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한상사는 전직원 1백명에 지난해 매출액이 2백20억원 정도인 중소기업이다. 최근 이 크지 않은 회사가 화제가 되고 있다. 세계적인 콘택트렌즈 회사이자 레이밴 선글라스로 유명한 미국의 바슈롬으로부터 1천2백50만달러(한화 약 1백65억원)의 투자자금을 유치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돈은 영한상사 지분의 50%를 인수하는비용과 운전자금을 포함한 금액이다. 바슈롬의 직접 투자로 영한상사는 (주)영한-바슈롬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물론 영한상사가 바슈롬의 투자를 끌어들인데는 두 회사가 특수 관계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영한상사는 15년간 콘택트렌즈와 레이밴 선글라스 등 바슈롬의 제품을 국내에 수입, 판매해왔다. 일종의판매대행사였다. 그러나 단순한 판매 파트너에 만족하지 않고 바슈롬이 한국 시장에 장기적으로 관심을 갖고 투자할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해왔다. 이 결과 87년에는 바슈롬의 자체 공장을 한국에 유치하는데 성공했고 이번에는 영한상사에 바슈롬의 지분을 끌어들일수 있었다. 말하자면 영한상사와 바슈롬은 한국내에서의 사업 진행방향과 투자 내용을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의논하고 결정해왔다고할수 있다.◆ 콘택트렌즈시장 잠재력 커 ‘도전’영한상사의 이철영사장과 바슈롬의 인연은 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이사장은 삼립식품 계열의 무역회사인 선영상사 사장이었다. 당시 이사장은 사업 관계로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테드 이자드라는 사람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다. 바슈롬이라는 회사의아시아-태평양 담당 사장으로 회사를 옮겼다며 한번 만나고 싶다는내용이었다. 테드 이자드 사장은 이사장을 만나자마자 바슈롬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하는데 이사장이 판매회사를 설립, 바슈롬제품을 수입해줬으면 고맙겠다고 제안했다.이자드 사장의 제의를 받고 이사장은 국내 콘택트렌즈 시장의 전망이 어떤지 직접 조사했다. 조사 결과 『서울 종로를 중심으로 몇몇안경점이 콘택트렌즈를 취급할 뿐 사업을 벌이기엔 시장이 너무 좁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자드 사장은 홍콩이나 대만 시장을 봤을 때 한국의 콘택트렌즈 시장도 성장 잠재성이 매우 크다며한번 해보자고 주장했다. 결국 이사장은 월급장이 위치에서 벗어나직접 사업을 시도해 볼 때도 됐다는 생각도 들어 자본금 5천만원으로 영한상사를 설립했다.회사를 세우면서 이사장은 바슈롬으로서는 들어주기가 쉽지 않은조건을 하나 내세웠다. 영한상사의 손실을 보전해주는 바슈롬코리아라는 한국 지사를 설립하라는 요청이었다. 이사장은 『당시 한국에는 콘택트렌즈를 판매할 유통망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전문점을육성하고 판로를 개척하는데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었다』며 『유통망 구축에 들어가는 자금을 지원해줄 수단으로 바슈롬코리아 설립을 요구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슈롬측은 이사장의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바슈롬코리아는 사실상 이름뿐인 회사였고 지사장도 이사장이 겸임했다. 그는 『테드 이자드 사장과의 오랜 친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한다.사업은 예상 이상으로 잘돼갔다. 콘택트렌즈 시장 자체가 성장하고있었기 때문에 영한상사의 실적은 매년 상승했고 사업하는 재미 역시 쏠쏠했다. 그러다 이사장은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 하려면 수입만 할게 아니라 무언가 한국에 기여하는게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직접 생산도 하고 수출도 하면서 한국 경제에도움을 주는 기업이 돼야겠다는 생각이었다.이사장은 자신의 생각을 바슈롬측에 전하고 한국에 공장을 설립하자고 제안했다. 바슈롬측은 한국에서 판매하는 콘택트렌즈 물량이공장을 지을만한 양이 되지 않는다고 난색을 표했다. 이사장은 그래도 꺾이지 않았다. 결국 바슈롬은 일본에서 판매하는 렌즈까지한국 공장에서 생산하기로 하고 87년 바슈롬 본사와 영한상사가 각각 80대 20의 비율로 투자, 충북 음성에 공장을 건설했다. 공장을관리하는 생산회사로 바슈롬코리아를 정식으로 출범시켰고 바슈롬코리아 사장은 이사장이 맡았다. 현재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렌즈는 한국에서 판매될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이 덕분에 바슈롬코리아는 92년 1천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했다.◆ 15년 사업실적 높이 평가 ‘합작’바슈롬이 이번에 영한상사에 투자하기로한 결정도 『이제는 단순히제품만 판매할 것이 아니라 그에 맞는 최고의 서비스까지 제공해야한다는 생각때문』이라고 바슈롬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존 로크린 부사장은 말한다.바슈롬이 영한상사에 투자한 것과 같이 해외에 합작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장이 크지 않을 경우에는 판매대행사를 두고 시장이 확대되면 1백% 직접 투자하는게 바슈롬의 해외 진출 관행이다.사실상 바슈롬이 해외에 합작으로 진출한 경우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로크린 부사장은 한국에 합작 형식으로 투자한 이유에 대해 『영한상사의 지난 15년간 사업 실적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합작 조건 또한 영한상사에 상당히 유리하다.이사장은 『IMF로 인해 우리 입장이 상당히 불리해졌는데도 바슈롬측에서 IMF 이전에 합의된 내용 그대로 이행해줬다』고 말한다. 바슈롬은 자금만 투자할 뿐이지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게 이사장의 설명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경영권은 이사장이 계속 갖게되고 바슈롬측에서 임직원을 따로 파견하지도 않는다. 로크린 부사장은 『한국에도 좋은 인재들이 많아 특별히 상근 직원을 파견할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이사장은 두차례에 걸쳐 바슈롬의 한국 투자를 유치하면서 중소기업이 외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는 신뢰성이고 둘째는 경영의 투명성이다.신뢰성이란 믿고 거래할만큼 경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확신시키는 것이다. 이사장은 『무조건 해외 파트너의 요구를 들어줄 것이 아니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받아들일 수없는 것은 그 정당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경영의 투명성이란 신뢰할만한 재무 및 회계관리에서부터 시작한다. 투자를 하려해도 매출액이나 비용, 이익 등이 어디에서 얼마나발생하는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면 거래 자체가 힘들어진다.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무자료 거래도 많고 접대비로 쓰이는 영업비도 적지 않아 매출액과 비용, 이익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관리하기가 어려운게 사실』이라고 말한다. 영한상사도 영업 초기에는 업계 관행에 따라 거래처가 원하면 세금계산서를 끊지 않기도하고 세금 자료를 분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성장하기위해서는 회계 및 재무관리부터 정비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어 90년부터 세금계산서를 정확히 발행하고 필요이상의 영업비도 과감하게줄였다. 이사장은 『처음에는 거래처들의 반발이 심해 한 때 매출액이 급감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우리 방식이 정착돼 가는 것 같다』고 말한다.영한-바슈롬은 IMF의 영향으로 올해 매출액 목표를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2백20억∼2백50억원 수준으로 잡았다. 이사장은 『지난5년간 매년 20% 이상씩 성장했는데 올해 그 기록이 깨질 것 같다』면서 『올해는 유통망을 정비하고 서비스 질을 높여 내실을 다지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