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언론들이 우리나라 개혁의 걸림돌로 단골로 내놓는 것이 있다.바로 관료집단이다. 지난 2월24일자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designtimesp=8203>지가 그랬고, 5월27일자 <파이낸셜 타임스 designtimesp=8204>지가 그렇게 썼다. 7월초에 방한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루디 돈부시 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이 관료들의 저항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개혁에 실패할것』이라고 경고했다.그들은 한국의 관료들이 수구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여기고 있다. 관료들이 국민의 공복이라는 본연의 지위보다는 거대한 이익집단으로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워엘리트로 똘똘 뭉쳐진 탓에 그 어느그룹보다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이같은 비판은 다분히 경험적이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을 찾았던수많은 외국인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정부의 폐쇄성과 무원칙에 혀를 내둘렀다. 국내 주식시장에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스티브 마빈(자딘 플레밍 이사)같은 이는 『한국 관료들은 지나치게 미시적이고 단발마적으로 현실에 접근한다』며 『똑똑한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제대로 된 정책결정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고 꼬집는다.IMF사태이후 규제가 대폭 완화된 외국인투자와 외환관리도 마찬가지다. 많이 풀었다고는 하지만 세계적인 수준에서 볼 때는 여전히평균을 밑돈다. 그래 놓고도 정부관료들은 과거 정책의 실패를 쉽게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여전히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그들에게외부로부터의 도전도 쉽지 않다.그렇다면 관료들의 이같은 특권은 어디서 비롯됐는가. 단적으로 제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국가공무원법 제68조는 「공무원은 형의 선고, 징계처분 등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그 의사에 반해 휴직 강임또는 면직을 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별 하자가 없는이상 종신고용이 보장돼 있는 것이다. 경영에 실패한 민간기업은문을 닫는다. 그러나 국정운영에 실패한 관료들은 그에 따른 법률적 책임은 물론 정치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국가발전에 큰 피해를주더라도 파면이나 실직될 우려가 없는 특권, 시쳇말로 「철밥통」을 계속 꿰차는 것이다.관료들에게 끊임없이 청탁을 해대는 정치권은 이를 못본체한다. 이러다보니 사상 유례없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고위관료들은 대부분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니,더 나은 자리로 옮기기 위해 끊임없이눈치를 보고 있다. 인맥 학맥 지연을 총동원해 정치권에 줄을 대려혈안이 돼 있다.◆ 관치 진행되는 곳엔 관료 이익 도사려재계 랭킹 10위안에 드는 모그룹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자. 『얼마전에 재정경제부에 민원이 생겨 방문했더니 담당국장이 정치인등이 포함된 리스트를 불쑥 내밀었다. 리스트상의 인사들이 자신에게청탁을 하는 형태로 민원을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기가찼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생색을 낸 뒤 자신의 입지를챙기겠다는 계산이었다.관료들은 또 각종 제도적 틀을 교묘하게 이용해 퇴임후 자리까지보장받는다. 공기업 사장으로 영전하는 것은 예사고 민간금융기관이나 민간기업의 요직도 쉽게 차지한다. 민간에서 공무원 출신을영입하는게 유리하도록 여건을 조성해 두는 수법이다. 말 많고 탈도 많지만 여전히 지속되는 관치금융이 그 전형이다. 관치가 진행되는 곳에는 관료들의 이익이 도사리고 있다고 보면 맞다.보다 심각한 문제는 관료들이 이같은 특권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정부의 「모럴 헤저드」를 부추기는 요인이다.정부의 권한을 자신의 특권과 동일시하고, 공적 이익에 사적 이익을 슬그머니 걸치는 양상이 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정책의 성패가 국민 경제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데도 그에 따른 책임은회피하거나 엉뚱한 곳으로 덮어씌우기 일쑤다. 관료들은 대통령도자신들을 어쩌지 못하는 현실을 알고 있다. 이미 파워집단으로 변해버린 자신들을 제어하려면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국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더라도 관료집단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정부의 도덕적 해이IMF사태이후 우리 사회에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란 용어의사용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제도의 허점을이용해 신의성실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통용된다.도덕적 해이라는 개념은 원래 보험산업에서 유래됐다. 보험가입자가 높은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예를들어 자동차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사고가발생하면 모든 책임을 운전자가 져야 하기 때문에 보다 조심스럽게운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보험에 가입한 경우에는 방심운전이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경우에 따라 보험금을 타기 위한 의도적인사고도 일어날 수 있다.최근 국내실정과 비교해 대표적인 도덕적 해이의 사례는 예금자보호라는 제도를 이용, 금융기관의 부실여부를 가리지 않고 고금리상품이면 무차별적으로 사들이는 행태를 들수 있다. 부실기업주가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자금을 몰래 빼돌려 그 부담을 주주와 종업원에게 전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부부문에서는 공익을 책임지는 의사결정권자가 공적 이익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 공적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때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발생한다. 관치금융에 따른 각종 이권의 독점과 공직퇴임후 자리보장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