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강한 기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중의 하나는 최고경영자의 보수적인 경영이다. 국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업으로 꼽히는게 철강과 건설 화학 금융을 주력으로 하는 동부그룹이다.김준기 회장은 『경영에는 마술이 통하지 않는만큼 절대로 서두르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는게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그래서 동부는 허상을 배격하고 실상을 중시한다. 다시 말해 수익성과 안정성을 경영의 중요한 지표로 삼는다. 그 덕분에 지난해말환란 이후 오히려 기업의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동부의 「실속 경영」은 건실한 재무구조에서 잘 나타난다. 97년말 기준 그룹 부채비율이 3백30% 수준으로 낮고 유보율의 경우5백12%로 30대그룹중 가장 높다. 기업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서도 계열사중 퇴출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이 한곳도 없는 이유가여기에 있다.동부는 IMF사태 이전부터 꾸준히 경영혁신과 구조조정을 추진해왔다. 기업체질을 강화할 수 있는 쪽으로 변신을 꾀했다. 산업연관 효과가 높은 계열사들을 통폐합해 업종 전문화를 강화했다.계열사 통폐합을 통한 그룹차원의 구조조정과 별도로 계열사 차원의 경영합리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동부제강의 경우 강관사업 철강설비사업을 잇따라 분사시켰다. 동부한농화학은 경영합리화를 통해 부채비율을 7백19%에서 2백60%수준으로 낮췄다.동부한농화학은 비업무용 토지와 일부 사업부(석고보드)를 매각하고 자산재평가를 실시해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었다.동부건설은 외형 확대위주의 수주전략을 지양하고 미수금발생을줄일 수 있는 도급공사의 비중을 높여 IMF한파를 덜 타고 있다.동부화재 등 금융부문도 4년 연속 흑자경영기조를 이어가는 등괄목할만한 경영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호황이건 불황이건 한마음으로 기업운영경제위기 속에서 동부의 약진을 두고 일부에서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동부는 지난해 수조원의 자금이 투입되는 반도체사업 진출을 선언했었다. 반도체 사업은 김준기 회장이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사업이기도 했다.김회장은 철강 건설 중심의 사업구조만으로 성장하는데 한계가있다고 보고 오래전부터 반도체 사업에 눈독을 들여왔던 것이다.이를 위해 동부전자에서 공장을 짓고 기술인력을 뽑고 있는 시기에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처음에 김회장은 반도체 사업을 강행하려 했다. 그러나 국내 경기상황이 워낙 악화돼 신규사업 진출을 보류키로 최종 방침을 굳혔다. 본인이 그렇게 원했던 사업이지만 사업환경을 고려해 자신의 뜻을 꺾은 셈이다.김회장은 내실경영을 위해 대외적인 활동을 삼가고 되도록 회사경영에 전념코자 한다. 그룹 계열사의 현황과 사업 전체를 꿰뚫고 있어 김회장과 회의할 땐 전문경영인들도 진땀을 흘릴 때가적지 않다. 김회장은 『수익을 많이 내는 기업이 사회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기업』이라고 강조한다. 기업이 수익을 올릴 수 있어야 세금도 내고 고용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실경영을 추진해온 동부는 앞으로 그룹의 위상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다른 그룹들이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몸집을 줄이는데 비해 동부는 현 사업규모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서다. 동부는 대부분의 계열사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흑자를 내지 않으면 기업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문경영인들은 명심하고 있다.보수적인 기업경영이 때론 임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로막을 때도 없지 않다. 김준기 회장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우수 인력을 양성하고 미래형 신기술을 개발하는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김회장은 앞으로 보수적인 경영관을 계속 지켜갈 계획이다. 호황이 오건 불황 때이건 한 마음으로 기업을 꾸려가겠다는 뜻이다.그가 잠시 접어놓은 반도체사업의 꿈을 언제쯤 다시 펼칠지 관심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