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머뭇거리면 안된다. 빨리 추진할수록 반개혁 세력은 힘을잃게 된다.』지난 80년대 뉴질랜드 개혁을 선도했던 민간인 출신의 더글라스 재무장관이 한 말이다. 이 얘기를 우리 실정에 대입해보자. 속전속결과는 거리가 멀다. 발표는 거창한데 실천은 「만만디」 그 자체다.지난 7월3일 기획예산위원회 4층 대회의실. 내·외신 기자들이 자리를 꽉 채운 가운데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이 공기업 민영화방안을발표했다. 포항제철 한국중공업 등 5개 공기업을 즉각 매각하고 한국통신 담배인삼공사 등 6개사는 2002년까지 민영화절차를 밟는다는 방침이었다.그로부터 한달여가 지난 지금. 어디서도 포항제철의 정부지분이 언제 매각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지분매각을 늦춰야한다는 포철의 주장만이 나오고 있다. 외국인에 팔겠다던 한국전력의화력발전소 건도 종내 무소식이다. 제값을 받기 위해서 자산재평가를 실시해야 하니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논리만 판치고 있다. 정부산하 연구기관에 대한 재편도 참담히 실패했다. 7백여개의 정부산하단체에 대한 정리방안도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지난 7월21일 발표키로 한 2차 공기업 경영혁신안은 노조의 반발에 밀려 아직도 진위원장의 책상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이것이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개혁의 현주소다.김대중 정부는 정권출범전 인수위 시절부터 강도높은 정부개혁을하겠다고 나섰다.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기업 국민 모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다. 올바른 방향이었다. 그러나새정부 출범 6개월이 다되는 지금, 가장 중요한 정부개혁은 성과가없다. 민간부문에선 숱한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쓰러졌고 이에따른실직자들은 거리에 넘쳐나고 있는 것이 요즘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꼬인 걸까.새정부의 정부개혁은 크게 세가지 축으로 진행됐다. 중앙정부축소공기업민영화 정부산하단체 정리가 그것이다. 공공부문이 국가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민간부문을 최대한 활용해 경제에 활력을 주기 위한 방안이었다.◆ 추진주체 대한 의구심 갈수록 증폭그러나 첫 시도였던 정부조직개편부터 개혁은 어긋났다는 것이 국민들의 반응이다. 정부조직개편위원회의 정부조직법은 부처이기주의에 밀려 이리저리 모양만 바꾼 꼴이었다. 재정경제원이 재정경제부로 권한과 조직이 약간 줄어든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부처별 정원을 10%씩 줄이라는 방침에 하위기능직만 물을 먹었다. 모부처에서는 여성기능직 직원끼리 「사다리 타기」를 해 퇴사인원을 확정짓는 웃지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 정부는 국가공무원 수를 2000년까지 1만7천명을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여지껏 별다른 진척이 없다.이처럼 중앙정부조직은 그대로 둔 채 공기업과 산하단체에 대해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서니 순순히 따를리 없다. 『자신은조그마한 생채기를 내고 우리에게는 팔 다리를 자르라는 말이냐』는 공기업 간부의 불만도 이래서 나온다.공공부문 개혁을 담당하고 있는 기획예산위의 행보를 되돌아보면이같은 우려는 사실로 다가온다. 지난 4월 52개 정부산하 연구단체에 대해 강도높은 통폐합안을 마련했다가 부처들의 반발에 밀려 방안이 백지화됐다. 대신 총리실산하에 통합이사회를 두는 식으로 절충했다. 『모부처 장관은 기획위가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다 가져가려는 속셈 아니냐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는게 이계식 정부개혁실장의 회고다. 포철 민영화방안은 더 우여곡절이 많았다. 기획위는당초 포철의 1인당 지분을 5%로 확대하는 방안을 세웠다. 그러나발표 10분전에 3%로 재차 수정됐다. 주식을 제값받고 팔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하지만 주변에서는 정치권의 입김과 경영권을빼앗길 우려를 아예 없애려는 포철맨들의 로비가 먹힌 결과라는 후문이다.민영화 방안이 확정된 공기업도 해당부처가 주관해 이행토록 했다.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추진해도 성사가 불투명한 판국에 그동안 앞장서서 민영화에 반대하던 부처에 맡긴 것이다. 해당부처들이 얼씨구나 좋다고 덥썩 받아안은 것은 물론이다. 김동건 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는 『공공부문 개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부처이기주의와이해집단의 조직적 저항이라는 것이 그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정부의 강력한 추진의지가 없으면 공공부문 개혁은 또다시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정부개혁이 또 한번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는 여기서 그치지않는다. 추진주체에 대한 의구심이 갈수록 커지기 때문이다. 청와대 기획예산위원회 집권여당이라는 얼핏보면 환상적인 3각 편대가형성돼 있지만 구심점이 없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청와대는 정치논리에, 기획예산위는 부처들의 반발에, 여당은 노조와 국민여론에흔들리면서 「정부개혁」이 깃발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역사는 두번 반복된다고 했던가. YS정부의 「실패한 개혁」이라는망령이 또다시 떠돌고 있는 지금이다.★ 인터뷰 / 진념 기획예산위원장공공부문 개혁의 선장을 맡고 있는 진념 기획예산위원장. 지난 2월출범이후 5개월동안 그는 험난한 파도와 싸웠다. 국책연구기관, 공기업, 협회등의 산하단체에 대한 개혁방안을 마련하면서 각계의 기득권세력을 설득시켜야 했다. 개혁작업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길거리로 쫓겨난 실직자는 「철밥통」 공무원을 향해 『나라를 망쳐놓았으면 책임을 지라』고 원망한다.진념 위원장을 지난 7월30일 오후 기획예산위원회 4층 위원장실에서 만났다.▶ 국민은 공공부문 개혁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느끼고 있습니다.『한쪽에선 빠르다 하고 다른데선 늦다고 하는데 정부는 정한 원칙과 스케줄에 따라 개혁작업을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초 공기업 개혁방안은 6월말까지, 협회등 산하단체 정비계획은7월말까지 마련한다고 했는데 늦어진 것 아닙니까.『공기업의 경우 노사정위원회에서 협의하느라 발표시기를 늦춘 건사실입니다. 개별 노조와는 협의를 했지만 전체 노조대표와 논의를거쳐야 했기 때문이죠. 1~2주일 연기된다고 해서 인색하게 따질 수는 없잖아요.』▶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IMD(스위스의 경영개발연구원) 평가기준으로 현재 34위에서 5년안에 15위로 끌어올리겠다고 대통령에게업무보고를 했는데 올해말까지 몇 계단이나 올릴 수 있습니까.『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개혁은 한창 진행중이지만 평가는 2~3년 뒤에나 나올 수 있습니다. 내후년부터는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는 평가가 나올 겁니다. 5년안에 15위권 진입이 가능합니다.』▶ 정권출범전 이뤄졌던 정부조직개편이 실패해 개혁의 첫 단추부터잘못끼워졌다는데.『이번에 행정자치부가 시범적으로 조직축소에 나선게 다른 부처에도 상당한 파급을 미칠 겁니다. 비효율적인 정부부문에 대해선 끊임없이 개혁 작업을 진행한다는게 국민의 정부의 원칙입니다. 특히하반기엔 지방행정조직및 특수기관도 손을 댑니다.』▶ 일각에선 정치인출신 장관이나 공기업 기관장이 개혁은 하지 않고자기사람 심기에만 열을 올린다고 하는데.『많은 부처 장관들이 개혁성향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책연구기관 개혁안이 당초안보다 크게 후퇴한 것 아닙니까.『연구기관이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뒀기 때문에 결코 후퇴했다곤 보지 않습니다.』▶ 개혁과정에서 무엇이 가장 힘든지요.『(한참 생각후) 모두들 총론엔 찬성, 각론엔 반대, 나만 예외라고 말합니다. 경영진 노조등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이 변화를 싫어합니다.』▶ 지금의 개혁이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겠는지.『평가를 예상할 수는 없지요. 과거와 다른 점은 개혁을 실천할 의지가 지금 정부엔 강하다는 점입니다. 한국경제가 완전히 달라진체질로 바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