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1백40엔대의 엔저가 지속되면서 일본에 진출한 한국현지기업의 경영여건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 상사 증권업체 등이 일본에서 또 다시 속속 철수하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한파로 인한올초의 대규모 철수의 충격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2차철수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한국의 현지영업기반 자체가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있다. 그러나 모든 현지기업들이 몸살을 앓고있는 것은 아니다.IMF관리체제, 달러당 1백40엔대의 초엔저, 일본판빅뱅(금융대개혁)등에 따른 위기를 오히려 찬스로 십분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도있다. 농심 한일은행 기아의 일본법인 및 사무소가 바로 그것이다.농심 도쿄사무소(소장 박준상무)는 올들어 5월말까지 라면 21만상자(한 상자는 30개)를 팔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61.5%나 늘어난 것이다. 라면을 땅에 깔 경우 2백76㎞에 이르는규모다. 서울에서 대구까지보다 조금 더 먼거리다. 원화하락에 따른 거래선들의 가격인하 압력, 경기침체로 인한 일본내수 부진에도불구하고 현지시장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숫자만으로도 농심의 활약상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수입제품이 발붙이기 어려운일본시장의 특성을 감안할때 신라면시장의 확대는 수치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신라면, 일본인 입맛 사로잡아일본은 유화제인 폴리솔베이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품질규제를 심하게 하고 있다. 자극적인 것을 싫어하는 등 일본인의 입맛도 까다롭다. 그래서 수입면이 발을 붙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이는 수입실적으로 쉽게 증명된다. 일본으로 현재 즉석면을 수출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태국 대만 이탈리아 뿐이다. 그나마 한국이86%선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한국수출의 대부분은 농심신(辛)라면이다. 신라면이 외국상품으로는 소비자에게 알려진 유일한 즉석면이라 할수 있다. 「면의 종주국」 일본에서 한국 본고장의 「매운맛」을 톡톡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농심이 IMF사태이후일본시장을 크게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유통망의 확보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일본 최대편의점인 세븐일레븐과 신라면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를 신호탄으로 미니스톱 선커스 AMPM 쓰리에프 세브옹 핫스퍼 등 편의점으로까지 판매망을 넓혔다. 한국시장에 앞서일본에 내놓은 「신컵라면」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같은 브랜드간에 경쟁을 하면 안된다」는 통설을 깨트렸다. 신컵라면의 시장개척에 자신이 생겼다. 그래서 곧장 한국에서도 판매에 들어갔다.「신라면은 컵면도 맛있다」라는 평가를 얻어냈다.그러나 편의점을 통한 시장공략이 간단한것은 아니었다. 『편의점들은 좀 안팔린다 싶으면 물건을 치워 버립니다. 손꼽을 정도인 정식 판매품을 제외하고는 라이프사이클이 석달이 안됩니다. 그러나신라면은 7개월째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농심 도쿄사무소의 이기로 과장은 독특한 매운맛을 살리는 품질관리와 납기준수를 통해 편의점판매를 늘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불황으로 가격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가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게 그의 귀띔이다.농심은 최근 일본시장용으로 개발한 김치컵라면을 7월부터 대형편의점인 로손과 패밀리마트에 공급한다. 신라면을 팔고 있는 세븐일레븐과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농심은 또 일본 최대슈퍼인 다이에에 이어 2위인 이토요카도에도 조만간 신라면을 넣는다. 이같은시장개척을 통해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61% 늘어난 55만상자를 판매한다는 목표다.기아재팬(사장 이무영)의 활약상도 두드러진다. 법정관리 파업휴업 등으로 서울 본사가 어수선한 와중에서도 현지 차시장공략을가속화하고 있다. 기아재팬은 지난 3월말 일본 최대수입차판매 상장회사인 (주)패밀리와 특약판매계약을 맺었다. 패밀리는 연50%이상 성장해온 일본의 수입차시장의 선도기업으로 지난해 1백46억엔의 매출을 올렸다. 기아와 패밀리간의 제휴는 니혼게이자이신문에서 박스기사로 처리되는 등 큰 관심을 끌었었다. 5월에는 신차중고차판매회사인 중부자동차와도 특약점계약을 체결했다. 두차례에 걸친 계약을 통해 확보한 판매망은 모두 70여개. 기아재팬은 이들 판매망을 통해 대당 2백98만엔짜리 정통 스포츠카인 「비가토(엘란의 수출모델)」 80여대를 팔았다. 순수 한국브랜드로는 일본서 가장많은 판매실적을 올린 것이다.』 짧은 기간동안의 판매를통해 시장개척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는게 기아재팬 최병하 차장의설명이다.기아는 비가토에 이어 올 9월께 「스포티지」를 판매할 계획이다.내년 1월에는 「카니벌」도 수입 판매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판매차종 확대를 바탕으로 내년말까지 스포티지 2천대를 비롯해 카니벌 7백대, 비가토 3백대등 모두 3천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장기목표인 2002년에 가서는 1만대 규모로 늘린다는 전략이다.기아재팬은 일본공략을 위해 딜러망을 계속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9월말까지는 90여개로 우선 늘릴 예정이다. 2002년에는 2백50개소를 확보한다는 목표다.한일은행 도쿄지점(지점장 서삼영)은 IMF한파와 일본의 외환자유화를 동시에 겨냥한 초고금리 저축상품으로 일본의 개인자산유치에본격 나서고 있다. 한일은행이 선보인 상품은 금리 10%짜리 달러정기예금인 「IMF경제회복 수출지원예금」. 일본은행과 외국계은행의 일반적인 달러예금금리인 3~5%에 비해 훨씬 높다. 이 상품은최근 일본의 「머니재팬」지에 특집기사로 크게 다뤄질 정도로 현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기아, 2002년 1만대 판매이처럼 파격적인 고금리를 무기로 한일은행은 캠페인에 나선지 2개월여만에 35만7천달러(37건)를 유치했다. 한국의 현지금융기관이일본의 개인을 대상으로 달러예금을 유치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한일은행 도쿄지점의 창구에는 요즘도 하루 3~4건의 달러예금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10% 금리라도 IMF금리와 비교할 때 결코은행측 의 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서삼영 지점장은 외환위기의원인이 됐던 달러부족문제를 해결하면서 외환거래자유화로 움직이기 시작한 1천2백조엔의 일본개인 금융자산도 유치하는 일석이조의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밝힌다.한일은행의 일본자산 유치대상이 달러화만은 아니다. 다른 은행에비해 파격적인 금리로 엔화예금유치도 본격화하고 있다. 한일의 엔화정기예금 금리는 2.5%. 일본의 대형도시은행과 외국계은행의0.4%에 비해 엄청 높다. 고금리를 내세워 한일은 4월1일부터6월13일까지 6억3천만엔(1백17건)을 유치했다. 한일은행은 9월말까지 실시되는 이번 캠페인기간중 달러를 비롯, 엔화유치에 온힘을쏟는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