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아시아자동차가 현대자동차에 낙찰됨으로써 1년여를 끌어오던 기아사태는 일단락됐다. 아직 채권단의 동의절차를 남겨놓고 있기는 하지만 채권단이 이번 입찰결과를 뒤집을 만한 대안이 없어현대의 기아인수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애물단지나 다름없었던 기아차가 현대자동차에 둥지를 틂으로써 국내 자동차산업은 한고비를 넘기고 지각변동 또한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선 다자간 경쟁구도에서 현대,대우의 2원체제로 자동차산업이 재편돼 새로운 도약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삼성자동차가 입찰결과가 발표된 뒤 독자경영을 내세우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가면 정리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이와 함께 현대자동차 입장에서 볼때 선진 자동차메이커와 경쟁할수 있는 「규모의 경제」체제를 갖추게 됐다. 현대는 기아인수로생산능력이 2백60여만대로 늘어났다. 21C 세계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산능력이 최소한 2백만대정도는 돼야 하는데 현대는 기아낙찰을 통해 일단 이 조건을 갖췄다. 양적인 조건만을 놓고볼 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현대자동차가 기아를 낙찰받았다고 해서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볼수는 없다.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인 자동차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현대자동차로서는 기아인수가 새로운도전이고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현대경제연구원 김견연구원)는 시각이 우세하다.현대자동차가 기아낙찰이후 가장 먼저 해결해야할 과제는 단순한두 회사의 물리적 통합이 아닌 화학적 융합이다. 그래야만 통합에따른 시너지효과가 나타날 수 있고 이를 통해 세계적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시너지효과 극대화를 위해 현대자동차는 먼저 플랫폼공용화(표준차대)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현재 현대는 4개 플랫폼에 8개모델, 기아는 4개 플랫폼에 7개모델을 생산하고 있다. 산업연구원 오규창연구원은 『차종이 중복되는 것이 많아 플랫폼은 극단적으로 4~5개정도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될 때 생산원가및 개발비용은 절감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현대 또한 플랫폼 공용작업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견연구원은 『우선 기존 차종의 핵심부품 공용화를 진행한 뒤 플랫폼공용화를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플랫폼 공용화작업은최소한 3-4년이 걸려 원가절감효과는 2000년이후에나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부품협력업체의 정비도 현대가 넘어야 할 과제다. 1차부품협력업체수는 현대가 3백70개, 기아가 2백60여개이다. 현대와 기아에 동시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1백여개 업체를 제외한다고 해도 부품협력업체수는 5백30여개에 달한다.일본 자동차회사들의 경우 1차부품협력업체가 1백50~2백개에 불과하다. 이를 놓고 볼 때 현대는 앞으로 최소한 3백여개업체는 어떤방식으로든 정리, 대형화를 유도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산업연구원 오연구원은 『부품업체의 대형화유도는세계적인 추세』라며 현대, 기아 소속을 따지기 보다는 기술우위중심으로 1차부품 업체를 정리해야 효율성이 생길 것이라고 조언했다.판매망 및 인력구조조정도 현대로서는 골치거리다. 현재 현대의 판매망은 현대자동차 2백59개,현대자동차써비스 3백29개등 6백여개소에 달한다. 여기에 기아의 직영영업소 3백23개소와 딜러영업소 3백13개를 추가할 경우 판매망은 1천3백여개에 달한다. 이들 판매망은대부분 지역이 겹쳐 있어 적어도 30%정도는 폐쇄가 불가피하다.인원감축도 문제거리이다. 현대자동차측은 올해 정리해고를 실시했고 기아 또한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나 당장인원감축은 필요치 않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플랫폼 공용화작업이 진행되면 최소한생산직만 30%정도는 감원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이럴 경우 현대는 또 한차례 노사분규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 기아자동차노조는 강성노조로 노조원들 사이에선 현대낙찰에 따른 피해의식도 만만찮아 인원감축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이같은 내부적인 정비를 추진하는 것과 함께 현대는 외부에도 시각을 돌려야 한다. 세계적 자동차 메이커와의 전략적 제휴가 바로 그것이다. 선진국 자동차회사들은 21세기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통합작업이 활발히 진행중이다.현대는 기아낙찰을 계기로 세계자동차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략적 제휴움직임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 주저할이유가 없다. 산업연구원 오연구원은 『기아를 조속히 정상화시키는 최대관건은 자금조달이며 이는 해외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해결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현재 현대는 기아의 지분을 갖고 있는 미국 포드사와의 제휴를 검토하고 있다.린생산방식도입을 통한 내부 경영혁신도 필요하다. 내부경영혁신작업은 비단 기아자동차 낙찰업체로 결정된 현대만의 문제가 아니고우리 자동차업체가 추진해야 할 과제다.린생산방식은 생산시스템에서 필요없는 모든 낭비요소를 제거해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다. 최소의 비용과 부품을 갖고 최대의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관리파트는 물론 생산파트등 모든 부문에 걸쳐 적용된다. 이 생산방식은 일본 자동차업체가 도입,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고 이어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도입했다.기아경제연구소 박원장이사는 『이미 린생산방식은 미국에 이어 유럽자동차업체가 앞다퉈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며 현대의 기아낙찰이 이런 경영혁신작업을 뒤로 미루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고강조했다. 현대의 기아낙찰을 단순히 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인수했다는 관점에서 보다는 한국자동차산업의 선진화를 이룰 수 있는계기가 될 때 그 의미가 배가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