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고등학교 시절 잊지 못한 선생님 가운데 지금은 미국에 이민가서 변호사 생활을 하고 계시는 영어 선생님이 한분 계셨다.무척이나 엄격했던 선생님은 그 당시 영어 교과서에 실려 있던 O.Henry의 「After 20 years」란 단편소설을 암기해 오도록 숙제를내주었고, 「모든 학생들이 암기할 때까지 테스트가 지속되어 모두들 혼났던 기억이 새롭다. 학창시절 절친했던 친구 두명이 20년후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지는데, 그후 20년이란 세월이 흘러을씨년스런 겨울 어느 날 약속 장소에 한 사람은 쫓기는 지명수배자가 되어, 한 사람은 이를 쫓는 경찰이 되어 만난다는 단편소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지금은 우리 경제가 IMF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소비가늘고 투자가 늘어나야 매년 쏟아져 나오는 신규 노동력도 흡수해서고용도 늘고 성장도 이루어질텐데, 수개월째 감소되고 있는 민간소비와 설비 투자 지표, 그리고 늘어가는 실업자 추이를 보면 답답하기만하다. 과연 언제쯤 성장 잠재력을 회복하여 선순환의 성장궤도에 다시 진입할 수 있을까?과거 60∼70년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입안하고 수행하면서2000년 이후 한집에 승용차가 두대씩 있는 선진화된 우리의 모습을국민들에 제시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때가 있었다. 1∼2년후의우리 경제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이 시점이지만,지금부터 20년후 우리의 후세대가 한국 경제의 주역이 되는 2018년도의 한국 경제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도 지금의 난국을 헤쳐가는데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우리가 지금부터 쌓아가야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첫째, 자기 책임원칙의 확립이다. 자기의 경제활동 결과 생긴 손실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다면, 자기 행위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게 되는도덕적 해이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60∼70년대 개발연대를 거치면서 모든 경제 주체들이 정부에 의존하는데 익숙해져 왔으며, 「잘된 것은 내덕이고 잘못된 것은 정부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많았다. 앞으로는 각 경제 주체에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자신의 선택과 행위가 낳은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기 책임의 원칙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둘째는 정부 역할의 재정립이다.시장경제 체제 확립을 위하여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인 개입과 권위적인 지시, 불필요한 규제는 철폐되어야 한다. 관치금융의관행이나 경쟁을 제한하는 각종 인·허가 등 진입 규제를 없애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실현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오히려 강화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시장의형성이 미흡하고 시장 실패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장질서의 형성을 촉진하고, 보호하는 기능이 보완되어야 한다. 즉 「정부가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해서는 안되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여,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부분에대해서는 보다 더 철저하게 질서 유지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할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선택하고 자기책임하에 투자한 투자 원금회수를 정부가 보장하라는 요구에 정부가 더 이상 손을 들어주는우를 또다시 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세번째 사항은 우리 세대가 할 일과 미래 세대가 할 일을 구분해서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수도권 개발을 촉진하고, 공업단지를 개발하는등 한번 개발 계획을 시작하면 원상 복귀가 안되는 정책개발에는 신중을 기해야 하겠다. 우리가 현시점에서 미래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20년후 또는 30년후 세대들이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몫은그들의 몫으로 남겨놓아야 한다. 한번 개발되고 파손된 우리의 환경은 원상 회복이 불가능한 것이며 다만 우리가 할 일은 우리 후세대들이 자유롭고 번영된 삶을 영위하도록 우리 사회의 민주적인 제도와 관행을 정착시키고, 시장질서 창달을 위한 경쟁 질서를 확립토록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이 세가지 기본원칙을 지켜 가면서 당면한 구조개혁을 착실히 추진해 나간다면 20년후 우리는 선진국의 일원이 되어 오늘의 아픔을뒤돌아 보면서 회상하는 여유를 갖게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