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금융구조조정이 마무리되고 외환보유고도 어느정도 확충이됐지만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해외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하다. 작년말 외환위기가 발생했을 때와 비교해볼 때 외부적인 여건은 전혀 호전되지 않고있다.국가신용등급은 여전히 「투자부적격」이요, 국제금융기구들은 아직도 우리나라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 않은채 외채상환압력을 넣고있다. 심지어 무디스같은 신용평가기관들은 최근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내리겠다는 의사까지 비쳐 국내의 금융구조조정의지에 완전히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정부는 그동안 국제통화기금(IMF)등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경제 각분야에 걸쳐 가시적인 개혁작업을 많이 진행시켜 왔다. 위기극복프로그램을 짜는데 있어서도 국내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그들의의견을 대부분 반영했다. 수입이 큰 폭으로 줄어든 탓이긴 하지만올해 3백억달러 이상의 경상수지 흑자도 예상되고 있고, 금융부문에는 무려 64조원의 재정자금을 투입키로 결정한 상태다.이에 정부는 10월초 미국 위싱턴에서 열린 G-7(서방 선진7개국)재무장관회담과 IMF 및 IBRD연차총회를 앞두고 가슴을 은근히 설렌것이 사실이었다. 주요 선진국들 앞에서 그간의 개혁성과를 정당하게 평가받아 실추된 국가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생각했다.초반에 정부의 이같은 기대는 채워지는 듯 했다.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하는데성공하고 있다. 한국에는 고통스런 조치를 취할 의지를 갖고있는지도자가 있다』고 추켜세웠는가 하면 미셸 캉드쉬 IMF총재는 『한국에 제2의 외환위기는 절대 없다.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인다』고단언하기도 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측의 소망은 차례로 무산돼 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귀국길에 오른 이규성 재경부장관은 기내에서 시종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여전히 우리나라를 불신하는 IMF의 태도= IMF의 스탠리 피셔 부총재는 워싱턴시내 모호텔에서 이규성 장관을 만나 『올해말에 만기도래하는 차입금 27억5천만달러(이자포함 31억달러)를 갚아줄 것』을 요구했다. 당초 상환기일을 6개월 정도 연장하기 위해 양측실무자들간에도 협의가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장관은상당히 당황했다고 한다. IMF가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는 자체 자금사정이 빠듯하다는 것이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IMF가 「사정」을 봐주지않고 자금회수에 나설 경우 다른 채권자들도 가만 있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이어 12일에는 미국의회와 클린턴 행정부가 『한국이 IMF로부터 받은 구제금융을 국내산업의 자금난 해소를 위해 지원할 경우 한국에대한 추가지원금 제공을 반대하겠다』는 내용의 IMF개혁안을 들고나왔다. 수많은 IMF자금 수혜국들중 유독 우리나라만 문제를 삼은것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결합재무제표의 작성과 상호지급보증의해소 등 각종 개혁조치에도 불구, 미국은 여전히 우리나라 재벌에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며 씁쓸해했다.◆야박하기만 한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사는 지난 13일 『한국의 은행시스템은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 「기술적인 파산상태」에 있어 앞으로 수개월안에 신용등급을 더 낮출 수도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미 지난 5월에 「투자부적격」 등급내에서도 한차례 등급을 하향조정했던 무디스가 추가로 하향조정의사를 비친 것이다. 무디스는 그 이유로 은행들의 부실자산이 정리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유동성 부족과 수익성하락 현상이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국내에서는 이와 관련, 「섭섭함」을 뛰어넘어 「분노」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있다. 무디스가 정부의 과감한 재정투입과 민간부문의자발적인 은행합병, 노사합의에 따른 인력감축 노력 등을 전혀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일본처럼 경제력이 큰 나라의 신용등급은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중요한 고비때마다 「재」를 뿌린다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무디스는 여전히요지부동이다. 한국측이 강변하는 그 정도의 개혁으로는 자신들의평가잣대를 수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국내금리보다 높은 외평채금리= 당초 연 10%미만으로 발행됐던외국환평형채권 금리는 좀처럼 예전 수준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10월들어 5년만기 외평채금리는 연11∼13%대의 고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 회사채금리와 콜금리가 한자릿수로 떨어진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한다. 이같은 양상은 한국물에대한 해외투자자의 불안감이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는데서 비롯되고 있다.◆국제사회는 보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년간기업 및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이 어느정도 진행된 상황에서 나타난해외쪽의 이같은 평가는 분명 당혹스런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따지고보면 그 원인은 모두 우리쪽에서 제공됐다고 보는게 지배적인 의견이다.대우경제연구소의 한상춘 국제경제팀장은 『해외금융전문가들은 한국이 일시적으로 외환위기를 벗어났을 뿐, 전반적인 위기상황은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한다』며 『신속한 구조조정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우선 금융부문에서는 정부가 산출한 1백18조원의 부실채권규모를믿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는 전체 부실채권의 규모를 2백조원 안팎으로 예측하는 민간경제연구소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무디스도 금융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규모를 무려 1백77조원으로 추정하고 있다.이런 상태에서 64조원이라는 돈은 은행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데별 도움이 안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무디스가 국내은행을「기술적 파산상태」라고 진단한 배경은 「한국은행들은 재정투입으로 당장의 파산은 면할지 몰라도 종국적으로는 파산할 수밖에 없는 재무건전성을 가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빅딜을비롯한 기업구조조정의 부진도 은행의 신용도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무디스는 『은행산업의 재무구조개선은 그들의 재무제표를 깨끗하게 하는 것은 물론, 재벌들의 구조개혁과도 연관돼있다』고 지적했다. 재벌들에 대한 막대한 여신이 은행권의 잠재적인 부실채권으로남아있는 가운데 기업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않고 있는 점을꼬집은 것이다.이는 또 외채 상환압력과도 맞물려있다. 해외투자자들은 한국기업들이 언제 쓰러질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다. 현재 현대 삼성 대우등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금리는 연16%수준을 웃돌고 있다. 이에따라 상당수의 대기업들은 그동안 꾸어다쓴 외채에 대해 국제금융기관들로부터 강한 상환압력을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지난8월말현재 국내 민간기업들의 공식적인 총외채규모는 3백80억달러.◆ 안팎 빚독촉 … 한국제2 위기 도래 우려그러나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공식적인 외채까지 포함하면 5백억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문제는 안팎에서 빚독촉에 시달리는 이들 기업이 높은 금융비용으로 부실화될 경우 한국에 제2의 위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 올들어 매달30억달러이상의 경상수지 흑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 외환보유고가그에 비례해 늘지않는 것은 이들 기업이 외채상환을 위해 서울외환시장에서 부지런히 달러를 사들이고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이에따라 IMF가 외채상환압력을 넣는 것도 일종의 「파워테스트」로 볼 수 있다. 만기도래 원리금을 선선히 갚을 수있는지를 지켜보면서 추후 한국에 대한 추가구제금융의 제공여부와 상환일정 스케쥴을 정하겠다는 것이다.미국 행정부가 한국기업에 대한 정부의 자금지원을 미리 차단하고나선 대목도 비슷한 유형의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제금융을통해 되살아난 한국의 부실기업이 국제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꼴」은 도저히 못봐주겠다는 뜻에 다름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