐지대상이다.이 모든 개혁방안의 밑바탕에는 민간부문에 대한 경쟁력 여부가 깔려 있다. 민간부문 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공공기관의 존재가치가없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정부재정지원기관이 예산을 요구할 때 고객들의 평가서를 첨부토록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민간보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기관은 자연 도태할 수밖에 없도록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것이다. 진념 위원장이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을 대상으로 내년에 계약 연봉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같은 관점에서다. 정부산하기관에 비용개념을 도입해 정부가 일괄적으로 연간 운영비를 배정하지 않고 수행업무에 따라 돈을 주는 용역비 중심으로 체제를 개편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장」이라는 냉혹한 링에 산하기관을 올려 놓고 민간과 경쟁시켜 거기에서 이길경우에만 적절한 대우를 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승자가 되지 못하면 연봉이 줄고 그 기관은 폐지의 기로에 서는 것은 당연하다. 공기업 역시 다른 산하기관과 똑같은 평가작업을 거쳐 정리된다. 박종구 기획예산위 공공관리단장은 『공기업은 수익성과 공공성 양측면에서 살펴봐야 한다』며 『더이상 공공성도 없으면서 단지 독점적 지위만 유지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예전같은 의미의 독점 공기업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기획예산위는 공익성이 강해 민영화가 어려운 공기업은 민간경영방식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중점 방안으로 잡고 있다. 실적에 따라 주식을 성과급으로 분배하는 스톡옵션제를 실시하고 사외이사와 사외감사도 선임한다. 경영투명성을 한층 높인다는 취지다.최근 주요 공기업 사장을 민간 전문경영인으로 뽑겠다는 김대중대통령의 발언도 이런 면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마디로 껍데기는 공기업이더라도 속은 철저히 민간기업식으로 바꾼다는 것이다.민간이 인수해도 시장진입이 쉬워 독점폐해가 없는 공기업은 일차적으로 매각대상이다. 매각은 국제공개 입찰방식으로 이뤄진다. 외화도 끌어들이면서 시장경쟁을 촉진한다는 전략이다. 진념 위원장은 『국가기간산업도 외국자본에 매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팔릴수 있는 공기업을 팔아 민영화에 가속도를 붙이겠다는 뜻이다.개혁의 칼을 쥐고 있는 기획예산위는 이같은 개혁 프로그램에 대해아주 자신만만하다. 일정도 상반기내에 마스터플랜과 액션플랜을마무리짓고 관련법안 개정과 내년도 예산편성 등을 통해 즉각 시행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감의 근거는 세가지다. 첫째 공공부문혁신에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는 것. 둘째 추진할 조직(기획예산위)이 있고 개혁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수단(돈줄)을 쥐고 있다는 것. 셋째 해외매각등 선택할 방법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개혁에 반발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서술하고 있다. 부처간 이기주의와 얽히고설킨 공공조직의 반발이 앞으로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문자 그대로 「가죽을 벗기는」 개혁을 통해 위기를 번영으로 바꾸어야 할 시기』라는 이계식정부개혁실장의 확신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