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지오와 합작, 제품력·마케팅력 막강...올매출 1백 30억

지난 92년 봄. 반월공단내 제지약품업체인 오피엘에선 갑자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쇳덩어리가 지붕을 뚫고 하늘로 치솟았다. 지붕이박살나고 파편이 내려앉았다. 먼지가 공장을 뒤덮었다. 사무동에 있던 사람들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공장쪽으로 달려갔다. 잠시후 공장안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사람이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옷을 툭툭 털더니 씩 웃었다. 꼭 실성한 사람처럼. 그는 다름아닌이 회사 사장인 박종철씨(41)였다.박사장은 꼬박 석달동안 전하조정제인 호모폴리머 개발에 몰두하고있었다. 이 제품은 제지공장에서 생기는 폐수를 대폭 줄여주는 약품. 그는 이 제품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주거래처인 모제지업체가 이 제품을 개발해 공급해주지 않으면 다른 제품의 구매를 모두 끊겠다고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 그 제지회사는 이미 환경부의공해단속에 걸린 상태여서 한시가 급했다. 박사장이 하루빨리 제품화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로부터도 기술적인 도움을 받을수가 없었다. 그 제품은 세계에서유일하게 미국의 한개 업체에서만 생산하고 있던 터였다. 국내 최대 제지약품업체를 자임해온 오피엘로선 이 제품을 개발하지 못할경우 명예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자칫 거래처 상당수를 잃을위기에 처했다.박사장은 국내외에서 발간된 호모폴리머와 관련된 논문과 학술지를모두 사모았다. 밤새 논문을 읽고 약품을 섞어가며 실험에 몰두하길 3개월. 폭발사고가 있던 날도 평일과 다름없이 반응기에 약품을섞어 넣고 합성이 되는지를 점검하고 있었다. 박사장은 이날은 웬지 성공할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미 실험실에선 20여차례에 걸친 실패끝에 합성을 한 상태였다. 생산시설인 반응기에서도 제품이만들어지는지를 살피려고 지름 2.3m 높이 3.5m의 반응기에 각종화학약품을 조심스레 투입했다. 두대의 반응기에 같은 약품을 넣은뒤 반응기 한대의 맨홀뚜껑은 열어놨고 나머지 하나는 잠갔다. 몇분뒤 뚜껑이 열린 반응기에서 냄새와 함께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들렸다. 성공했다고 직감한 그는 재빨리 다른 반응기로 달려가 맨홀뚜껑을 열기 시작했다. 잠금장치를 다 푼 순간 압력을 이기지 못한 뚜껑이 로켓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던 것. 제품을 안전하게 생산할 수 있는 반응속도 조정장치도 갖추지 못했지만 제지업체는 빨리납품하라고 성화였다. 박사장은 지붕수리는 뒷전에 두고 첫 제품을싣고 해당 제지업체로 향했다.고등학교 졸업후 제지약품개발에만 종사해온 박씨는 일본업체를 거쳐 85년 오피엘의 전신인 동영산업 연구실장으로 자리를 옮긴다.여기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능력을 인정받았다. 소규모업체이던동영산업이 급성장하는데 기둥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는 신제품을속속 개발하면서도 이들 제품에 대한 정확한 실험결과치를 얻을수없는게 마음에 걸렸다. 테스트를 위해선 수십억원의 장비가 필요한데 중소기업으로서 이를 다 갖추기가 쉽지 않았다. 91년 동영산업의 창업주가 지병으로 작고하고 박씨가 회사를 인수, 사장으로 취임했다.그는 연구실 확대개편에 심혈을 쏟았다. 5명미만이던 연구원을 대폭 늘렸다. 화학과 무기재료등을 전공한 석·박사급 20여명으로 재편했다. 또 공정수및 폐수처리분석기와 관련된 실험기기를 비롯, 각종 분석기기 60여점을 구입했다. 장비 한대에 3억원에 이르는 것도있다. 제지 경기가 좋은데다 제품을 인정받으면서 매출이 급신장했지만 해마다 매출액의 10%이상을 실험장비 구입 등 연구개발에 투입했고 무려 30%를 투자한 해도 있었다. 까닭은 간단했다. 제지약품은 개발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지 정확한 통계자료를 얻어야 고객에게 신뢰감을 줄수 있다는 판단 때문. 주위에선 중소기업이 그렇게 많은 장비를 들여다 놓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했다.◆ 뛰어난 기술 … 세계가 눈독그는 또 천안에 부지 5천평을 구입, 컴퓨터제어시설등 첨단 생산설비를 갖춘 공장도 지난해 준공했다. 자신이 직접 설계해 만든 이공장은 외국인들이 와보고 「예술의 경지」라고 평할만큼 완벽하게지어졌다. 이 공장은 제지약품뿐 아니라 응결제 응집제 중금속제거제 등 폐수처리제와 냉각수처리제 등도 생산하고 있다. 연구설비와생산시설이 좋고 신제품을 속속 내놓다보니 매출도 꾸준히 늘었다.작년매출은 1백억원으로 90년대초와 비교해 10배가량 늘었다. 올해는 1백30억원으로 잡고 있다.공장을 와본 다국적 화학약품업체들은 이 회사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제지약품은 수용성이어서 물의 비중이 약 80%에 달한다.수출할 때 운반비가 많이 들고 특히 적도를 거쳐 운송하면 성분이변하는 어려움도 있다. 북미와 북유럽의 업체들로선 한국에 생산거점을 확보하면 동남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들은 일본도 이 분야 기술은 한수 아래라고 보고 있다. 몇몇업체가합작의사를 타진해 왔으나 박사장은 정중히 거절했다.하지만 IMF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갑자기 금융시장이얼어붙으면서 돈을 구하기 어려워졌다. 박사장은 이들 업체에 합작투자의사를 비쳤다. 세계적인 화학업체 4개사가 즉각 팀을 파견, 생산및 연구시설과 연구원자질 제품수준 등을 상세히 검토한 끝에 지분인수가격으로 액면가의 3∼6배를 제시했다. 서로 더 비싼 가격에지분을 인수하겠다며 치열한 경쟁을 벌인 것.결국 핀란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화학업체인 라이지오그룹이 신주10억원어치를 액면가의 5배가 넘는 4백30만달러에 인수키로 계약,50%의 지분을 가진 합작선으로 확정됐다. 회사명은 7월1일자로오피엘라이지오로 전환했다. 라이지오는 오피엘에 지분인수대금 뿐아니라 2백70만달러를 빌려주기로 했다. 또 8백만달러를 추가 투자키로 하는 등 총 1천5백만달러를 오피엘에 쏟아붓기로 했다. 라이지오는 14개국 35개지역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으며 제지및 환경약품과 마가린을 비롯한 식품 동물사료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그룹은 오피엘라이지오를 아시아의 연구및 생산거점으로 삼기로 했으며 박사장으로 하여금 이를 총괄토록 했다.박사장은 합작전환을 계기로 의욕에 넘쳐 있다. 동남아를 포함한아시아의 맹주가 되겠다는 포부다. 라이지오라는 세계적인 그룹과손을 잡아 제품력과 마케팅력도 막강해졌기 때문이다. 생산제품은양사의 제품중 아시아시장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제품으로 선정할계획이다. 제지약품분야는 오피엘제품을 중심으로, 환경및 폐수처리관련 약품은 라이지오제품을 위주로 재구축할 계획이다. 합작을 계기로 생산제품을 지금의 16종에서 24종으로 늘릴 계획이다. 아시아전체를 겨냥한만큼 생산시설도 증설할 계획이다.『라이지오가 그동안 해온 해외투자 가운데 가장 행복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가장 빠른 시간안에 입증해 보일 작정』이라고 박사장은 말한다. (02)585-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