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단절, 약보합세 지속」. 지금 아파트시장을 지배하는 분위기에 대한 일선 중개업자들의 단적인 표현이다. 지역이나 규모를 망라한 공통된 의견이다. 7~8월에 조정기를 거치며 하락세를 멈추고잠시 반짝했던 아파트가격이 9월이후에 다시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거래도 물건이 많이 빠진데다 일부 급매물을 제외하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경부동산정보라인 주엽점 고현진사장은 『매수층이 얇아져 간간이 나오는 급매물만이 거래가 될 뿐 전세·매매거래 모두 끊기다시피 한 상태』라고 말했다. 『시세는 지난 8월에형성된 가격이 그대로 유지되는 약보합세를 보이고 있으며 급매물의 경우 시세보다 3천만원 정도 싼 매물들』이라고 고사장은 덧붙인다. 양천구 목동 유원부동산의 윤상기사장은 『8월이후에 거래가단절되다시피 해 점포주에게 임대료인하를 요청할 정도』라고 설명했다.분당·수지지역 등도 약세를 면치못하고 있다. 『분당 시범단지내일부평형의 경우 지난 7∼8월에 비해 1천만원 정도 떨어진 시세를형성하고 있으며 급매물도 간간이 나오지만 거래가 없다』는 것이서현동 창인공인중개사무소 김주식사장의 말이다. 용인시 수지에있는 신한부동산컨설팅의 안창수씨도 『거래가 거의 죽었다』고 말했다.전세거래도 지역이나 규모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극히 미미한매기만 이어지고 있다. 이미 6∼7월께 싼값에 매물로 내놓아 계약을 마치고 자녀들의 방학기간을 이용해 이사를 마쳤기 때문이라는것이 부동산업자들의 분석이다. 그래서 가을철 전세대란도 없었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방학기간이 이사철이 된 것이다. 요즘 간간이이어지는 전세수요의 대부분은 갓 결혼해 새로운 살림집이 필요한신규수요자들 뿐이다. 『신혼부부들이 전셋집을 구하는 수요가 간간이 이어지고 있으며 대부분 국민주택규모의 소형아파트를 찾는다』는 것이 고양시 일산구 마두동 월드공인중개사무소 이종현사장의말이다. 용인시 수지읍 신한부동산컨설팅의 안창수씨도 『전세만신혼부부를 중심으로 미미하게 거래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했다아파트시장이 이처럼 약세를 면하지 못하고 앞으로의 전망도 낙관적이지 못한 분위기에 대해 부동산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가져왔던부동산 특히 아파트에 대한 시각이나 기대가치가 변한 것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일단 사두면 가격상승이 반드시 이뤄지고 매매차익이나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나 IMF로 유례없는 폭락을 겪으면서 아파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많이 조정됐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경제1실의 김성식연구원은 『부동산특히 아파트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했다』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투자세력 급감, 실수요자 대세 장악아파트시장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를 꼽는다면 투자세력의 급감이다. 전세를 끼고서라도 아파트를 매입해두었다가 시간이 지나면가격상승으로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얘기다.『요즘 아파트매입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주를 생각하는실수요자들』이라는게 목동 유원공인중개사 윤상기 사장의 말이다.설혹 아파트를 투자대상으로 보는 사람이라도 관망세를 보이고 있으며 단기간에 매매차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 즉 실제 거주하면서 가격상승을 기대하는 입장에서 매물을 사두려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아파트에 대한 투자세력의 관망과 실수요자들로의 손바뀜이 일어나면서 부동산가에는 실제매매거래가 중단되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다. 집주인이 돈이 필요해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지만 올 봄에 전세를 든 세입자가 나가길 거부해 실제매매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매수희망자는 아파트를 구입해 바로 입주할 생각인데 반해올해 입주한 세입자가 이전을 거부해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 매물이10건중 3건정도』라는 것이 서초구 반포동 주홍공인중개사무소 이진구씨의 말이다. 『그래서 명도문제가 확실한 매물이외에는 거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이씨의 덧붙인 말이다.●분양권매매 잠잠, 신규분양만 약진유독 분양아파트시장만은 독야청청, 「나홀로 잘 나간다」다. 8월에 안양에서 분양에 나선 LG건설, 9월에 공릉동과 신도림동에서 각각 분양에 나선 (주)우방과 대림산업, 수원 권선지구 대우아파트등이 모두 완전분양되는 강세를 보였다. 최근에는 파주 교하지구에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한 월드건설이 평균 경쟁률 2.3대 1로 분양을마쳤으며 현재 예비순위자의 신청을 받고 있다. 신규분양아파트의호조에 대해 월드건설 주택사업부의 신종현주임은 『중도금대출 분양권전매 등의 영향으로 신규분양아파트를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났다』는 말로 설명했다.실제거주를 목적으로 일단 분양신청을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분양권을 팔면 된다는 생각으로 신청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월드건설의 모델하우스에서 분양권매매를 상담했던 럭키공인중개사무소의 장성원씨는 『일정기간이 지난 후 분양권매매를 통해프리미엄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신규분양시장이 이처럼 열기를 띠는 것과 달리 한때 관심이 쏠렸던분양권매매는 거래가 한산하다. 『매수희망자들이 매도희망자들보다 수적으로 많지만 분양권을 팔려는 사람들과 지역 가격 등에서조건이 맞지 않는데다, 주택시장의 침체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판단 때문』이라는 것이 (주)21세기컨설팅 분양권전매팀 이종호과장의 설명이다. 이 회사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매물은 약 4백여건인데 매수희망자들의 대부분이 수지·강남·행당동·신당동 등의분양권을 선호하는데 반해 이들 지역의 매물은 그리 많지 않고 의정부·시흥 등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지역의 매물이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매수자가 제시하는 가격도 시세보다 3천∼4천만원 정도 낮은 가격을 원해 실제거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과장의설명이다.●대형 인기 시들, 중소형 강세아파트수요층의 선호도가 대형에서 벗어나 중소형으로 이동했다.반포 주홍공인중개사무소의 이진구씨는 『매매나 전세거래를 원하는 대부분 수요자들이 대형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하락폭이적었던 국민주택규모를 찾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규모를 줄이려는 수요자들도 중소형 선호를 부추기고 있다. 목동 유원부동산의윤상기사장은 『대형아파트를 팔고 중소형으로 옮기고 남은 돈을이용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이처럼 중소형 아파트가 강세를 띠면서 중소형 아파트의 평당가격이 대형아파트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마저 생겼다. 일산 주엽동의33평 아파트가 평당 5백50만원선인데 반해 49평형은 5백만원선에가격이 형성돼 있다. 앞으로도 국민주택규모에 대한 선호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경부동산정보라인 주엽점의 고사장은 『대형아파트의 경우 구조조정 실업증가 등에 따라하락세가 나타날 수 있지만 국민주택규모의 아파트는 낙폭이 거의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파트가격 전망●부양책, 약발없다지난 9월 30일 김대중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밝히자 일부 부동산전문가들은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4조4천9백억원을 주택경기부양에 풀었으며 앞으로도 4조원 정도를추가로 주택경기부양에 투자하겠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일부에서 경기부양책이 잠재수요층의 심리를 자극해 주택시장을 흔들 소지가 크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그러나 대부분의 부동산전문가들은 이러한 내용에 대해 시큰둥한반응을 보였다. 우선 시기적으로 실기 했다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책연구센터 김갑성수석연구원은 『지난 8월에 이미 경기부양책이 나오고 9월에 시행돼 10월 추석전에 어느정도 경기가 살아났어야 했는데 늦었다』고 지적했다.게다가 경기부양책이 경영난에 처한 건설업체를 살리기 위한 대책으로 결국 주택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있다. 경기가 살아나도 주택수요자들의 구매력이 살아나지 않으면결국 주택시장은 지금의 약세기조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연구위원은 『소득의 안정적 흐름이 기대돼야 구매력이살아나고 중장기적으로 주택시장의 활기를 기대할 수 있지만 소득흐름이 여전히 불안하다』고 설명했다.●당분간 가격상승은 없다앞으로 주택가격을 부추길 수 있는 요인으로 경기회복, 금리하락,내년으로 예정된 주택저당채권의 도입 등을 꼽을 수 있다. 내년도경제성장률을 보는 각 연구기관들의 전망은 마이너스 2%에서 플러스 2%성장까지 다양하다. 금리의 경우 최근에 3년만기 회사채수익률이 한자리수로 진입하고, 대출금리도 14~15%대로 떨어졌다. 주택저당채권은 집값의 20~30%만을 갖고 있으면 내집마련이 가능하도록지원해주는 주택금융제도로 내년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건교부에서추진중이다. 반면에 주택가격을 억제하는 요인으로는 경기침체의지속과 구조조정의 가속화, 실업증가, 실질소득의 감소에 따른 구매력감소, 주택시장을 보는 수요자들의 불안감 등을 들 수 있다.이런 자극요인과 억제요인을 감안했을 때 내년 하반기까지 약보합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LG경제연구원의 김성식연구위원은 『대출금리가 5~6%대의 초저금리로 떨어지지 않는 한금리하락의 영향은 없으며, 주택저당채권도 도입후 실제 기능을 하기까지 1년 정도가 소요되는데다 초저금리대출이 불가능해 효과는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동산이 금리수준으로 오를 가능성은거의 없다는 것이다. 김연구위원은 또 『최고 2%의 경제성장률도경기악화속도가 둔화되는 정도여서 2000년에 가서야 경기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기존 아파트시장은 내년까지약보합세가 이어지고 내년 하반기쯤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내년 말을 저점으로 해 그 이후에는 아주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김연구위원의 예상이다.일선 중개업소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분당 창인공인중개사무소의김사장은 『금융기관에서 14%의 좋은 조건으로 대출을 해주겠다고해도 부동산시장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며 매매를 꺼린다』며 『이런 심리적 요인으로 결국 내년 하반기까지 약보합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경부동산정보라인 주엽점의 고사장도 『금리가떨어지고 주식시장이 약세임에도 주택시장이 약보합세를 보이는 것은 결국 경기회복에 대해 비관적인데다 가계소득의 감소에 따른 심리적인 위축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이와는 반대로 내년 상반기 또는 하반기의 주택가격회복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갑성연구원은 『내년 상반기에 부양책이 실행되고 실물경기가 바닥을 치면 덩달아 주택경기가살아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대우증권 리서치센터 건설팀장인 조창희연구위원은 「금리하락기의 부동산재테크」라는 글에서『내년 하반기부터 금융완화와 규제완화의 효과가 나타나 주택가격이 강보합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