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창립 25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감회가 새로우실텐데요.우선 린나이를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고객·직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첫 직장이었던 천우사에서 수출팀장으로 근무하다가 일본출장중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창업해 가스기기를 생산한게 벌써 25년이 됐습니다. 이는 단순히 린나이의 25년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주방문화를 부뚜막에서 입식으로 전환시키는&&데 일조하겠다는 생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앞으로도 주거생활의 편의제고와 주거환경의 개선을 염두에 둔 선진가스기기를 개발해 고객감동경영을 계속 추구할 생각입니다.▶ 창업후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때는 언제였습니까.아무래도 창업초기가 어려웠죠. 특히 대연각화재가 났을 때에는 가스라는 말만 나와도 질겁을 했으니까요. 그러나 다른 어느 때보다어려웠던 시기는 지난해였습니다. 부도를 내고 화의신청까지 할 생각이었어요. 이제껏 이뤄온게 한순간에 날아간다는 생각마저 들었지요.▶ 이선으로 물러나셨다가 다시 경영일선에 복귀하신 것도 그런 어려움 때문이었습니까.그렇습니다. 당시 IMF로 주요 거래선이던 건설사들이 부도로 넘어져 매출이 30%나 줄어들고, 금융기관 대출금의 금리압박이 심해지면서 회사가 한순간에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지난해 3월에 다시 일선에 복귀했습니다.▶ 경영복귀후 그런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가장 먼저 전국 2백30개 대리점과 60개 협력업체를 모두 돌아다니며 대리점과 직원들에게 프로정신과 고객감동경영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앉아서 팔던 시대는 끝났으니 뛰면서 수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또 품질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가질 것과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영업력도 강화했습니다. 모든비용을 줄였지만 영업부문의 비용은 깎지 않았으며 잉여생산직원들을 영업직원화했습니다. 아울러 IMF로 기름값이 인상된 점을 감안해 가정용 가스보일러에 영업의 초점을 두었습니다.▶ 금융기관의 대출금리가 치솟으면서 나타난 자금압박은 어떻게 해결하셨습니까.일본 린나이쪽에 어려운 사정을 알리고 협의를 했습니다. 의외로일본에서 지원을 결정하고 지급보증을 해줘 외자 6백억원을 아주좋은 조건으로 들여올 수 있었으며 그게 자금유통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외자유치와 관련해 일본투자자들이 요구한 사항은 없었습니까.한국 51%, 일본 49%로 돼있는 회사자본금의 지분조정에 대한 제안이 있었지만 이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나 이외에)대안이 있다면 언제든지 물러나겠다, 따라오려면 도와주고 아니면 말라」고 했습니다. 대안이 없는 일본으로서도 더 이상의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구조조정도 이뤄졌습니까.지금도 그 점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10% 정도의 인원을 줄였습니다. 하지만 대리점이나 A/S대행점 개설 등으로생활대책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어쨌든 직원을 그만두게 한 일은지금도 가장 마음 아픈 일입니다.▶ 직원과 대리점에 고객감동경영을 강조하셨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구하고 계십니까.주로 판매일선인 대리점을 교육시킵니다. 단순·피동적인 서비스가아니라 「비포(Before) 서비스」를 강조합니다. 남이 안하는 것을할 때 고객이 감동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보일러설치후 미리전화해 제대로 가동하는지 알아보거나 A/S후 전화로 보일러의 작동을 체크하는 해피콜제도 등 입니다. 아울러 컴퓨터로 전자우편이들어오면 이를 처리하고 다시 보고하도록 합니다. 이를 위해 대리점주의 부인들을 대상으로 전산교육을 시키기도 했으며 올해에는각 대리점과 본사간의 익스트라넷을 가동, 각종 다양한 정보를 실기간에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반응은 어땠습니까.일단 대리점에서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제품이 인정을 받는 상황에서 해보니까 된다는 것이죠. 일단 한 지역을 선정해 직접 견본을 들고 찾아가 설명한 후 보일러사용지역으로 직접 소비자들을 견학시키는 것이죠. 소비자들로부터도 제품과 서비스가 좋다, 서비스에서 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등 아주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습니다.▶ 구체적인 성과는 어떻게 나타났습니까.매출액이 97년대비 3억원이 늘어났으며 흑자경영을 기록했습니다.특히 전체매출액의 60%를 차지하는 가정용 보일러의 경우 6년 연속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며 97년보다 매출액이 15%나 늘고 시장점유율도 30%에서 40%로 높아져 재정흑자를 얻는 성과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런 실적을 토대로 올해에는 매출액을 2천6백억원으로 늘려잡았으며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각종 사회활동도 활발하신 것으로 압니다. 특히 르완다난민을 돕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천막생활도 마다 하지 않으신 것으로 알려져있는데.크리스천으로 기아대책기구 회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르완다난민을돕겠다고 하면서 덜렁 의료팀 10명만 파견해놓고 국내에 있자니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르완다난민을 도우러 직접 자이레로 날아가천막에서 생활했지요. 당시 자이레도 어려운 나라였는데 르완다난민들과 자신들의 부족한 음식이라도 함께 나눠먹는 모습을 보고 큰감명을 받았습니다.▶ 정리경영을 경영이념으로 삼는다고 알려지셨는데 설명좀 해주시죠.한마디로 한국적인 경영을 해보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미국식경영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사원들이 형제·가족처럼 지내는한국적인 경영이 정리(情理)경영입니다. 이를 위해 「최대한 용서한다」 「최대한 보상하고 지원한다」는 등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지요.▶ 앞으로 린나이코리아의 방향이나 비전은 어떻게 잡고 계신지요.가스기기전문업체로 계속 나아가겠지만 환경산업쪽으로의 진출도준비중입니다. 균을 이용해 음식 등 가정용 생활쓰레기를 처리하는것으로 냄새문제만 어느 정도 해결되면 바로 제품화할 생각입니다.비전이라면 가정이라는 공간에 최상의 가사환경, 최고의 주거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가정주부들에게 편리하고 사랑받는 가스기구를 제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후기역시 그는 노련한 사업가였다. IMF한파로 회사가 부도직전에 몰리자 경영에 복귀, 승부수를 띠워 1년만에 회사를 다시 살린 점이 그렇다. 그가 승부처를 「현장」으로 잡고, 대리점의 영업력을 대폭강화한 것이나 주력상품을 가스보일러로 과감히 전환한 것이며 일본 합작선으로부터 긴급 수혈자금을 이끌어 낸 것들이 그것을 말해준다.40여년전 수출1호 무역회사였던 천우사의 수출팀장이었던 그의 관록에서 나온 승부수였을 것이다. 주위의 권유도 있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는 취지로 국회의원(13대)도 해봤지만 역시 정치는그의 길이 아니었던 것 같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의 역할은사업가이자 신앙인으로의 삶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정리·변성수 기자 사진·황선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