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팀웍과 이에 맞서는 천재적 기술, 이들이 조화돼 불꽃튀는접전을 벌이는 순간은 깜짝 놀랄만치 흥분되고 격렬하며 짜릿하다.6월10일부터 7월12일까지 한달 내내 인류는 짜증나는 정치 경제나하루하루의 벌이를 위한 힘겨운 일상을 제쳐놓은 채, 어느 나라가 「두 개의 세로대와 한 개의 가로대에 펼쳐놓은 그물안에 가죽으로만든 공을 잘 차넣나를 가리는 게임」, 즉 4년에 한번씩 열리는 98프랑스 월드컵 축구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버릴 것이다. 이성적인소수의 사람들은 이런 「행위」의 허망함을 알아채고는 항의의 표시로 머리를 가로젓기도 할 것이다.제 16회 월드컵이 파리 근교 생드니의 초현대식 구장에서 끝날 때까지 TV중계에 넋을 잃는 사람은 결승전 시청인구 17억명을 포함해세계인구의 1/4이 넘는 결승전 시청인구 17억명을 포함해 연3백70억명에 이를 것이다.앞으로 2년뒤에는 월드컵 때와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TV를 통해 시드니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정신을 빼앗길 것이다. 그 사이 뉴욕에서는 굿윌 게임이 벌어질 예정이다. 또 콸라룸푸르에서는 영연방체육대회가, 세빌랴에서는 세계육상 선수권대회가, 웨일즈에서는럭비월드컵이 각각 열린다. 또 포뮬러원 자동차 경주대회 두 시즌이 지나갈 것이고 아메리칸풋볼과 야구, 농구 두 시즌이 있고 수십번의 국제 크리킷 경기가 벌어질 것이다. 테니스와 골프, 아이스하키 등 갖가지 잡다한 스포츠 경기도 사람들을 TV앞에 붙들고 떨어지지 않게 할 것이다.이를 빈정대는 사람들이나 스포츠경기에 무덤덤한 사람들은 세계가스포츠에 중독되듯 빠져들고 경기가 범람하는 것에 명백한 이유가있다고 말한다. 스포츠는 일종의 마약이며 이를 공급하는 측은 수요를 자극하고 행동을 조작하는데 음흉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것이다. 이들은 「빵과 서커스」야말로 고대 로마제국의 지배층이대중을 침묵시키기 위해 사용한 상투적 수단이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스포츠는 또 불명확한 주장을 사람들에게 사실인 양 속이는데 자주 이용된다. 지난 36년의 베를린올림픽은 아돌프 히틀러가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과시하려 했던 무대였다. 미국과 소련이 각각 불참했던 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냉전확산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포뮬라원 자동차경주는 담배회사들이 자신들의 생산품을 지구촌 관객들에게 판촉하는 큰 마당이다.조지 오웰은 이를 가리켜 「진정한 스포츠는 페어플레이 정신과는거리가 멀다. 오직 증오와 원한, 허장성세와 규칙무시, 폭력을 바라보며 느끼는 피학적 즐거움으로 이뤄져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총성없는 전쟁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웰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스포츠는 악덕투성이들이다. 축구에서 「기술적」 반칙, 테니스경기에서 신발끈을 묶었다 풀었다 하는 비신사적 행위,링위에서 상대방의 귀를 물어뜯은 마이크 타이슨과 같은 행동, 프로아이스하키 경기때마다 되풀이되는 흉포한 폭력들이다. 하지만스포츠에 관용과 용기, 스포츠맨십이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믿음도 있다. 크리켓경기에서는 심판의 판정이 없이도 스스로아웃되는 타자가 심심찮게 나온다. 대부분의 포켓볼 선수들은 공을건드렸으면 심판의 지적이 없이도 스스로 반칙사실을 고백한다. 매치플레이에서 골프고수들은 종종 숏퍼팅 기회를 상대에게 먼저 양보한다. 결국 스포츠는 인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처럼완벽하게 훌륭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비열한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98년 프랑스 월드컵은 브라질의 펠레가 축구를 가리켜 한 말인 「아름다운 경기」의 축제마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거센 공격과숱한 골에다 66년 포르투갈의 에우세비오, 94년 루마니아의 하기같이 월드컵 영웅도 혜성처럼 등장할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있다. 현상위주의 재미없는 수비전술, 훌리건의 폭력 등이 이 잔치판을 망가뜨려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더라도 아이들은호나우도의 현란한 드리블과 앨런 시어러의 재빠른 침투 등 자신의우상들이 펼치는 화려한 기술을 흉내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좋든 나쁘든, 프랑스 월드컵을 통해 스포츠는 개인 뿐 아니라 나라전체를 들썩이게 만들면서 여전히 전쟁못지 않은 파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나게 할 것이다.◆ 스포츠는 지지자들 문화에 뿌리 둬야 성공사전적 의미에서 스포츠를 설명하는 용어들인 ‘오락’ ‘기분전환’ ‘재미’ 등은 차후의 문제일 뿐 스포츠 행위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설명은 아니다. 사전적으로 갖고 있는 의미 이외에 스포츠의다른 면은 무엇일까? 스포츠는 항상 경쟁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것이 없다면 실제경기는 없고 오직 연습만 있을 뿐이다. 사람의 유전자에는 거의 모든 동물들처럼 경쟁의식이 숨어 있다. 인간은 경쟁하기를 좋아하고 어떤 것이든 남이 경쟁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이런 토양에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수많은 스포츠가 탄생했다. 선수들은 본능적으로, 또 팬들로부터 환호와 주목을 받기 위해서로 경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스포츠라고 불리기에 적절한 종목은 아직 없다. 축구조차도 세계의 스포츠라고 불릴 수 있는 모든 요건을 모두 만족시키지는 못한다.축구는 미국의 영향력을 뛰어넘는 유일한 세계적 스포츠라고 할수있다. 군사력과 텔레비전 시그널이 미치는 곳이면 어디든지 퍼져나가는 미국의 영역,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스포츠다.미국의 옛 식민지였던 필리핀에서는 농구가 한때 미국의 점령지였던 일본과 쿠바에서는 야구가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다. 서인도제도에서는 미국 TV에 맛을 들인 젊은이들이 농구에 흥미를 보임에 따라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내려온 크리켓에 대한 열정이 퇴조하고있다.그러나 미국 스포츠가 햄버거와 소프트 드링크처럼 세계를 석권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성공적인 스포츠는지지자들의 문화에 뿌리를 둬야 하는데, 문화라는 것은 서서히 변화하는 법이다. 멕시코인들은 나라가 미국과 붙어 있음에도, 바로그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축구를 좋아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와 빅토리아주 사람들은 독특한 오스트레일리안축구를 좋아한다.파키스탄 스리랑카 인도 등 인도아대륙 주변에서는 소년들이 아직도 골목골목이나 공원에서 크리켓을 하며 논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는 배드민턴이 축구와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미국에서도 축구가 점차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다. 축구를 즐기는어린이 세대가 늘고 있고 히스패닉계 축구광들이 유입되면서 축구는 미국의 주요 스포츠로 부상하고 있다.그러나 전통만으로는 스포츠가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지 못한다. 테니스의 일종인 「이튼파이브」라는 경기는 한세기가 지나는동안 극소수 상류층 사람들만이 하는 종목이 돼버려 입지를 잃어버렸다. 스쿼시같은 스포츠는 참여자들이 늘어나면서 상당히 널리 알려지게 됐지만 텔레비전으로 중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운동을 직접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인기가 전혀 없다.그렇다면 문화적인 토양을 제외하고 특정 스포츠가 성공하기 위한요소는 무엇일까? 그 하나는 텔레비전으로 방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에 상응하는 광고와 스폰서가 따른다.또 하나는 재능있는 선수들을 끊임없이 배출해 내는 시합과 지도시스템이라는 구조가 필요하다. TV중계와 광고를 통해 나오는 돈이이 구조의 재정적 뒷받침으로 작용하는데 이 구조 속에서 스타가배출된다.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이다. 스포츠가 영웅들을 배출하지못한다면 관중이나 TV카메라가 결코 몰려들리 없기 때문이다.「Not just a game」 Jun. 6,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