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에 영웅 난다」는 얘기가 있다. 어려운 때라야 사람 됨됨이와 그릇 크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옛 사람들의 경험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IMF체제는 한국 기업들의 옥석(玉石)을구분하는 훌륭한 계기가 됐다. 수많은 기업들이 과다한 부채를감당하지 못하고 좌초했지만 IMF 한파속에서도 끄떡없이 버티며재계 순위를 착실하게 앞당겨가는 그룹들도 있다. 롯데 동부 동양화학 등이 대표적인 그룹들이다.IMF체제에서 롯데가 돋보이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단 한번도 자금난을 겪지 않았을 정도로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춘 기업이라는 점을 들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를 보면 롯데의 재무구조가 확연해진다.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현재 30대그룹의 평균 부채비율은 5백22.1%. 뉴코아(1천7백85%) 해태(1천5백%)아남(1천4백98%) 한화(1천2백14%)등이 부채비율 1천%를넘는 곳들이다. 5대 그룹의 경우 현대가 5백78.7%, 삼성이3백70.9%, 대우가 4백73.3%, LG가 5백5.7%, SK는 4백66.9%를나타내고 있다. 이에비해 롯데는 2백21.3%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부채비율 2백21.3% 최저수준게다가 롯데 신격호 회장은 지난 1월 『앞으로 순차적으로 3억∼5억달러를 일본에서 들여오겠다』고 약속한바 있다. 신회장은 일본에서 가져온 자금은 다시 회수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경영활동의 실탄인 자금이 다른 기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는 얘기다.롯데는 이처럼 풍부한 실탄을 바탕으로 활발한 영토 확장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 5월 1천4백억원에 그랜드백화점 본점 인수계약을 체결한데 이어 지난 7월에는 뉴코아그룹으로부터 킴스클럽 분당 서현점을 사들였다. 9월엔 광주에 백화점을 열었고 내년엔 일산점도 개점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인천 대구 창원 등 전국 주요상권에 2003년까지 백화점 깃발을 꽂아 유통업계 선두자리를확실하게 굳히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마련해 둔 상태다. 최근소비패턴이 고가와 저가로 양극화되는 현상이 두드러지자 할인점인 마그넷점 개설도 활발하다. 그동안 숙원사업이었던 잠실제2롯데월드도 마침내 허가를 받아 지난 6월부터 본격적인 공사를 벌이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1조원의 자금을 일본에서 들여온다는게 롯데 계획이다.롯데의 공격경영은 IMF체제이후 급증한 기업매물과 공기업 민영화 일정과 맞물리면서 갖가지 소문을 만들어내고 있다. 「롯데는 M&A 루머를 만들어내는 풍차」라는 비유까지 생겨날 정도다.롯데 관계자는 『기업매물만 나왔다 하면 롯데 인수설이 떠도니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러다가 한국은행이나조폐공사까지 사들인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고 넋두리했다.롯데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소문은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그랜드백화점 인수계약을 전격적으로 체결한 뒤 「역시 롯데밖에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담배인삼공사를 사들이기 위해 대책반을 구성, 기획예산위원회와 접촉을 하고 있다」거나 「포항제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루머는 이제 공공연한 얘기다.동서증권 인천 동아시티백화점 해태계열사 등도 롯데의 사냥감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포철은 설립 당시 신회장이 의욕을 가지고깊숙이 개입했던 점이, 담배인삼공사는 롯데가 한때 홍삼전매권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는 점이 작용하면서 M&A설이 그럴듯하게포장되기도 했다. 특히 롯데는 『신회장이 철강업과 금융업에 여전히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는 상황이다.하지만 롯데에도 고민은 있다. 임금삭감 고용불안 등으로 중산층이 몰락하면서 백화점 매출이 덩달아 곤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다. 더욱이 프랑스계 할인업체인 까르푸, 미국의 월마트, 스위스의 아이스크림 업체인 네슬레 등 다국적 외국기업들의 협공도 거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