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6월, 뮤지컬의 본고장 뉴욕 브로드웨이는 새 기록에 축배를올렸다. 뮤지컬 「캐츠」가 최장기 공연 기록을 갱신한 것이다.「캐츠」에 자리를 내준 뮤지컬은 75년부터 90년까지 공연된 「코러스 라인」. 현재 국내에서 한국판으로 공연중이다. 「레미제라블」은 12년, 「오페라의 유령」은 11년째다.그렇다고 브로드웨이가 뻔한 고정 메뉴뿐인 것은 아니다. 매년봄시즌엔 6월에 열리는 토니상을 노려 야심에 찬 신작들이 쏟아져 나온다. 42가 타임스퀘어 부근의 극장 40여개와 그 10배쯤에달하는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들이 뮤지컬과 연극, 코미디 등을공연한다.브로드웨이 쇼 중 관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은 단연 뮤지컬이다. 주말공연은 수개월전에 예매해야 할 정도다. 그렇게 오랫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막을 올리는데 매회 만석인 것이 신기할지경이다. 관광객이겠거니 하지만, 유창한 영어솜씨(?)의 현지인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그들은 이미 뮤지컬의 스토리 뿐 아니라 노래까지 훤히 알고 있어 객석에 앉아 따라 부르기도 한다.같은 공연을 거듭 보거나 아는 내용의 뮤지컬을 굳이 보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캐츠」가 현란한 춤이 매력이라면 「레미제라블」은 혁명과 맞물려 있는 한 개인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이, 또 「오페라의 유령」은 이루지 못할 사랑에 몸부림치는영혼의 절규가 가슴을 울린다. 각각 특화된 재미로 관객을 유혹한다. 그러나 한가지, 아름다운 노래 한 곡쯤은 주인공에 의해멋들어지게 불려지며, 그 멜로디는 처음 듣더라도 머릿속에 선명히 새겨질 정도로 감동적이라는 것이다.한국 창작 뮤지컬 「장보고의 꿈」(극본 김지일·연출 김덕남)이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청해진을 세워일본과 당나라를 연결시키며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장보고의 일생을 그린 뮤지컬이다. 재외동포를 위해 95년부터 로마를 비롯23개 도시 순회공연을 했지만, 국내공연은 처음이다.장보고의 상여 행렬이 객석을 지나 무대를 가로질러 사라지면,장보고의 옛친구이자 그를 살해한 염장이 회한에 찬 독백을 들려준다. 무대는 30년 전 패기 넘치는 젊은 장보고의 모습으로 거슬러 올라가 바다를 향한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부터 모함에 몰려당하는 비극적인 죽음까지를 통일신라의 정치·사회적 상황과 함께 극적으로 보여준다.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한 인간의 운명은 어이없이 부서졌다가 기적처럼 소생하기도 하고 다시 쓰러지기를 반복한다. 애틋한 러브스토리도 있다.현대감각이 가미된 흥겨운 사물놀이 춤마당, 내면의 정적인 힘을끌어올리는 바라춤, 어둠 속을 수놓는 청사초롱의 행렬로 기쁨의이미지를 시각화한 불춤 등이 볼거리다. 해설자의 등장 등 두드러지는 연극적 장치들은 장보고역의 임동진을 비롯한 중견연기자들의 원숙한 연기로 무게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소화된다. 두척의 배가 무대 위를 미끄러지듯 선회하며 벌이는 해상전투 등 실감나는 무대장치도 돋보인다.영양가가 고르게 함유된 음식들을 정갈하게 차려놓은 식탁을 대한 느낌이다. 하지만 정확히 계산된 영양이 반드시 맛을 보장하진 않는다. 무대는 좁아 터지고 기껏해야 고양이 분장의 무희들이 온몸을 흔들어 대는 것이 전부인 「캐츠」는 바로 그 질탕함때문에 성공했다. 편식이 가져다주는 혀끝의 감미로움을 부추긴것이다. 「장보고의 꿈」은 역사속 인물을 통해 어려운 시기에하나된 국민의 힘과 희망을 장중하게 노래하지만, 흡사 위인전이나 역사책을 읽고 난 듯 감동은 건조하다. 한두번쯤 관객의 혼을빼놓을 정도의 매력적인 노래가 선뜻 귀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아쉽다.뮤지컬은 쇼다. 쇼는 객석을 채우는 관객이 필요하며, 관객은 그작품의 생사를 결정한다. 그리고 쇼의 미덕은 바로 「재미」이다. 3월 7일까지. 02)511-1060