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깨끗한 나라」 한번 써보세요. 먼지 안나고 아주 좋습니다.』『새로 나온 기저귀 보솜이는 얇고 통풍도 잘됩니다.』일산에 있는 할인매장 킴스클럽. 중년의 신사가 화장지와 기저귀를열심히 팔고 있다. 나이로 보나 외모로 보나 일반 판매원 같지는않다. 그런데도 땀을 닦아가며 단 한개의 제품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애쓰고 있다.대한펄프의 사장 최병민씨(47). 그는 주말이 되면 할인매장에 나타난다. 킴스클럽 이마트 하나로마트 등.할인매장 판매원으로 나서는데는 두가지 뜻이 있다. 자사제품을 취급하는 직원들의 사기를 올려 주자는 것과 직접 소비자와 부딪치며반응과 불만사항을 듣자는 것.제품 평가에 관한한 소비자는 신의 경지에 가까울 정도로 예리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 반응을 파악, 생산과 품질관리에 즉각반영한다. 소비자 조사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모든 업무는이로부터 시작된다.매주 월요일 아침 대부분의 회사가 월요회의를 하게 마련이다. 지난주를 점검하고 새로운 한 주를 설계하기 위해 임원과 본부장급이참석하는게 통례다. 하지만 대한펄프의 월요일 아침회의는 다르다.사장 주재로 오전 8시부터 열리는 이 회의에는 20명이 참석하는데전부 매장에 근무하는 여직원들.◆ 깨끗한 나라·보솜이, 매출신장 한몫이들로부터 한주동안 수집한 소비자 정보를 일일이 듣고 메모한다. 회의가 끝난뒤 본부장들에게 개선사항을 지시한다. 외환위기이후대한펄프가 타사에 비해 먼저 소규모 포장제품을 출시, 인기를 끈것도 이 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불황으로 소비자들이 10개 단위의 화장지 포장제품보다는 소포장 제품을 선호한다는점에 착안해 3개씩 포장한 제품을 출시, 히트를 친 것. 뿐만 아니라 매장에 제품을 배달하는 시간을 정오에서 오전 11시 이전으로조정한 것도 소비자 구매시간을 고려한 착상.소비자 중심의 경영전략은 대한펄프가 세계적인 거인과의 싸움에서입지를 넓혀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대한펄프의 주력제품은 화장지 기저귀 생리대 등 위생용품과 백판지. 이중 위생용품은 킴벌리와 P&G라는 다국적 기업과 국내시장에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킴벌리와 P&G는 연간 매출이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세계 정상급 업체들. 고래와 새우의 싸움이다. 이들 양사가 진출한 나라치고 내셔널브랜드 업체가 기반을 유지하는사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대한펄프는 토종브랜드로 입지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대한펄프의 브랜드는 전부 국산브랜드다. 화장지의 「깨끗한 나라」를 비롯, 기저귀의 「보솜이」 생리대의 「매직스」 백판지의 「화이트 호올스」 등.이 회사가 입지를 넓혀가는데는 정확한 소비자 반응 조사와 이를토대로한 고품질의 제품 개발에 따른 것. 예컨대 화장지에서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가공하는 일이라든지 적당한 수준의 강도와 엠보싱(올록볼록하게 가공한 것)을 내도록 한 것 등이 그 예다. 시장조사를 위해 자체 직원을 동원할 뿐 아니라 전문기관에 의뢰하기도한다.대한펄프는 지난해 극심한 불황에서도 22%의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위생용품분야에서 21% 백판지사업에서 23% 신장했다.이같은 매출 신장은 시장조사 이외에 △수출국 다변화 △차별화된마케팅 △통합브랜드 전략 △독자캐릭터 개발 △틈새시장 공략에힘입은 것.주로 백판지에 해당되는 수출은 중국 홍콩 일본 등 기존 시장 뿐아니라 이집트 남아공 중남미 등으로 판매지역을 넓히면서 지난해7천만달러의 성과를 일궈냈다. 특히 최대시장인 중국의 적극적인공략을 위해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이달중에는 광조우에도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최사장은 마케팅의 차별화도 시도했다. 생리대의 경우 「감추고 싶은, 여성만의 은밀한 제품」이라는 개념에서 탈피,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하고 싶은 제품으로 이미지를 바꿨다.◆ 모든 제품 통합브랜드전략 시도통합브랜드 전략은 매출 신장에 가장 효자노릇을 했다. 두루마리화장지에 우리말 상표인 깨끗한 나라를 도입, 성공하자 미용티슈와키친타올의 브랜드도 이로 통합했다. 깨끗한 나라라는 브랜드가 출시되자 마케팅전문가들은 어떻게 중견기업 규모의 업체가 이렇게참신한 브랜드를 출시할 수 있느냐며 놀라움을 나타냈고 그들의 예상대로 브랜드는 떴다.순수 국내 개발 캐릭터인 아기다람쥐 보솜이를 부착한 것도 소비자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계기가 됐다. 작년초까지만 해도 대한펄프는디즈니캐릭터를 사용해 왔으나 이를 토종 캐릭터로 교체했다.최사장은 2세 경영인.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후 미국 남가주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획득한 그는 창업주인 부친 최화식씨밑에서 경영수업을 쌓았다. 최화식씨는 일본에서 대학과 대학원을마친뒤 귀국, 한국제지를 공동 설립하고 대한펄프를 창업한 한국제지산업의 개척자. 그는 기숙사에 널려 있는 종업원의 옷을 개어줄 정도로 청결과 단정함을 경영의 첫번째로 삼았다. 깨끗하고 단정하지 않으면 제품이 제대로 나올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이런 정신은 최사장에게 그대로 전수됐다. 그 역시 청주공장을 호텔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목표로 청결하게 관리하고 있다. 깨끗한나라라는 브랜드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창업 33주년을 맞은 대한펄프는 올해를 「도약 원년」으로 설정했다.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지난 2년동안 2천4억원을 투자해온 것들이 이제 마무리됐기 때문.1천8백억원이 투입된 백판지 3호기가 이달중 가동에 들어가는 것을비롯, 기저귀 생리대 화장지분야의 새 라인은 이미 굉음을 울리며제품을 토해내고 있다. 이들 설비는 모두 세계 정상급 성능을 갖고있는 첨단 제품들. 앞선 설비로부터 강력한 경쟁력이 뿜어져 나올것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올매출은 백판지 2천5백억원, 위생용품 2천억원 등 4천5백억원으로잡고 있다. 여기엔 수출 1억달러가 포함돼 있다.『대규모 투자중에 외환위기가 닥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나니 오히려 기업경영에 더욱 자신이 생깁니다.』최사장은 올해부터 경영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의정부 공장이 매각되면 부채비율도 3백%에서 2백%로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정된 재무구조와 공격적인 국내외시장 개척을통해 세계적인 거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게 그의 포부다.(02)2270-9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