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어펀인터내셔널의 직원들은 모두 노란색 배지를 착용하고 있다. 이달초 창업 12주년을 맞아 패용하기 시작한 이 배지는 노란손수건이란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새로운 희망을 상징한다.그 배지엔 「Our Brains, Not Our Bodies」라고 씌어 있다. 머리를 써서 새로운 희망을 개척해 나가자는 의미다.웨어펀인터내셔널의 권기찬 사장(47)이 요즘 희한한 제품 개발에 여념이 없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손톱에 끼는 액세서리가그것. 손톱을 장식하는 액세서리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국내 특허는 물론 세계특허도 출원했다. 제품 생산을 위해 샘플을 제작중이다. 소재는 인동에서 금 백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최고급 명품을 만들기 위해 담당 프로젝트팀과 함께 혼신의힘을 쏟고 있다.이 제품은 내년봄 미국과 프랑스의 국제패션전시회에 출품돼 전세계에 공개된다. 내년중 미국 일본 유럽으로 최소한 3백만달러이상을 수출할 계획이다. 수년내 연간 1천만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액세서리제품으로 육성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성공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한 제품이기 때문. 이미 멋을 부릴 수 있는제품은 나올만큼 나왔다. 각종 패션의류를 비롯해 모자 등 소품류, 반지 목걸이 등 장식품 등. 하지만 손톱 장식만큼은 누구도생산한 적이 없다. 일단 유행의 반열에 들기만 하면 시장은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클레오파트라나 키메라처럼 현란한 장식미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그는 회사 내에 명품의류팀도 만들어 세계시장에 우리 디자인으로 수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는 2000년대에 실현할 생각이다.의류무역을 통해 쌓은 노하우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회사내에는 의류와 디자인 등을 전공한 고급인력이 1백명 이상 근무하고있다. 그가 벌이는 사업의 공통점은 명품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는 그의 기질에서 비롯됐다. 좋은 옷을 입는 즐거움은 기쁨 차원을 넘어 전율을 느낄 정도로 짜릿하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최고의 문화를 향유하는 즐거움인 셈이다.웨어펀인터내셔널은 프랑스의 겐조나 크리스찬 라크르와, 독일의아이그너 등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이중 크리스찬 라크르와는세계적인 패션국가인 프랑스에서도 최고의 오트퀴드르 디자이너로 꼽힐 정도로 유명한 디자이너. 오트퀴드르는 장식성과 예술성이 강한 맞춤복. 기성복으로 평상복 개념이 강한 프레타포르테와는 달리 미적 감각을 최대한 살린 의류다.또 아이그너는 독일 지성의 자존심으로 꼽히는 명품. 가죽제품과의류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지만 이중 핸드백 지갑 벨트 등 가죽제품은 세계 최고로 꼽히고 있다. 겐조는 남성복 여성복 정장과캐주얼을 비롯한 패션 종합브랜드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성복디자이너다.수입의류는 두가지로 대별된다. 중국 등에서 수입되는 싼 제품과유럽 등에서 수입되는 고급제품. 이중 선진국 제품으로 유명백화점에서 고급제품으로 판매되는 제품을 명품의류라고 정의한다면이들 의류 수입업체 가운데 가장 큰 업체중 하나가 웨어펀인터내셔널이다.외환위기이후 의류수입업체중 30%가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이회사는 꾸준히 신장하고 있다. 작년 매출 1백78억원에 올매출은1백85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비결은 소비자 심리를 꿰뚫는 머천다이징에 있다. 머천다이징은 상품을 기획하고 주문하는 활동.의류수입의 핵심분야이기도 하다. 어떤 옷을 얼마나 구매할지가관건이다. 잘못 구매하면 수입품은 재고더미가 된다. 상류층이어떤 옷을 어떤 취향에 따라 골라 입을지 6개월전에 미리 내다보고 사와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다. 이 작업은 브랜드별로3명씩 있는 머천다이저들이 관장한다. 이들은 유행성향을 점검하고 미래를 선도할 패션에 대한 충분한 연구를 거쳐 구매상품을결정한다. 하지만 워낙 중요한 일인만큼 권사장이 이를 총괄한다. 그 자신이 국내 최고참 머천다이저이기 때문.권사장의 이런 능력은 어찌보면 타고난 것이다. 대구 출신인 그는 경북중학교 다닐 때부터 용돈이 생기면 양키시장을 찾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이상한 옷을 골라 입고는 했다. 친구들이 용돈을 떡볶이 등 군것질에 쓸 때 그는 패션의 첨단을 걷는 옷을사입었던 것. 이런 취미는 대학(한국외국어대)을 거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지속됐다. 종합상사와 건설업체에서 근무한 그는유럽을 출장다니면서 또다른 문화적인 충격을 경험했다. 그리고이런 첨단 패션을 누군가는 국내에 전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입의류도 머천다이징으로 성공마침내 의류수입자유화가 단행되자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3명으로송파구에서 웨어펀인터내셔널을 창업했다. 뉴월드호텔과 압구정동에 첫 매장을 내고 이탈리아 옷을 수입 판매했다. 당시 그는무려 20여개 이탈리아 업체와 독점 수입계약을 맺고 상품을 들여왔다. 당시 권사장은 50% 이상의 비싼 관세를 물면서 세금 한푼물지 않는 보따리 무역업체와의 경쟁을 했다. 이후 매장을 롯데현대 갤러리아 신세계 그랜드 대구백화점 등으로 확장하면서 모두 39개로 늘렸다.초창기 수입의류업체가 대부분 문을 닫았는데도 꾸준히 사업을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문화된 머천다이징과 차별화된 마케팅외에 고급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 신뢰를 얻었기 때문.수입가격의 3배 이상은 받지 않는 정책을 최대한 고수해왔다. 명품으로 꼽힐 수 있는 제품만 선별 수입해왔다.이를 위해 직원들을 철저히 교육시키고 있다. 프로로 만들기 위해 과감한 교육투자를 실시하고 있는 것. 예컨대 도서구입비와자기계발비를 지원하고 경험과 지식이 풍부한 인사를 초청, 정기적으로 사내강연회를 갖고 있다. 권사장 스스로도 연세대 외대서강대 및 한국과학기술원의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고 내년에는 연세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는 등 끊임없이 학문연마에 나서고 있다.하지만 사업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사치풍조 배격이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될 때마다 세무조사와 세관의 조사가있었다. 심지어 90년대초 모백화점에 입점해 있을 때 주부들의반대시위에 굴복한 백화점측이 하루아침에 수입품 매장을 철시하는 바람에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수입상품을 백안시하는 사회풍조 때문에 가까운 친구이외는 사업에 대한 얘기를 하기가 쉽지않다.『우리나라는 무역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수 없습니다. 수출을많이 하려면 어느 정도는 수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통상보복을 당하지 않지요. 이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인데도 국내에선 아직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권사장은 이런 보이지 않는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보란듯이 멋진 제품을 수출할 생각이다. 액세서리가 그중의 하나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졌을 때도 결코 양로원과 복지재단에 대한 지원비를 줄이지 않은 권사장은 자신의 인생의 최종목표는 번돈으로 사회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02)3446-3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