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건축업체들의 사정은 말이 아니다. 우리 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그 한파가 가장 먼저 건축업계에 미친 탓에 모두들 살아남기위해 아우성이다.IMF한파가 본격화된 지난해에는 내로라하는 회사들이 줄줄이 부도를 내고 좌초했고 이 와중에서 견실한 회사마저 자금난에 몰리 는「부도 도미노공포」가 일년내내 이어졌다. 이런 최악의 상황은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건축업계 불황의 늪은 사실 어느 업종보다 깊고도 넓다. 사업확장은 커녕 부도내지 않고 살아만 남으면 천만다행인게 지금 건축업계의 실상이다.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견실한 성장을 하는 회사는 있기 마련이다. 중소건축업체인 서초건설이 그런 회사가운데 하나다. 이 회사는 모두들 죽겠다고 난리이지만 차별화된 경영으로 불황의 늪을 잘헤쳐나가고 있다.경기가 저점으로 곤두박질친 지난해에 별탈없이 공사를 진행, 2백여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1백여억원이 늘어난3백여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대전시에 짓고있는 1천여세대의 아파트가 성공리에 분양이 마무리돼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등 올매출목표달성은 무난하다. 서초건설이 이처럼 불황의 늪을 잘 헤쳐나가고 있는데는 이 회사 김성대사장(55)의 「청개구리 경영」이있었기에 가능했다.서초건설이 채택하고 있는 분양방식은 「선시공 후분양」이다. 다른 회사들이 분양계약자들로부터 계약금을 받아 땅을 사고, 중도금과 잔금을 받아 공사대금을 치르는 「선분양 후시공」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나 서초건설은 거꾸로 했다.계약자 돈을 끌어다 단독주택 및 아파트를 짓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 공사가 중단되면 일방적으로 서민들만 피해를 볼수 있어창업이후 지금까지 「선시공 후분양」방식을 고집하고 있다.사실 「선시공 후분양」방식은 자금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서초건설은 자금력이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욕심내지 않고 소규모로 집을 지어 분양한 뒤 다시 이 돈을 밑천삼아 조금 더 규모를 늘려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철투철미하게 자기 돈만으로건축사업을 한 셈이다. 이 회사 김사장은 『다른 회사들처럼 「선분양 후시공」으로 집을 지어 팔았으면 회사규모는 엄청나게 커졌겠지만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88년 부동산 붐타고 기반마련서초건설의 또다른 특징은 철투철미하게 25.7평이하 국민주택만을짓는다는 것이다. 80년대후반들어 아파트건축평수 규제가 풀리면서40평이상 대형아파트와 고급단독주택건축붐이 일어도 김사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우리나라 경제수준을 놓고 볼때 대형평수보다는 소형평수가 분수에 맞는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원칙은 김사장자신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김사장은 주택사업하면서 돈도 벌만큼은 벌었지만 서울시 방배동 38평짜리 단독주택에서 30여년째 살고 있다.김사장이 소형평수의 집과 아파트만을 고집하게 된데는 주택사업에뛰어들기전 일본에 갔을 때 받은 충격도 크게 작용했다. 김사장은70년대중반 일본에 가 모 참의원 집을 방문했는데 그는 뜻밖에도19평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던 것. 김사장은 『우리나라의 경우국회의원이라면 대부분 호화스러운 집에서 사는데 반해 일본 참의원은 그렇지 않은 걸보고 깜짝 놀랐다』며 일본이 선진국이 된데는이런 국민성도 무시못할 요인이라고 말했다.이런 차별화된 전략을 갖고 서초건설 김사장이 집장사에 나선 것은78년. 경기도 이천군청(당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그녀는 건축사업도 나름대로 괜찮을 것같아 사표를 던지고 거친 건설판에 뛰어들었다.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지적관련 업무를 담당, 건축분야에대해 어느 정도 기초지식을 갖고 있었던데다 당시 부동산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여 자신은 있었다.첫 사업은 경기도 부천시에서 시작했다. 퇴직금과 몇몇 친구로부터돈을 빌려 1억5천여만원의 자본금을 마련한 김사장은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일대에 총 5백세대의 단독주택을 지어 분양에 들어갔다.물론 평수는 25.7평이하 국민주택이었고 분양방식 또한 「선시공후분양」이었다. 5백여 채를 한꺼번에 지어 분양하지 않았다. 자본금이 허락하는 범위내에서 집을 지은 뒤 이를 분양하고 이 돈을 밑천삼아 기존 주택단지주변에 다시 땅을 사 집을 짓는 방식으로 5년여동안 5백여채를 지었다.당시 분양가격은 1천3백여만원. 서민들이 집을 사기 위해서는 주택은행 대출금 3백여만원을 빼고 자기돈이 1천여만원이 있어야됐다.당시 서민들에겐 1천여만원은 거금으로 단독주택분양은 처음에 고전했다. 그러나 중동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이 목돈을 들고 귀국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집마련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 붐을 타고서초건설의 단독주택분양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여기서 힘을 얻은서초건설은 84년 아파트건축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경기도 부천시심곡동에 80세대 규모의 5층짜리 아파트를 지어 사업영역을 확장한것이다.사업영역확장과 함께 운도 따랐다. 88년 서울올림픽개최를 전후해부동산경기가 살아나면서 부천시등 경기도 일대에 욕심내지 않고소규모로 지은 단독주택과 아파트는 짓자마자 분양이 착착 이뤄졌다. 이렇게 해서 서초건설이 지금까지 지어 분양한 단독주택 및 아파트는 3천여 가구에 달한다. 지난해말 현재 자본금은 50억원으로늘어났다. 초창기 「집장사」수준에서 어엿한 중견주택전문건설업체로 성장한 것이다.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안전경영으로 중견주택전문업체로 성장한 서초건설은 지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창업이후 고집해온 「선시공 후분양」방식이 타의에 의해 꺾였기 때문이다. 중소건설업체들은 주택건설사업협회를 만들어 상호 연대보증을 서 공사를진행해왔다. 그러나 IMF사태가 터진이후 「선분양 후시공」방식으로 공사를 해온 회원사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현재 서초건설은 이들 회원사의 건설현장을 상당부분 떠안고 있다.서초건설 김사장은 비록 타의에 의해 「선시공 후분양」원칙은 깨졌지만 이렇게 해서 떠앉은 서너군데의 건설현장을 자신의 현장이라고 생각, 차질없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민들의 내집 마련꿈을 두번에 걸쳐 울려서는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김사장은 『건설업연대보증제도로 현재 견실한 회사마저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정부는 부도난 회사가 견실한 회사를 잡아먹는 악순환이 일어나지 않도록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