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뜨거운 햇볕속에서 하루종일 한건도 수주하지 못하고 돌아온 박기주 사장은 사무실문을 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죽은 뱀 한마리가 사무실 안에 있었던 것이다. 20㎝쯤 됐을까. 『아니 웬 뱀이 용산전자상가 한복판에 있는 내 사무실에 들어와 있단 말인가. 무슨 변고라도 생길 징조인가.』그는 뱀이라면 정말 싫었다. 어릴적 뱀을 보면 기절할 정도였는데어른이 돼서도 그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뱀이 하필내 사무실에 나타난단 말인가.한양공대 전기과를 나온 박사장(40)은 형광등업체인 신광기업과건설업체인 청한건업을 거쳐 89년7월1일 창업을 했다. 자본금은80만원. 임직원은 통틀어 박사장 혼자인 1인회사였다. 당시 용산전자상가는 임대가 잘 안돼 5평짜리 사무실을 월 10만원씩에 빌릴 수있었다. 6개월분 임차료를 내고 소개비조로 부동산중개업소에 15만원을 지급하고 나니 남은 돈은 5만원. 이중 3만원은 유리창을 선팅하는데 썼다. 책상도 없고 전화기도 없는 사무실. 2만원밖에 남은게 없지만 그래도 마음은 하늘을 날것 같았다. 학창시절부터 꿈꿔온 사장이 마침내 된 것이다. 웅대한 포부를 마음껏 펼쳐 보이리라.첫 사업은 전기공사. 전공과 경력에 꼭들어맞는 분야였다. 버스를타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전화가 없다보니 발로 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주가 될리 없었다. 실적도 없고 영업능력도 검증이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먼저 있던 직장의 거래처는 일절 기웃거리지 않기로 작심한 상태였다. 행여라도 누가 될까봐서였다.며칠째 허탕을 치고 돌아다니니 기운이 빠졌다. 매일같이 칼국수나라면으로 점심을 때운 탓에 배도 고팠다. 설상가상으로 뱀까지 본것이다. 그는 뱀을 곱게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하지만 그 다음날부터 일이 희한할정도로 잘 풀렸다. 친구한테 연락을 했더니 한곳을 소개해 줬다. 천안소재 삼육식품이 외국업체의발전기를 도입했는데 설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며 공사를 해보는게어떻겠느냐는 제의였다. 당장 기차를 타고 천안으로 달려갔다. 전기분야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발전기를 만져본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어떤 일감도 마다할 입장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내용은 간단했다. 7백50만원에 공사를 수주, 인부를 모집한뒤 일을 깔끔하게 처리했다. 추가공사를 따냈고 이어 신광기업 아남정밀의 전기공사도수주했다. 친구들에게 연락해둔게 하나 둘씩 결실을 맺었다.전기공사로 돈을 벌게 되자 회사명을 청한엔지니어링에서 극동전력으로 바꾸고 전기공사 뿐 아니라 소방설비 공사도 했다. 하지만 이들 공사는 부가가치가 낮고 21세기를 내다보는 첨단업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공사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우수인력을 뽑아 국내시장은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전기관련제품을개발키로 했다. 3년여동안의 시장조사와 연구끝에 찾아낸 품목 세가지를 우선 개발키로 했다. 컴팩트하게 만들어진 변전설비와 디지털 표시장치, 자가용 수전설비의 원격감시 및 원격복구시스템. 이들 장치는 수요가 많고 국내외 시장에서 함께 사용할수 있는 특징이 있다. 게다가 전기공사와는 달리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전력예비율을 20% 향상시켜회사명을 더욱 진취적인 느낌이 들도록 케이디파워로 바꾸고 부설연구소도 설립했다. 연구인력은 15명. 중소전기업체치고는 결코 적은 인원이 아니었다. 이들과 동고동락하며 1년반동안 연구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제품이 선을 보였다. 박사장은 개발기간중 연구소에서 잠자기를 밥먹듯 했다.올 2월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열린 경향하우징페어에서 이들 제품을전시했을 때 관람객들이 보인 반응은 그동안의 고생을 단번에 씻어줄만 했다. 특히 초소형수변전설비와 디지털 일체표시장치는 높은관심과 함께 주문이 몰렸다.국내와 미국 일본 등에 발명특허를 출원한 초소형 수변전설비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고압전류를 사용자에 맞게 낮춰주는 제품. 현장에서 조립하고 골조공사를 해야 하는 기존 설비와는 달리 공장에서제작된 제품을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는게 특징이다. 5~20일 걸리던 설치시간을 3시간으로 줄였다. 크기는 4분의1~12분의 1에 불과,건축바닥 면적을 대폭 줄일 수 있어 좁은 공간에도 설치할 수 있다. 특히 가격이 20% 싼데다 시공비가 30% 이상 절감되는 등 여러가지 장점이 있다. 주문이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수출도 유망,중국 및 일본바이어와 상담을 벌이고 있다. 중국의 동북전기통신집단공사로부터 기술이전 요청을 받는 등 외국기업들이 기술에 깊은관심을 보이고 있다.디지털 일체표시 및 제어장치는 피크전력을 스스로 감지 제어, 전력비용을 줄여주는 장치. 특히 부하의 근접거리에서 제어, 전력과설비공사비를 10% 이상 절감할 수 있다.이밖에 자가용 수전설비의 원격감시및 자동복구시스템(상품명 켄네트워크 알고리즘)은 순간적인 과부하나 오작동으로 수전설비가고장이 날 경우 응급복구시키는 시스템. 즉 고장발생과 함께 메시지가 본부로 전달되며 출동하지 않고 자동복구시스템이 작동되도록신호를 보내 해결하는 장치다. 하루정도 걸리던 복구시간을 3시간정도로 단축할 수 있는게 특징이다. 수용가의 피크전력도 제어할수있어 20%의 전력절감과 함께 한전입장에선 전력예비율을 20% 향상시킬 수 있는 제품이다. 기름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발전소를 몇개 더 짓는 것보다 효율적인 전력대책이 될 것이라는게회사측 설명이다.박사장은 자신의 명함에 대표이사 대신 이사라는 직함을 새기고 다닌다. 아직 나이나 경력으로 볼 때 사장 타이틀보다는 이사 타이틀이 훨씬 부담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또 직장에 근무할 때도사원과 같은 사무실 똑같은 크기의 책상에서 어깨를 맞대며 일한다. 지시하는 사장이 아닌 입장에서 직원과 분위기를 함께 호흡하며 일하는게 훨씬 좋다고 판단해서다. 케이디파워는 올 매출을 지난해의 약 2배인 1백37억원으로 잡고 있다.박사장의 사업목표는 분명하다. 전기제품으로 기업을 돕고 국가경제에도 이바지하자는 것. 특히 절전설비는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의 전공에도 딱 들어맞는 매력적인 분야다.경기도 광주의 야산에 이탈리아 풍으로 건설된 부설연구소에는 다음과 같은 표어가 붙어있다.「한국 경제의 5% 우리가 책임지겠습니다. 」 이 표어는 절전제품으로 경제에 공헌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매출액의 6% 이상을 연구개발비에 쏟을 정도로 신제품 개발에 열정을 보이는 케이디파워가 한국경제에 어떤 파워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0347)62-3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