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주주이익 극대화는 부차적 문제...철저한 고객층 분석이 첫단계

많은 산업이 고도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접어들면서 기업들은 이제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던 단순 성장 모형에서 벗어나양질의 고객층을 선별적으로 공략하는 한편 이 우량 고객을 장기간유지하는 새로운 경영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기업마다 고객 만족도 제고를 위해 새로운 부서를 설치하고 고객 만족도조사를 실시하며 갖가지 신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고객의 로열티(Loyalty:충성도)를 향상시킨 기업은 별로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한 예로 미국의 빅3 자동차업체중 한 회사는 80년대들어 고객 위주의 경영을 기치로 내걸고 고객만족을 최대 목표로 삼았다. 다양한노력의 결과 5년간 고객만족지수는 8%포인트가 상승했으나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과거의 3/4 수준으로 떨어졌다. 더구나 이탈고객(이회사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다가 다른 회사의 차로 바꾼 고객)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이 회사 제품에만족하고 있었다. 이 조사는 고객 만족도가 곧바로 고객 로열티로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객 로열티는 단순한 고객만족도나 서비스 제고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다. 고객 로열티는 특정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장기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것이기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객 로열티 경영은 고객이 누구인지 철저하게 파악하는 작업에서시작된다. 미국의 손해보험회사인 USAA는 군의 장교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보험모집 전략을 폈다. 이 장교그룹의 고객 성향을장기간 연구한 결과 사업영역을 자동차 보험 중심에서 생명보험과건강보험 신용카드 투자신탁 등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얻을 수 있었다.◆ 혼다, 기존고객 관리로 미국서 승승장구신용카드업체인 MBNA 역시 자사의 고객들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전미국 의학협회(AMA)와 각 대학의 동창회, 각종 협회 등에 가입해 있는 회원들의 경우 고객 유지율이 현저히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고객 유지율이 높은 고객일수록 그 고객이 회사에 가져오는 수익성은 높아진다.<표 1 designtimesp=8335> MBNA는 유지율이 높은 고객 계층을 파악, 이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함으로써 높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혼다가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성공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수 있다. 혼다는 「라이프 사이클 마케팅」의 개념을 이용, 재구매율을 65%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같은회사제품의 재구매율이 평균 40%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혼다자동차의 마케팅은 충분히 연구해볼만한 가치가 있다.혼다는 소형차인 「시빅」을 미국시장에 선보였을 때 주로 20대들이 이 차를 많이 샀다는 사실에 착안,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혼다는 20대 시빅 소유자들이 가정을 이루면 보수적인 디자인을 선호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 「어코드」를 선보였다. 또 고객의 자녀들이성장한 후에 다른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최대한으로 막기위해 「어코드왜건」도 추가로 개발했다. 혼다는 기존 고객의 재구매를 통해 성장함으로써 다른 자동차회사와 달리 제품의 생산라인을 크게 바꿀 필요가 없었고 상대적으로 제품라인의 생산성을 올리는데 많은 투자를 할수 있었다.미국의 자동차 딜러들은 혼다차가 다른 회사의 자동차보다 훨씬 팔기가 쉽다고 말한다. 대부분이 옛날부터 혼다차에 익숙해져 있는고객이기 때문에 성능 소개나 옵션 설명이 쉽다는 것이다. 반대로미쓰비시 자동차의 딜러는 3만달러짜리 「디아만테」를 구입하려는변호사를 상대하다가 트럭을 원하는 건설 노동자와 상담하는 등 고객층이 극과 극을 달릴 때가 빈번하다는 것이다. 복잡 다양한 고객층을 상대하다보니 판매원이나 서비스 요원을 교육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가고 결과도 신통찮다는 지적이다.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성공한 혼다가 일본의내수시장에서는 약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미국과 일본의 유통망 차이와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는 자동차 딜러들이 미국과는 상대도 안될 정도로 적은 수의 전시장을 차려 놓고 있으며 그나마 자동차 영업사원이 직접 고객과 상대한다. 결국회사의 역사가 긴 도요타 같은 자동차회사가 선발업체의 장점을 활용, 고객과 장기간의 관계를 이용할 수 있어 혼다가 쉽게 시장 점유율을 넓히지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유통시장에서제품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미국식 자동차 판매시장이 일본에도형성된다면 세력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미국 전체가구의 20% 정도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는 보험회사인스테이트 팜은 고객 로열티 경영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다.이 회사는 판매 및 유통비용이 경쟁 보험사보다 낮은 반면 모집원들은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 회사는 1920년대에 주로 농촌지역의 운전자를 대상으로 보험가입자를 찾았지만 지금은 미국전역은 물론 캐나다 자치주에서도 영업기반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스테이트 팜의 보험 모집인들은 보험 가입자의 이웃에 살고 있는경우가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또 보험 모집인의 자녀들도 대개 부모를 따라 스테이트 팜에 가입한다. 스테이트 팜의 모집인들은 주로 기존 고객의 자녀들인 10대의 초보 운전자를 사무실에 앉혀놓고사고나 위반 스티커, 특히 음주운전이 보험수가를 얼마나 많이 인상시키는지 자세히 설명해 준다. 이같이 모집인들이 지역사회에 기반을 가지고 있는 경우 고객을 찾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예를들어 스테이트 팜의 모집인들은 지역신문을 통해 그 지방학교의 우등 졸업자에게 보험료 할인 등과 같은 가격차별 정책을쓸 수도 있다.본사에서 최첨단 컴퓨터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보험 모집인들의 식견을 앞서지는 못한다. 이들 지역사회 모집인들의 식견을 토대로 스테이트 팜은 과감한 보험료 차별화 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다. 보험료 차별화 전략으로 할인을 받는고객은 십중팔구 우수고객이다. 이들은 스테이트 팜의 특별대우에이끌려 다른 보험회사에 눈길을 돌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본사에서도 장기고객을 유치하는 모집인에게 최대한의 인센티브를 보장함으로써 신규고객 개척이 아니라 기존 고객 관리에서 더욱더 큰보상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런 전략은 신규고객 유치를 강조하며모집인을 몰아붙이는 다른 보험회사의 영업전략과 크게 다른 점이다.◆ 복잡 다양한 고객, 시간·비용 더들어스테이트 팜의 모집인들은 회사의 이런 방침으로 인해 다른 회사보다 눈에 띄게 낮은 이직률을 유지하고 있다. 스테이트 팜의 모집원가운데 4년이상 근무자가 전체의 80%이상으로 미국 보험업계의 평균비율인 30%에 비해 훨씬 높다. 스테이트 팜 모집인들의 평균 재직연수는 13년이지만 업계 평균은 7.5년에 불과하다. 이에따라 스테이트 팜은 자사의 경영방침에 충실하고 보험영업에 노련한 인력을다수 확보할 수 있었고 고객 로열티도 높일 수 있었다. 게다가 스테이트 팜의 모집인들은 신규고객을 유치하러 돌아다니는데 많은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회사업무의 생산성 향상 등에대해 관심이 높은 편이다. 이 때문에 스테이트 팜의 경영진들은 경영 전략을 수립할 때 모집인들을 불러 의견을 묻는다.세계적으로 고객 로열티 경영의 선두를 달리는 기업들은 고객에 대한 가치 제공이 기업의 수익성 및 경쟁력 확보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의 수익이나 주주 이익 극대화가 아닌고객의 가치 극대화를 경영전략의 핵심으로 삼아야 된다는 말이다.이를 위해선 고객의 범위를 다시 정의하고 인사정책도 개선해야 한다. 또 인센티브 제도를 다시 설계하는 등 기존의 기업 운영 관행을 뒤엎는 대변화를 감행해야 한다. 최고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객 로열티 경영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초일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 로열티 경영 외에 대안은 없다. 고객 로열티만이 기업에장기적인 수익성 제고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