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태순 가나안 사장(45)은 책가방 업계의 이단자다. 책가방은책을 담아 운반하는 도구. 천으로 만들어 지퍼를 부착하고 어깨끈을 달면 끝이다. 거기에 학생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광고에등장시켜 브랜드를 알리면 금상첨화다. 제품을 만들 땐 가급적저렴한 소재를 채택, 원가를 줄이는게 당연하다. 책가방은 기껏한두해 밖에 더 쓰는가.그럼에도 그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우선 가장 비싼 소재를골라서 쓴다. 예컨대 지퍼를 보자. 가나안에서 만드는 가방은10호 지퍼를 쓴다. 크고 묵직하다. 기존의 가방들이 5호 지퍼를쓰는 것과 비교해 가격이 3배정도 비싼 것. 튼튼해서 망치로 두드려도 망가지지 않을 것 같다.등판은 배기지 않도록 고기능 스펀지를 댔다. 어깨끈은 땀이 배지 않도록 구멍이 숭숭 뚫린 에어메시(Air-Mesh)를 사용했다.오래 매도 편안하도록 S자형으로 디자인했다. 일자형의 기존 가방과는 다르다. 가방의 생명은 어깨끈이라며 인체공학적으로 개발한 것. 양어깨와 팔의 활동이 자유롭고 잘 벗겨지지 않는다.무게를 분산, 성장발육에도 도움을 준다. 중고등학생의 가방무게는 2㎏에서 7㎏에 이른다. 어깨끈 바깥 쪽엔 야광 반사테이프를부착했다. 야간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끈의 양쪽 끝엔 보강대를 대 가방몸체에서 빠지지 않도록 했다.가방 내부를 들여다보면 더욱 놀랍다. 속에 다양한 주머니가 달려있다. 마치 수납공간이 풍부한 장롱속을 연상시킨다. 수첩류를보관할 수 있는 기능 포켓을 비롯, 다용도주머니 열쇠걸이가 있다. 준비물 하나를 찾으려고 뒤죽박죽된 내용물 전체를 꺼낼 필요가 없다. 소지품을 깔끔하고 안전하게 정리해 준다. 게다가 디자인은 25가지나 되며 색상은 80가지나 된다. 매우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염사장이 미친 사람처럼 책가방에 정열을 쏟아 붓는데는 까닭이있다. 그는 전세계에서 책가방을 포함한 각종 가방과 배낭류를가장 많이 수출하는 기업인. 인도네시아에 5개공장과 베트남에2개공장을 갖고 연간 5천5백만달러어치를 수출한다. 물량으로는연간 5백만개에 이른다. 이들 가방은 미국 일본 동남아 유럽 등지로 수출된다. 브랜드는 나이키 아디다스등 유명스포츠 브랜드를 비롯, 노스페이스 EMS 등 전문가용. 이중 노스페이스는 히말라야나 남극 등 오지를 찾는 탐험가들이 가장 애용하는 배낭.염사장은 지난 15년동안 수출에만 매달려 왔다. 그리고 이 분야에서 정상급업체로 인정을 받았다. 정신없이 해외시장 개척에만매달리는 동안 국내시장은 어느새 외국브랜드 천국이 됐다. 중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조차 외국 유명 브랜드를 찾는 등 안마당을 모두 내준 것. 그나마 국내업체들이 만드는 제품은 브랜드면에서 외국제품의 상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그가 내수시장에 참여한 것은 오기가 발동한데 따른 것. 자사 제품이 전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는데 정작 우리 자녀들은 외산브랜드제품을 매고 다녀서야 되겠는가. 도저히 못참겠다며 시장에 뛰어 들었다. 일종의 사명의식 비슷했다.내수시장에 진출키로 작정한뒤 두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최고급제품을 만든다. 둘째 가격은 싸게 책정한다. 고급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가격을 외산브랜드보다 30% 가량 낮게 매길 수 있었던것은 직접 생산 판매하는데 따른 것. 외국브랜드 제품들은 하청생산하는 게 대부분. 반면 가나안은 직접 만들어 납품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특히 한국적 특성에 맞는 제품 생산을 위해 강원도사북에 종업원 2백명 규모의 공장을 마련했다. 탄광지대에 만든것은 석탄산업 위축으로 침체된 이 지역의 고용을 창출할수 있다는 배려도 작용했다. 브랜드는 「아이찜」으로 결정했다. 내가선택했다는 의미.이 제품은 올 1월부터 출시되기 시작했다. 백화점 전문점등을 동원, 시판에 나섰다. 그는 절대 국산품애용 차원에서 사달라고 나서지 않았다. 소비자가 품질과 가격을 충분히 검토한뒤 선택하라는 것. 이를위해 광고를 할때도 단순히 브랜드만 중시한게 아니라 차별화된 내용을 하나씩 소개했다.처음엔 시장을 뚫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금방 제품을 알아봤다. 역시 「소비자는 신」이라는 그의 신념은 틀리지않았다. 이 제품은 출시한뒤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 10월말까지60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연말까진 80억원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1백50억원 내지 2백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있다. 그래봐야 연간 3천억원에 이르는 시장에서 5~7%를 차지하는 것. 중장기적으론 5백억원어치는 팔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있다.◆ 브랜드보다 차별화된 내용 소개『사실 창업이후 언젠가는 내수에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지요. 지난 15년동안은 내수참여를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온 기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시기가 공교롭게 IMF체제와 맞물렸고 순수 토종 브랜드가 쉽게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줬지요.』염사장이 가방과 관련을 맺은 것은 서강대 정외과 졸업후 중소가방업체에 취직하면서부터. 회사가 경영난에 처하면서 사주가 바뀌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그만둔뒤 30대초반인 83년 가방수출업에 뛰어들었다.2명의 동료와 함께 서울 화곡동에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가방을 만들어 수출했다. 하지만 단순한 OEM방식에서탈피,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바이어를 끌어들였다. 바이어의 디자인에 이끌려다니는 방식으론 부가가치를 높일 수 없고 발전전망도 없다고 판단한 것. 중소기업임에도 대졸 여성 디자이너 4명을채용, 디자인을 개발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였다. 도시락가방학생용가방 볼링백 테니스가방 등을 생산했다.아디다스로부터 1백만달러의 주문을 따내던 날 밤엔 교통사고로턱을 여덟바늘 꿰매기도 했다. 며칠동안 밤을 새며 상담을 준비하다보니 함께 밤을 샌 운전기사가 졸음운전끝에 사고를 낸 것.트럭과 정면 충돌했음에도 턱만 다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었다.아디다스와의 계약성사여부는 매우 중요했다. 다른 바이어와의거래를 틀수 있는 계기가 될수 있기 때문. 공장을 청소하고 양질의 샘플을 준비하는등 정성껏 준비한 끝에 마침내 거래를 성사시켰다. 수술을 받은 뒤엔 일주일이상 입원하라는 의사의 엄명을뿌리친채 다음날 다른 바이어와 상담에 나서는등 철저한 프로근성을 발휘했다.90년대들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 잇따라 현지공장을 준공, 생산기지의 글로벌화에 나섰고 세계적인 가방수출업체로 성장한 것이다. 내수판매를 계기로 패션슈즈사업에도 진출했다.『어차피 가방은 누군가는 해야할 사업입니다. 또 이제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제대로된 가방을 매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소비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급성장하고 있습니다.』염사장은 승용차에도 고급차와 소형차가 있듯 가방에도 고급품과중저급품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선별할수 있는 안목이 소비자에게 있는 한 가나안의 앞날은 밝을 것으로 확신한다.(02)569-7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