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씨는 누구도 부럽지 않게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성균관대약대를 나와 서울 스카라극장 앞에서 피보약국을 경영했던 그는 피부전문약사로 전국에 명성이 자자했다. 수십만명이 이 약국을 찾아여드름 습진 화상 등 피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약을 지어갔다. 심지어 약사들도 김씨로부터 조제약을 얻어가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돈도 많이 벌었다. 번돈중 일부를 보람있게 쓰기 위해 사비로새마을연수원을 건립, 청소년과 새마을지도자를 상대로 정신교육을시키기도 했다. 반공연맹중부지부장 등 각종 지역기관장 타이틀을4개나 갖고 지역사회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다.하지만 사람의 삶이 항상 순탄할 수만은 없는 법. 70년대말 인생을뒤바꿀만큼 큰 시련이 찾아왔다. 검찰로부터 소환장이 날아든 것.혐의는 무허가 제약행위. 조제약을 약사들에게 판게 불법행위라는내용이었다. 법률지식이 없었던 그는 약사들이 약을 달래서 판 것이 큰 죄에 해당하는 줄을 몰랐다. 결국 징역3년 집행유예 5년에8억3천만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전재산을 팔아도 극히 일부밖에 갚을 수 없는 큰 돈이었다.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됐다. 게다가 세금까지 추징당했다.◆ “샘플만 써봐도 알아요” … 이미지 부각이 일을 계기로 20여년간 종사해온 약사의 길에서 떠났다. 「돈을벌자. 벌어서 벌금을 내고 떳떳하게 재기하자.」 이를 악물었다.하지만 무엇을 해서 돈을 번단 말인가. 가진 지식이라고는 피부에관한 것밖에 없는데. 그는 여성의 피부에 관해선 자신있었다. 이미30만명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다. 순간 머리속에 번개처럼 스치는게있었다. 「그렇다. 화장품사업에 나서자」.기초화장품사업에 투신키로 방향을 잡았다. 친인척 돈을 빌려 간신히 밑천을 마련했다. 소규모 화장품회사를 인수, 화장품제조허가를획득했다. 군포에 새공장을 마련하고 참존의 전신인 부한화장품을설립했다. 모든 여성을 아름답게 만들고 나아가 부유한 한국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꿈이 담겨 있었다. 브랜드는 참존으로 정했다. 참좋다는 뜻의 순수한글이면서 영어로 표기하면 매력지대라는 의미도있었다.첫 출시한 제품은 영양크림과 영양로션. 품질은 기가 막히게 좋았다. 수십년간의 경험과 과학적인 실험을 토대로 제조한 기능성화장품이었다. 하지만 광고를 할 돈이 없었다. 화장품에서 광고는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했다. 직원을 동원해 팔러 다녔지만 거들떠 보는 사람이 없었다. 피보약국 약사출신이 만든 것이라고 설명해도 전시하려는 화장품가게가 없었다. 월 2천만원의 매출을 올려야 손익을 맞출 수 있는데 2백만원어치 팔기도 힘들었다.1년새 적자는 2억원으로 불어났다. 주위에선 하루빨리 걷어치우는게 손해를 덜 보는 것이라고 충고했다.궁리끝에 다단계판매방식을 도입했다. 다단계가 불법판매라는 언론의 보도에 얻어맞으면서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그와 거래했던 약국들도 조사를 받았다. 하도 안팔려 과거 안면이 있던 약사들에게 부탁해 화장품을 전시라도 해달라며 준게 무자료거래로 적발된 것. 자신을 도와주려던 약사들마저 피해를 보게됐다. 그는 이제 자살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자신처럼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죽더라도 빚은 갚고 죽어야 할 것 아닌가. 극한 상황에 처하자 한편으론 오기도 났다. 보란듯이 돈을 벌어 모든 것을 갚고야말겠다는 생각이 솟구쳤다.이때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샘플을 뿌려보자는 것. 샘플을만들어 공짜로 화장품가게에 갖다주기로 했다. 소비자가 찾으면 그때 주문을 하라고 부탁했다. 이 방식은 대히트했다. 샘플로 뿌려진참존데이나이트 마사지크림은 제품사용후 피부노폐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고 피부개선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소비자들이샘플을 써본뒤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화장품가게의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상으로 달라고 했다. 이는 업계의 관행이기도 했다. 김사장은 이를 거절했다. 현금으로 사가도록 했다. 조금을 팔더라도 현금으로 거래해야 자금회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고객의 등쌀에 떼밀린 화장품유통업체들은 할수없이 현금으로 사가기 시작했다.이어 신제품을 하나씩 출시했다. 88년엔 클린싱워터를 내놓았다.클린싱제는 크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국내 처음으로 워터형식으로 선보인 것. 피부청결효과가 뛰어난 이 제품은 품절사태를 빚을정도였다. 4년동안 독점판매를 한뒤에야 대형업체들이 뛰어들었다.◆ 탈세 오명 벗고 모범 납세자로 표창이어 선보인 참존뉴콘트롤크림은 약국과 화장품업체 경영을 통해30년간 쌓은 노하우의 결정체. 기존의 참존 마사지크림의 효능에영양크림과 에센스의 효능을 결합한 제품이다. 발라두기만 하면 영양성분이 피부 깊숙이 스며들고 피부속 노폐물은 용해돼 피부표면엔 물기만 남게 된다는 것. 이 제품은 95년 1백20만개, 96년과97년 각 1백50만개가 팔려 기초제품으로 연속 2년 판매1위를 기록했다.이같은 성장을 촉진시킨 또 하나의 원동력은 독특한 광고전략. 돈벌이가 되면서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전략은 철저한 차별화였다.화장품광고의 모델은 천편일률적으로 미인이었다. 하지만 참존의모델은 엉뚱하게도 청개구리. 조그만 청개구리가 등장하면서 진솔한 내용을 소개하자 세인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막연히 기업이미지를 부각시키는게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를 가진 기능성 화장품임을 호소했다. 청개구리는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제품으로승부를 건다는 회사 이미지와도 맞아 떨어졌다.이같은 전략으로 참존은 성장가도를 질주했다. 매출은 95년2백56억원에서 96년 3백30억원, 지난해엔 4백81억원으로 올라갔다.매출액중 당기순이익이 10~15%에 달할 정도로 이익도 많이 났다.지난해 매출엔 일본 캐나다 미국 등 30개국으로 수출된 1백만달러도 포함돼 있다. 91년 일본과 미국에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시장에 일찍 눈을 돌린 덕분이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으로부터 참존의 탑뉴스라는 제품이 기내면세품목으로 선정돼 판매되기 시작했다. 기내면세품은 명품이 아니면 얼굴을 내밀기 어려운 법.김사장은 올봄 조세의 날에 법인세 16억5천만원을 납부한 모범납세자로 선정돼 서울지방국세청장상을 받았다. 이어 삼성세무서의 일일명예세무서장으로 취임, 세무서원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그는일생에서 이 상이 가장 받고 싶었다고 서두를 꺼낸뒤 그동안 조세당국에 끼친 누를 갚을 수 있게 돼 너무나 기쁘다고 감격을 표현했다.내년에 환갑을 맞는 김사장은 청년 이상으로 의욕에 넘쳐 있다. 기초화장품 전문업체로 국내에서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고 판단한 그는 이제 제일의 명품을 만들어 랑콤 등 세계적인 업체와 당당히 겨루는 한국의 대표선수로 뛰겠다는 생각이다. 샘플과 고품질 그리고차별화된 광고전략으로 국내화장품업계의 철옹성을 정면돌파한 그는 세계시장 도전도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여긴다. (02)3485-94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