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예방, 신뢰도 99.97%달해 ... 송유관공사·한전·한국통신 이미 채택

벼락을 잡는 사나이. 허성환 엘이씨(LEC)코리아 사장(45)의 별명이다. 얼핏 들으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어떻게 벼락을 잡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이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올여름은 유난히 폭우가 많이 내렸다.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수만명의 이재민이 났다. 폭우가 퍼붓는 가운데 벼락도 많이 쳤다. 낙뢰로 건물이 부서지고 축사가 시커멓게 타기도 했다. 통신선로가 끊기고 컴퓨터 작동이 멈추는가 하면 생산시설의 피해도 잇따랐다.이럴 때 여의도에 있는 엘이씨코리아의 전화통은 불이 난다. 벼락의 피해를 호소하며 낙뢰방지시스템을 설치해 달라는 전화가 쇄도한다. 허사장과 직원들은 유령잡는 고스트버스터즈처럼 벼락을 잡기 위해 출동한다.이들은 지형을 정밀 관측하고 낙뢰방지시스템의 커버지역을 분석한뒤 알맞은 시스템을 제시한다. 기존의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대부분의 낙뢰관련장비는 피뢰침원리를 이용한 것. 낙뢰를 특정장소로 유도한뒤 접지를 통해 사라지게 만든다. 하지만 엘이씨코리아의 장비는 아예 낙뢰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장치. 정전기분산장치를 통해 공중으로 전하를 방출하면 이들 전하가 구름에접근, 구름속의 전하를 중화시킨다. 구름과 대지 사이의 전압이 일정수준 이하로 낮아지면 벼락 자체가 치지 않는다는 것을 원리로한다. 따라서 마치 큰 날개로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특정지역을 벼락의 피해로부터 지킨다.◆ 시스템 국산화로 수입 대체대한송유관공사 한국전력 한국통신 청주방송등 10곳이 이미 이 시스템을 채택했다. 대한항공 동두천 미공군기지 한국전력의 용인~분당간 송전선로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영종도신공항 오크밸리 등도이 시스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상담을 하고 있다.허사장이 이 사업에 나선 것은 로이 카펜터즈씨(76)와의 만남이계기가 됐다. 카펜터즈씨는 미항공우주국에서 근무하던 수석엔지니어. 아폴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었다. 그는 휴스턴지역에 특히 벼락이 많이 떨어지자 번개에 대한 연구에 골몰했고 71년에 독립, 엘이씨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벼락잡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다. 그후 특허 20여건을 출원하며 전세계 1만9천여곳에 첨단낙뢰방지장치를 설치하는 등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잡았다.허사장이 카펜터즈씨를 만난 것은 80년대 중반. 남농선생의 손자뻘인 허사장은 조선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숭실대 정보과학대학원을졸업한뒤 현대건설에 몸담고 있었다. 현대자동차의 캐나다 부르몽공장 건설현장에서 전기설계팀장으로 일하던 그는 공장을 낙뢰로부터 보호하는 방법을 다각도로 찾고 있었다. 그러던 끝에 엘이씨를알게 됐고 카펜터즈씨를 초청, 부르몽공장에 접지시설을 설치했다.몇번의 미팅과 토론을 갖는 동안 카펜터즈씨는 허사장을 매우 좋게봤다. 세계 여러나라 사람을 상대해봤는데 당신처럼 번개에 대해금방 이해하고 전기시스템에 대해 조예가 깊은 사람은 본적이 없다고 칭찬했다.허사장은 92년 독립, 여의도에 프로콘시스템이라는 자동주차시스템업체를 창업했다. 홀리데이인호텔과 신촌 현대백화점에 자동주차시스템을 납품하면서 기반을 착실히 다져나갔다. 동시에 공장자동화분야에도 진출했다.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아남산업 광주반도체공장, 한보철강 당진공장 등에 자동화설비를 납품했고 삼성전자로부터는 4년연속 우수협력사로 뽑히기도 했다. 그러는동안 이들 설비에 대한 낙뢰방지시스템설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뜻하지 않은낙뢰피해로 공장이 서는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문득 카펜터즈씨가 생각났다. 전화연락을 받은 그는 반갑다며 당장미국을 방문하라고 했다. 콜로라도 볼드시에 있는 엘이씨 본사를찾은 허사장은 한국내 독점수입계약을 맺었다. 또 방미기간중 카펜터즈씨의 집에 머물면서 환대를 받았다. 떠나는날 그는 허사장을아들처럼 대하고 싶다고 했고 허사장 역시 아버지처럼 모시겠다고답했다. 이후 카펜터즈씨가 한국을 방문할 때도 몇차례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을 정도다.94년부터 수입 시공에 나선 허사장은 작년말 IMF사태가 닥치면서외국제품을 단순히 수입 설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를 국산화하기로 마음 먹었다. 올 4월 다시 미국을 방문한뒤 합작법인설립계약을 맺었고 7월말 엘이씨코리아를 출범시켰다. 자본금 1억원을 반반씩 출자했다. 합작법인 설립 때도 카펜터즈씨는 파격적으로배려해줬다. 일절 로열티를 받지 않기로 했으며 매년 1백만달러 이상을 외국에 팔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또 계약을 맺은 즉시 각종 설계도면과 기술 및 노하우를 모두 넘겨줬으며 한국측 기술자 3명을미국으로 초빙, 기술지도까지 해줬다. 지난 4년동안 장비와 설치에대한 노하우를 갖고 있던 허사장으로서는 단숨에 기술을 완벽하게파악할 수 있었고 곧바로 부천공장에서 핵심제품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생산제품은 낙뢰방지시스템(DAS)과 접지시스템, 이상전압보호장치 등.◆ 낙뢰피해시 5년간 무상 보완도엘이씨코리아는 이들 제품으로 연간 30억원의 수입대체와 1백50만달러의 수출을 계획하고 있다. 수출지역은 미국을 비롯, 동남아 중남미를 겨냥하고 있다. 국산품은 가격을 수입품의 절반으로 낮출수 있어 얼마든지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엘이씨코리아는 시스템설치 때 미국 엘이씨에서 나온 감독관과 공동으로 최종검사를 하며 완벽하게 시공이 됐다고 판단되면 무낙뢰보증서를 발급해준다. 이 보증서는 낙뢰피해에 대한 보증서는 아니다. 다만 낙뢰피해시 5년간 무상으로 낙뢰방지시스템을 다시 보완해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엘이씨가 전세계에 설치한 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 시스템은 99.97%라는 놀라울 정도의 신뢰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요.』1만곳중 3곳만이 낙뢰피해를 봤다는게 허사장의 설명이다. 이에따라 외국에선 항공사 정유공장 통신사 방송국 송유관 전력업체에서일반기업체에 이르기까지 이 제품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고 자랑한다. 『낙뢰는 설비와 인명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옵니다. 한국은최근들어 낙뢰 빈도수가 더욱 많아지고 있어 낙뢰방지장치에 대한관심이 더욱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허사장은 과학적인 기법과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낙뢰피해를 막는전도사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02)786-8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