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그룹 「빅딜」의 핵심인 현대와 LG간 반도체 협상이 사실상 타결됐다. 좀처럼 가닥이 보이지 않던 반도체 「빅딜」은 구본무 LG회장이 6일 오후 전격적으로 청와대를 방문해 양보 의사를 밝히면서 급진전됐다. 이어 7일에는 전경련 중재로 양측 구조조정본부장들이 만나 이달말까지 계약서를 체결키로 합의까지 했다. 현대가LG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 등이 갖고 있는 LG반도체 지분을 전량 넘겨받기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사운을 건 양사간 경영권 대결에서현대가 「완승」을 거둔 셈이다.LG는 이번 건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누가 봐도 그렇다. 상대방이삼성이 아니라 현대라는 것만 바뀌었을 뿐 결국 1년전 「3각 빅딜」 루머 그대로 LG는 반도체를 「내줬기」 때문이다. 짧게 보더라도 5개월여를 끌어온 현대와의 대결에서 패퇴한 것이다. 사업상의손해도 적지 않다. 우선 주력산업인 전자가 반도체를 잃음으로써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된 점을 들수 있다. 또 장기적으로 전자와 정보통신 계열사들이 필요로 하는 비메모리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줄 기반을 잃게 됐다는 것도 큰 손실이다. 금성 라디오로 시작해 반세기 가까이 쌓아온 전자그룹으로서의 체면이 손상된건 빼고서도 그렇다.◆ LG, 정부 ‘선물’·보상 빅딜 ‘이익’그렇다고 LG가 1백% 손해만 본 것 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게 재계의 입방아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앞으로의 협상에서 LG가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적잖다는 분석이다. 배경은 구본무 회장의 「결단」을 정부가 높이 사주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구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구회장의 결단을 높이 평가하고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며 『LG그룹이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국가경제 발전을 선도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막힌 곳을 뚫어준 LG에 정부가 「선물」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정부는 LG가 PCS 진출에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던 「데이콤지분 5% 이하 유지」라는 옵션을 풀어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LG는 지난 96년8월 『데이콤 경영권을 확보키 위해 어떠한 행위를해서도 안되고 소유지분을 1년내에 5%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는조건 아래 PCS사업권을 따냈다. LG는 사업권을 확보한 뒤 당시10%에 육박하던 데이콤 지분을 4.87%로 낮추었다. 현재 LG가 갖고 있는 데이콤 지분은 공식적으로는 4.87%에 불과하나 관계인 지분 등을 포함한 실제 지분은 30%가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PCS사업 허가시의 조건만 변경하면 LG는 쉽게 데이콤의 경영권을장악할 수 있다. LG가 반도체를 잃은 대신 정보통신분야를 크게 강화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현대와 「보상 빅딜」이 이뤄질 경우도 LG가 얻을 수 있는건 적지않다. 현대가 반도체 주식인수를 위한 프리미엄을 협상하는 과정에서 일부 「비주력」 계열사를 내줄 경우다. 재계에서는 현대가 온세통신 지분이나 현대정유 등을 교환 대상으로 내놓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이것도 저것도 아닐 경우 반도체 주식값만 잘 받아도 손해는 아닐것이란 분석도 적잖다. 남아 있는 계열사들의 재무구조개선에 큰도움이 될수 있다는 계산이다. 실제로 LG반도체의 대주주인 LG전자나 LG정보통신은 주식값만 제대로 받아도 당장 재무구조가 크게 좋아진다. 계열사들이 제품 주기가 바뀔 때마다 자금수요가 많은 반도체산업에 더 이상 「지원 투자」를 하지 않게 된 것도 장기적으론 득이다. 반도체 포기는 뒤집어보면 「살아남은 자」들에겐 호재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LG가 득이 있다면 현대의 경우도 반드시 승자라고만은 할수 없다는게 재계의 중론이다. 당장 인수를 위한 자금 수요가 늘고 계열사들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나치게 「선전」해 「현대가 다 갖는다」는 여론이 확산되는 것도 신경쓰이는 일이다. 정부가 은근히 「보상 빅딜」을 압박할 경우 LG 못지않은 손해를 볼수도 있다. 특히 당초 통합법인의 지분 30%는 가질 것으로알았던 LG가 「완전 포기」를 선언하면서 문제는 복잡해졌다. 배수의 진을 친 상대와 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것 자체가 경영상에 큰부담이 될수도 있다는 얘기다.★ DJ 개혁의지 '확고' 추가 빅딜 빨라질 듯국민의 정부가 갓 출범한 지난해 3월 청와대 본관 대통령 집무실.이헌재 금감위원장은 금감위내에 설치키로한 구조개혁기획단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보고서를 들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으러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내용을 세심하게 읽어본 뒤 펜을 꺼내 들어 2000년말로 기재되어 있던 기획단의 활동 연한을 1999년으로 고쳐버렸다.금감위는 경제개혁에 필요한 기간을 3년으로 잡았으나 김대통령은그 기간을 2년으로 줄여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김대통령이 경제개혁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하며 이를 속도감있게 추진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한 것이었다.최근 LG그룹의 구본무 회장이 반도체 빅딜에 반발해 오다 백기를든 것도 김대통령의 이같은 의지를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따라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간의 빅딜을 비롯한 기업구조조정작업이 더욱 신속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김대통령은 지난 5일 대한상의 신년인사회에서 『작년 한해 우리가힘들여 이룩한 개혁의 틀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해야한다』며 개혁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와함께 기업에 대해 『당장은힘들고 어렵더라도 경쟁력없는 부분은 과감히 정리하고 국제적인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며 압박을 가했다. 이는 구조개혁에 미온적인 재벌기업들에 대한 메시지이며 반도체 빅딜에 저항하고 있는 LG에는 최후통첩으로 느낄만한 대목이었다.김대통령은 올해중으로 개혁을 마무리짓고 내년부터는 선진국을 향해 발돋움하고야 말겠다는 절박감에서 이같은 메시지를 지속적으로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빅딜은 김대통령과 박태준 자민련총재가정부 출범초기부터 재벌개혁의 화두로 삼았다는 점에서 전방위의압박이 가해질 수밖에 없었던 사안이다. 금감위가 채권은행으로 하여금 여신회수조치를 취해 숨통을 막아간 것도 대통령의 이같은 의지를 반영한 것임에 분명하다. 또 반도체 빅딜에 예외를 인정해버리면 다른 분야의 빅딜에도 영향을 줄수 있기 때문에 강공을 구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면도 있다.그러나 빅딜 거부사태에 대비해 상당한 자금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진 LG가 10여일만에 「항복선언」을 함에따라 현실적으로 정부의경제개혁정책에 반기를 들 재벌이 없어져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이로인해 노조 등의 반발로 지지부진하던 다른 산업의 빅딜에 한층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함께 유화 철강 PCS 등추가적인 빅딜도 이뤄질 것이라는 한발 앞선 추측도 나오고 있다. 김수섭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