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한일 = 마지막 선택국민+장은 = 쫓겨서하나+보람 = 비상 날개짓공식적인 수사의 한켠엔 으레 후일담이 있다. 사안이 중대할 경우엔 공식적인 수사보다 뒷얘기가 더 극적이고 진실할 때도 많다.은행 합병에서도 이런 맛을 느낄 수 있다. 합병 관계자들은 아직까지는 깊숙한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합병작업이 완성되지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금씩 흘러나오는 뒷얘기를 종합해보면 은행합병 과정은 그야말로 한편의 드라마다.상업+한일, 하나+보람, 국민+장기신용 합병의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자발합병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상업+한일은 마지막 선택이었고, 국민+장기신용은 쫓겨서 한 합병이었다. 하나+보람은 비상을 위한 날개짓이었다고나 할까.은행경영평가가 막오른 지난 6월초였다. 장철훈 조흥은행장, 배찬병상업은행장, 이관우 한일은행장은 시내 모호텔에서 은밀한 회동을가졌다. 장행장이 주선한 자리였다. 당연히 장행장이 말을 먼저 꺼냈다. 『셋이 합치면 어떨까요. 정부도 지원을 많이 해준다고 하는데….』 그러나 나머지 두행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만 오갈 뿐,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 자리를 뜨면서 이행장이 대학동창이자 친구인 배행장에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냐?』 그러자 배행장은 『우리는 홀로서기 할거야』라며 간단히 제의를 일축했다.이틀후 동남+경남 합병설이 불거져 나왔다. 그 시점을 고비로 은행구조조정은 급류를 타는 듯했다. 며칠후 이행장은 노조위원장을행장실로 불렀다. 향후 진로에 관해 의견교환을 하기 위해서였다.『독자생존 아니면 합병으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상업은행장을다시 만나보시죠. (노조끼리의)일차 접촉은 했습니다.』6월말 이행장과 배행장은 다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저녁식사가 끝난후 이행장이 먼저 말을 던졌다.『외자유치는 잘 돼가냐? 합병할 생각있으면 빨리 하는게 좋을거야. 그래야 정부도 지원을 많이 해줄테고.』『생각해보자구.』 배행장의 태도는 여전히 심드렁했다.그러나 합병작업은 7월들어 급진전되기 시작했다. 은행퇴출 발표후두은행은 외통수로 몰렸다. 정부는 두 은행이 추진중인 외자유치에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7월초순 배행장이 합병은행명을 어떻게할 것인지 등의 얘기를 끄집어내면서 슬슬 마음을 열었다. 합병은행명은 어렵지않게 상업한일은행으로 결정됐다. 대등합병 원칙에도합의를 봤다. 중순께 합병한다는 원칙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그러나 최대 고비는 등기문제였다. 상업은행 등기는 살리고 한일은행 것은 죽인다는 것. 한일은행 직원들의 정서가 문제였다. 등기문제로 왈가왈부하는 사이 언론에선 합병비율까지 거론했다. 한일은행 직원들의 감정이 극을 향해 치달았다. 이행장은 다시 노조위원장과 부장들을 불러모았다. 『상업이나 우리나 부실은행으로 거론되면 결국 유동성위기에까지 이를 것이다. 합병하면 어차피 뉴뱅크가 된다. 과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결국 비오는 7월31일 오전10시 배행장과 이행장은 은행회관 2층에서 합병을 선언하며 뜨거운 포옹을 했다.◆ ‘외도’ 끝에 결합한 케이스도9월11일 합병을 발표한 국민+장기신용은 한달도 안돼 합병을 후닥닥 해치운 케이스다. 물론 송달호 국민은행장과 오세종 장기신용은행장은 합병발표 석달전에 접촉을 갖고 합병문제를 논의하기는 했었다. 눈맞춤을 해본 것이다. 이에앞서 국민은행은 3년여전에 만든내부보고서에서도 장기신용은행밖에는 짝이 없다고 못박기도 했다.그러면서도 두 은행은 짝을 놔두고 내내 곁눈질을 했다. 외자유치를 진행한다든가, 타은행과의 합병을 모색한다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국민은행은 합병발표 한달전까지도 주택은행과의 합병문제를심도있게 거론했었다. 심지어 종합기획부 담당임원끼리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그러나 8월중순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작년말기준 BIS비율이 8%를 웃도는 은행들에 대한 경영진단이 진행되면서 정부는 장기신용은행에 대놓고 조흥은행과 합치라고 종용했다. 표현도 그럴듯했다.『도와주고 싶습니다.』조흥은행도 『장기은행이면 괜찮다』고 덤벼들었다.장기신용은행은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흥은행과 합치는것은 죽어도 싫었다. 합병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장기신용은행의 판단으론 그랬다.장기은행이 코너로 몰리는 사이 국민은행도 언론과 정부로부터 적잖은 압력을 받았다. 언론은 합병을 거론할 때마다 국민+외환 구도를 상정했다. 국민은행으로선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오래전에 포기한 카드였기 때문이었다.주변상황이 점점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한 송달호 행장은 종기부담당 라인을 불러모았다. 『합병을 하지 않는게 최선이지만 어차피 구조조정에 동참해야 한다면 직원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해야 한다. 장기은행과 합병하자.』 그때가 8월중순이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기억했다. 이같은 방침은 오행장에게도 전달됐다.이후 오행장은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과 연원영 구조개혁기획단 총괄반장을 찾아갔다. 『조흥은행은 절대 안되겠습니다. 국민은행과합병을 추진중입니다.』금감위는 당황했다. 조흥+장기가 되는 줄 알았는데, 합병밑그림이어긋나는 순간이었다. 연단장이 송행장에게 전화했다. 『장기은행하고 진짜 하는 거예요?』◆ 하나 + 보람은 수없는 고비 넘겨나중에 알려진 얘기지만 연단장은 오행장이 언급한 「국민은행과의합병」 얘기를 제대로 귀담아듣지 않았던 것 같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두 은행장도 합병발표식에서 『정부와 커뮤니케이션에 다소문제가 있었지만 무사히 해결됐습니다.』 두 은행 직원들은 그 때서야 깊은 한숨을 쉴수 있었다.하나+보람은 앞의 두 경우와 비교하면 싱거운 측면이 있다. 9월8일 합병을 발표하기까지 4개월여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행상황이 언론을 타고 생중계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합병에 골인하기까지 두 은행은 세번의 큰 고비를 넘겨야했다.첫번째는 7월 초순. 두 은행은 당초부터 합병파트너는 상대방밖에없다는걸 익히 알고 있었다. 합병의 당위성에 대해선 전혀 이견이없었다. 지난 5월 보람은행의 제의로 시작된 합병논의는 제법 구체적으로 진행됐다. 비록 두 은행간 감정싸움이 불거지긴 했지만 큰변수는 아니었다.그러나 7월 초순 상반기 가결산결과가 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됐다.당기순손실로 잠정 집계된 결산결과를 본 보람은 결산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합병하는게 유리하다고 판단, 하나은행에 집중 구애를했다.그러나 결산지침이 변경되면서 보람은행의 상반기실적은 하룻만에이익으로 돌아섰다. 그러자 다시 대등합병을 요구했으며 하나은행에선 「협상 결렬선언」 분위기가 강했다.두번째 고비는 7월하순.조흥은행이 보람은행에 합병을 전격 제의하면서부터다. 조흥은행은보람은행의 대주주인 LG그룹에 합병을 제의했으며 이에 다른 대주주도 동의, 하나 보람은행간 협상은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그러나 이 고비는 8월중순 경영진단결과가 나오면서 마무리됐다.국제기준 순자산가치가 마이너스인 보람이 다시 전격적으로 합병에나섰으며 두 행장은 합병조건을 타결했다.마지막 고비는 합병조건 타결이후. 보람은행은 직원설득엔 성공했으나 대주주 설득이 여의치 않았다. 특히 3대 대주주중 두산그룹은합병에 선뜻 동의했지만 LG와 코오롱은 여전히 반대의사였다. 이와중에서 하나은행 내부에선 「재검토」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와 경영진 등의 전방위 압박으로 결국 대주주도 합병에 동의했다. 우량+부실의 새로운 합병모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