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초 부엌가구업체 한샘은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후지다건설이 도쿄에 추진중인 도코로자와 프로젝트에 참여할지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사업은 도쿄시내에 2백세대의 맨션을 짓는것. 여기에 부엌가구 부문을 응찰할지 결정하려는 것이다. 2백세대라면 별로 큰 공사도 아니다. 그럼에도 긴급 임원회의까지 소집한것은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서다.일본은 세계에서 품질수준이 가장 까다로운 시장. 한샘은 국내에선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지만 해외진출 경험은 그리 많지 않은 편이었다. 일본에서 성공하면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은 보장받는 것이나마찬가지였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면 일본 수출기반도단단히 다질 수 있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번 건은규모는 작아도 매우 어려운 사업이었다. 세대별로 평형과 구조가전혀 달랐다. 2백세대분을 일일이 제작해야 하며 내진설계를 해야한다. 게다가 시공과 애프터서비스도 해줘야 한다. 일본 가구업체들은 이미 모두 손을 들었다.◆ “부엌을 예술성 지닌 삶의 공간으로”임원들간에 난상토론이 오갔다. 결국 최양하사장(49)이 참가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세계 최대 최고의 부엌가구업체로 도약하겠다는 웅대한 포부가 이미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시장개척을 위해선 90년대 초반부터 심혈을 기울여온 터였다. 마침내 도코로자와 프로젝트를 따냈고 성공리에 작업을 마쳤다. 부엌가구 생산담당 간부는 줄자를 갖고 일일이 세대별 구조와크기를 재며 맞춤으로 생산을 했다. 조그만 문제라도 발견되면 즉각 일본으로 날아가 해결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샘은 일본내에서도 경쟁력있는 부엌가구업체로 떠오를 수 있었다.그뒤 일본 최대 건설업체인 다케나카건설을 비롯,후지다건설 고노이케구미 등 10대업체에 납품하는 업체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할수있었다.대우중공업에 근무하던 최사장이 한샘과 인연을 맺은 건 79년. 서울공대 선배로 당시 한샘에 근무하던 이수문씨(현재 한강상사사장)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창업자인 조창걸씨도 대학선배였다. 당시한샘은 동종업체인 오리표 매출의 5분의1, 훼미리의 3분의1에 불과한 소기업이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포부는 당돌하게도 세계제패였다. 70년대 후반엔 율산 제세 등 기라성같은 그룹들이 명멸하던 때였고 이같은 스타업체들의 부상은 이들에게 꿈을 심어줬다.최씨는 입사후 줄곧 새로운 제품개발에 주력했다. 특히 시스템키친이라는 신개념의 제품 생산에 나섰다. 당시 부엌가구는 단품형태의독립 가구가 일반적이었다. 일부 업체는 스테인리스상판인 싱크볼생산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보인 시스템키친은 주부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부엌이 단순히 음식을 조리하는 공간만이 아니라예술성을 지닌 하나의 삶의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아름다운 문양과 세련된 디자인 일하기에 편리한 구조 등. 다소 비싼게 흠이었지만 주부들은 틈틈이 돈을 모아 한샘제품을 샀다. 이때 선보인 제품이 「유로 시리즈」였다.시스템키친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한샘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출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사우디 아파트 건설현장에 한샘이 납품하면서 그전과 전혀 다른 규격과 디자인의 부엌가구개발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이른바 서구식 주방이었다. 당시 경쟁업체들은 이탈리아 독일 미국의 쟁쟁한 부엌가구업체들이었다. 사우디 진출로 국제감각을 익힌뒤 내수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이후 한샘은 부엌가구분야에서 몇가지 독특한 노하우를 갖게 됐다.녹다운시스템과 대리점을 통한 시공, 독점대리점망 구축 등이 그것이다. 제품을 규격화해 녹다운시스템으로 만들어 생산원가와 물류비용을 줄일수 있게 됐다. 또 대리점을 통한 철저한 시공은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계기가 됐다. 이들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됐고 마침내 80년대 후반부터는 국내 최대기업으로도약할 수 있었다.◆ 일본·사우디 진출 노하우로 무장한샘은 이후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미국에 지사와 영업망을 구축,판매에 나섰고 일본에도 진출, 꾸준히 경험을 쌓았다. 도쿄에 이어 올해 오사카에 지사를 추가 설립했고 연간 수출도5백만달러에서 1천만달러로 늘릴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론 일본내에건설되는 아파트중 10만세대에 한샘제품을 공급한다는 목표다.한샘이 야심만만하게 도전하는 궁극적인 목표시장은 바로 중국. 중국은 외국이 아니라 제2의 내수시장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에따라 6곳에 판매지사를 만들고 3곳에 현지공장을 건설하는 등 적극적인 시장공략에 나서기로 했다. 매년 1백만세대분의 부엌가구를공급키로 하고 오는 2002년까지 중국투자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이를 위해 작년의 베이징지사에 이어 올해 상하이에 지사를 설립키로 했으며 선양 광저우 등 4곳에 추가로 지사를 만들기로 했다. 이들 지사는 해당 권역의 판매를 총괄하게 된다. 이와함께 3곳에 생산거점을 만들기로 했다. 지역은 베이징 상하이와 동북지역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이같이 중국공략에 나서는 것은 중국이 해마다 1천만세대의 주택을건설하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시장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와일본진출을 통해 쌓은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에 진출할 경우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한샘은 이들 시장에서품질과 가격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최사장은 『중국시장에 대해 충분히 검토해왔다』며 『우선 외국인상사와 고급관료의 주택등을 겨냥한 뒤 점차 일반주택시장을 공략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중국에납품하는 제품은 주로 고급제품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한샘은 중국거점 마련을 계기로 미국의 메릴랏이나 독일의 알노사등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최고의 부엌가구업체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한샘이 이같이 장담하는 것은 부엌가구가 일반 가구와는 달리 자동화율이 높고 생산성도 높다고 판단해서다. 이를 위한 준비도 완료한 상태다. 이 회사의 공장자동화율은 70%에 이른다. 부엌가구는인건비 비중이 7%에 머물 정도로 낮은 편이어서 개도국과의 경쟁도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표준화된 시스템과 철저한 원부자재관리가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이 회사의 협력업체는 80개에 이른다. 이들에 대해 최사장은 부품을 곧바로 수출해도 경쟁력이 있을정도의 제품을 납품토록 요구한다. 한샘의 구매부는 구매만 하는게아니라 부품을 곧바로 수출하는 수출부서 역할도 겸한다.도요타자동차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부품업체들의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샘 역시 자체 경쟁력강화와 함께 부품업체 경쟁력강화를 통해 세계적인 업체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하고 있다. (02)590-3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