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복제 때문에 소프트웨어는 안된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에 퍼져있는 자괴감이다. 한글과컴퓨터도 마이크로소프트에 무릎을꿇으면서 불법복제를 탓했다. 물론 불법복제가 문제가 있긴 하지만불법복제의 모든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길 수만은 없다는 의견도만만치 않다. 소비자들이 불법복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정품CD를살수 있는 마케팅전략을 세우는 것 역시 기업가의 몫이기 때문이다.한글과컴퓨터는 신임 전하진(40)사장을 영입하면서 사업전략을 크게 바꿨다. 우선 가격부터 손질했다. 소비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는데 부담없는 가격인 1만원으로 정했다. 워드프로세서 단품하나의 가격이다. 여러 종류의 소프트웨어를 한꺼번에 구입해야 하는 오피스형 패키지상품 전략도 전면 수정했다.1만원이라도 1백만카피만 판매하면 매출액이 1백억원이나 된다. 소프트웨어의 특성상 아무리 판매량이 늘어도 부대비용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1년후 업그레이드에 1백만명이 5천원만 내고 참여하면 매출액이 50억원이 된다. 1백만명이란 수는 PC누적판매대수와아래아한글 사용자수 등을 고려한 수치다. 현재 PC누적판매대수는5백만대로 추산된다. 이중 80%인 4백만대에 아래아한글을 설치해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중 1백만명만 신규구입 내지 업그레이드에 참여한다고 하면 1만원에 판매해도 충분히 승산있다는 계산이다.불법복제를 극복하는 마케팅전략은 단지 저가판매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사용자네트워크를 구성하는데 있다. 회비1만원씩 내고 회원에 가입하도록 유도한 뒤 회원들에게는그 이상의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회원이 되면 아래아한글을 5천원에 구입할 수 있게 한다거나 컴퓨터재해보상 등 보험상품에 가입해 주는 등 1만원 이상의 해택을 제공한다.사용자 네트워크는 일종의 소비자 공동체다. 한글과컴퓨터의 워드프로세서를 저가에 구입할 수 있도록 할뿐 아니라 개발능력이 있지만 마케팅력이 없는 군소SW개발업체 들의 제품도 저가에 구매할 수있게 한다. 제품품질은 한글과컴퓨터가 사전에 테스트해 소비자들의 상품구매 판단기준으로 제공한다. 이런 제품을 5천원이나 1만원에 판매한다 해도 개발사는 개발비를 충분히 회수할 수 있게 된다.상품 영업방식도 크게 바뀐다. 전사장은 『상품개발을 마친 다음에영업에 돌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강조한다. 개발방향만 잡히면 프로토타입만으로 영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새롭게 개발되는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된다. 이뿐 아니라 새로운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를 파악해 신제품 개발에즉시 반영할 수 있게 된다. 신제품이 나올 때 쯤이면 이미 영업이마무리된 상태에서 곧바로 납품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이 방법은 전사장이 설립한 ZOI월드에서 적용해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ZOI월드는 최근 가정용 교환기를 출시하자 마자 1천만달러를 계약했다. 개발초기부터 꾸준하게 국제전시회 등을 돌며 영업한결과다. 사전영업은 신제품이 소비자의 요구를 신속하게 반영할 수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가정용 교환기에는 당초 개발방향을 잡았을 때 보이스메일 기능이 없었다. 그런데 개념과 모형, 시제품만으로 소비자들과 접촉하면서 보이스메일 기능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사실을 파악해 상품사양에 포함시킨 것이다.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서 소비자들을 사용자 공동체로끌어 들이려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게 될지 두고 볼일이다.★ 인터뷰 / 전하진 한글과컴퓨터 사장『아래아한글이란 제품에 대한 사용자들의 제품충성심(Brandloyalty)을 고려하면 충분히 승산있습니다』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할 이찬진사장과 함께 한글과컴퓨터의 공동대표를 맡아 관리, 마케팅 등 회사경영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게 될전하진 신임사장은 한글과컴퓨터는 분명히 시장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국수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것이다.『물론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사용자들의 제품충성심을 마케팅에잘 활용하면 한글과컴퓨터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산업 전반의 활력이될수 있습니다.』전사장은 『한글과 아래아한글이란 특정업체의 소프트웨어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무리가 있는게 사실』이라며 한글살리기 운동이외국인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전사장은 『아래아한글을 살리는 이유는 국수적인 행동이 아니라 시장에서 승산있다는 경제적 판단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패키지소프트웨어를 2백만카피나 팔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아래아한글 사용자들을 사용자네트워크로 끌어 들여 정품소비로 유도할 수 있다면 한글과컴퓨터의 미래는 상당히 밝은 편입니다.』한글과컴퓨터의 경영방식도 크게 바뀐다. 한글과컴퓨터는 앞으로모든 것을 공개주의의 원칙에 의해 업무를 처리할 방침이다. 회사내부의 일뿐 아니라 대외 협력관계도 모두 공개해 사내게시판에 올려놓을 계획이다. 심지어 사장과 당사자만 알고 있는 연봉계약내용도 공개할 예정이다.『연봉계약 등 인사기록이 비밀에 부쳐지면 사장이 모든 직원을 직접 통제하게 됩니다. 비밀이 생기면 윗사람이 통제하게 되고 결국최종 결정은 사장이 하게 됩니다. 이는 직원들의 창의성을 저해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위만 바라보는 조직은 미래가 없습니다. 「잘못보이면 잘못된다」는 사고가 있는 조직문화로는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물론 한글과컴퓨터가 헤쳐나갈 역경이 없는 게 아니다. 신제품을개발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연구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자금조달이 쉽지 않다. 실제 지난해 부채의 상당부분이 상품개발과정에서 투입된 라이선스 비용이었다. 이런 비용부담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한글과컴퓨터가 풀어야 할 해결과제다.이에 대한 전사장의 답변은 명쾌하다. 전사장은 『워드프로세서의핵심적인 부분은 한글과컴퓨터가 개발을 담당하고 그외의 모든 부분은 다른 전문업체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해 보완하겠다』며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고 상품개발 및 영업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면된다』고 말했다.전사장은 『소프트웨어회사의 가치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며 미국에서 무료전자우편서비스를 제공하는 핫메일사를 예로 들었다.『핫메일사는 매출이 연간 1천5백만달러에 불과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매출액의 40배가 넘는 가격으로 인수했습니다. 마찬가지로한글과컴퓨터의 가치를 현재의 상황으로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전사장은 97년 해외마케팅 전문회사인 지오이월드를 설립해 기획력으로 소프트웨어 수출의 새로운 지평을 연 마케팅 전문가다. 전사장은 ZOI월드 본사를 국내가 아닌 미국 새너제이에 두고 세계 7개국에 제휴업체를 설립해 「조이패밀리」라는 국제적인 마케팅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조이패밀리는 각국에서 제품을 발굴하면서 현지마케팅을 대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해외마케팅 전략을 펼쳐 주목을받아왔다.전사장은 84년 인하대학교 산업공학과를 졸업한 뒤 금성사 컴퓨터사업부에 입사했다. 88년 픽셀시스템, 91년 ㈜레가시, 97년 ZOI월드 를 설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