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유치 성공ㆍ중국공장 흑자행진 등 '승승장구' ... 고부가제품 개발 박차

김영수 케드콤 회장(59)은 상복이 좀 있는 편이다. 동탑산업훈장에 이어 재작년에는 기업인 최고 영예랄수 있는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작년엔 5천만불 수출탑도 탔다. 하지만 무엇보다IBM으로부터 받은 상을 잊지 못한다.지금부터 10년전인 89년 2월. 컴퓨터의 거인 IBM은 케드콤에 특별상을 수여했다. IBM퀄리티어워드. 부품공급업체중 품질수준이높은 업체에 주는 것이다.5년동안 납품한 호스트 컴퓨터용 전기케이블 어셈블리중 단 한개의 불량품도 없었다며 감사의 표시로이 상을 준 것. 제로디펙트(불량률제로). 이는 어찌보면 획기적인 신제품 개발보다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단 한순간의 방심에도 불량품이 나오기 때문. 품질을 잘 관리하는 업체도 1백만개중의 몇개는 문제의 제품을 쏟아내게 마련.그런데 대기업도 아닌,일개 중소기업이 그것도 품질검사가 까다롭기로 이름난 IBM으로부터 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얼마나 꼼꼼히 품질을 관리하는지 보여주는 예다. 케드콤은 일반인들에겐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업체다. 생산품이 전자와 통신관련 부품이기 때문이다. 케이블과 세트톱박스 사무기기 방송용기기 등이주 생산품.이 회사는 중소 전자업체면서 몇가지 주목할만한 기록을 세우고있다. 성공적인 외자유치와 중국공장 가동이 그중 하나다. 작년11월 케드콤은 유럽시장에서 8백만달러의 전환사채를 발행했다.한국의 신인도가 회복되기 전인데도 금방 팔렸다. 표면금리는 불과 3%. 주가가 급등하면서 전환사채를 산 외국투자가들은 전부주식으로 전환했다. 케드콤으로서는 만기에 자금을 상환할 필요가 없어졌다. 재무구조가 더욱 우량해진 것은 물론이다. 유치된자금은 고스란히 은행에 예치돼 있다. 또 하나는 중국 톈진공장의 성공적 가동. 국내기업이 중국에 투자한 공장중 상당수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다. 제품을 제때 생산하지 못하거나 종업원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 제품의 품질이 일정 수준에 오르지 않아고심하는 업체도 많다.그럼에도 케드콤이 93년중국에 설립한 영한전자는 연속 흑자를기록중이다. 지난해 3천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는등 외형도 급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4천만달러를 목표로 잡고 있다. 중국공장의성공적인 가동은 합작이 아닌1백% 단독투자여서 한국적 경영을접목시킬 수 있었던데다 입지선정도 좋았기 때문. 톈진 부근에는국내 전자업체들의 진출이 많아 판로가 넓다. 중국공장은 케드콤의 주요 생산기지.아날로그방식의 위성방송수신기와 전동타자기 트랜스포머 등이대부분 이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플라스틱 사출기도 26대나 갖고있어 컴퓨터 TV VTR등의 케이스를 대량으로 찍어낸다. 중국에 공장을 건설한 것은 시화공장 건설이 무산된데 따른 것. 당초 시화에 1백억원을 투자해 공장을 지으려했으나 노사분규 등 여건이좋지 않아 포기하고 중국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운이 좋게도 이같은 전환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대신 기존 생산기지인 반월공장은 연구개발과 고수익제품을 생산하는데 활용한다. 예컨대 위성방송용 디지털 세트톱박스가 한 예다. 이 제품은 무궁화위성을통한 방송이 시작될 경우 사용될 예정이다. 케드콤은 외환위기로오히려 덕을 본 업체중 하나. 생산제품의 95%를 수출하는데 원화가치하락으로 환차익을 본 것. 작년 매출은 7천5백만달러에 달했고 올해는 1억달러를 목표로 잡고 있다.김영수 회장이 케드콤(당시 이름은 한국전장)을 창업한 것은76년. 경북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그의 꿈은 원래 대학교수였다. 대구대에서 시간강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뒤 전임강사 자리에 도전했으나 실패한게 인생의 행로를 바뀌게 만들었다.중소기업에 취직했으나 이내 부도가 나자 아예 기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서울 당인리 발전소 부근에서 종업원 20명으로 창업했다. 생산제품은 자동차및 전자제품용 배선. 겨우 꾸려가던 공장이 79년 화재로 전소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정부로부터 장기저리자금을 융자받아 공장을 재건축하고 수출에 전력하면서 어려움을 넘길 수 있었다.어차피 전자부품은 내수규모가 적어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찌감치 수출에 전념한 것. 기업활동을 통해 번 돈은 과감하게 투자했다. 이미 80년대 중반에대형컴퓨터와 50대의 단말기를 사서 생산 관리 구매를 컴퓨터로관리했다. 격에 맞지 않게 컴퓨터 도입에 왜 그리 많은 돈을 쏟아붓느냐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또 안산과 과천등 세군데에 연구소를 개설했다. 종업원 2백명중 20%에 달하는 40명을 연구소에 배치하고 각종 신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품질관리와 원가절감에 신경을 쏟았다. 6대주 36개국에 수출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춘것도 이같은 노력에 힘입은 것.고객중에는 휴렛패커드 소니 유니시스 모토롤라 ITT 톰슨 등 굴지의 컴퓨터 및 전자업체들이 망라돼 있다. 전자조합이사장도 맡고 있는 김회장은 업계 공동으로 평양에 진출해 전자부품 임가공사업도 벌이고 있다. 대동강변에 임가공단지를 만들어 이곳에서부품을 생산하고 있다. 국내 노래방에서 사용되는 마이크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중소기업의 북한진출이 대부분시작단계에 있는데 비해 전자업체들의 북한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있는 것은 발빠르게 대응한데 따른 것이다. 97년 중소전자업체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측이 김회장에게 리무진과 방이 3개 달린 호텔 숙소를 제공할 정도로 귀빈대접을 했다. 이는 북한이 전자부품 임가공사업에 거는 기대를 짐작케 한다.『외환위기를 맞아 상당수의 기업이 인원삭감 등 축소지향적인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21세기가 코앞에 다가왔는데 움츠린 경영만 해서는 곤란합니다.』김회장은 재도약을 위해선 해외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산 구매 수출 등 모든 면에서 해외시장을 생각하지 않고는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것. 신제품개발도 중요하지만 기존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 역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주장한다.『신제품 개발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기존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이 보다는 쉽다』며 이 방법을 통한 수출확대에전자업체들이 적극 나서줄 것을 권유한다. 또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007가방을 들고 공항으로 나가는 시간이면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며 중소기업들이 정보화에도 더욱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0345) 49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